TV에서 해주는 '주말의 명화'를 본 건 참 오랜만이다. 별다른 볼거리가 없던 어릴적엔 토요일만 되면 TV에서 해주는 영화를 챙겨보곤 했었는데 말이다. 갑자기 TV를 본 건, <동감>을 보기 위해서였다. 신문에 난 프로그램에서 <동감>을 한다는 걸 알고나자 갑자기 보고싶어졌다. 물론 난 그 영화를 봤다. 그저 그렇게 알던 여자가 내게 자기 친구와 영화나 한편 보라고-소위 말하는 영화팅이다-해서 본건데, 성격적으로 나랑 코드가 안맞아 영화를 보고 난 후엔 다시 본 적이 없다. 아니다. 있다. 내가 아는 여자가 부산에서 결혼을 할 때, 그 친구를 다시 봤다. 모르는 사람들이 천지라 그 친구가 반갑긴 했지만, 그냥 그렇다는 거지, 그 해후를 계기로 잘되거나 그럴 마음을 품은 것도 아니었다.

영화를 보면서 가끔씩 그때 생각을 했다. 짐을 싸들고 집을 나온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던 그당시, 자유를 찾아 나오긴 했어도 남들이 알까봐 고민하고, 자괴감에 빠졌던 시절이었다. 다시 봐도 <동감>은 여전히 재미있었다. 영화가 그리 어렵지 않은지라 TV로 다시 보면서 새롭게 깨달은 것은 거의 없지만, 유지태를 따라다니는 여자-서현주인가?-가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를 쏘아보는 눈빛이랄까? 아니면 따지려는 듯한 눈빛? 좋게 말하자면 도발적인 눈빛. 그런 눈빛을 가진 배우 중 내가 아는 사람은 하지원이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야 난 내가 옳았음을 알았다. 현재 최고의 인기스타인 하지원은 그러니까 <동감>을 찍을 당시만 해도 별반 뜬 사람이 아니었기에, 김하늘의 밑에서 조연으로, 그것도 유지태에게 구박을 받으면서도 그를 쫓아다니는 역할로 나온 거다. 데뷔작인 <진실게임>을 안봤기에 난 그 영화에 하지원이 나온 걸 몰랐고, 하지원이란 이름 자체를 몰랐었다. 어쨌든 하지원은 그런 역에 별로 어울리지 않는 듯, 그가 나올 때마다 난 짜증이 났다. 그의 도발적인 눈빛과, 구박만 받는 역할이 전혀 매치가 안되서이리라. 어쨌거나 내가 2000년의 하지원과 무선통신이 된다면, 2년만 있으면 김하늘은 비교도 안되게 뜨니까 조금만 참으라고 말했을 거다.

김하늘. 그는 <동감>이 세번째 영화다. 전에 출연한 <바이준>과 <닥터K> 모두 보지 않았기에 난 김하늘의 존재를 그 영화를 보면서 알았다. 영화 속의 김하늘을 보면서 청순. 가련. 싱그러움 등의 단어를 떠올렸었지만, 그의 전성기는 <동감>이었던 것 같다. 그 영화를 빼고는 대부분 흥행에 실패한데다, 그나마 성공한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권상우 덕분인 것 같으니까. 비디오로 그 영화를 보면서 "김하늘이 왜 저렇게 망가졌냐"고 혀를 차기도 했었다.

영화에서 멋진 남자로 나오는 박용우. 내가 봐도 참 멋지게 생긴 그를 난 다른 영화에서 본 기억이 없다. <무사>에도 나왔고 <연애소설>에도 나왔는데도 기억을 못하는 걸 보면, 활약상이 미미했나보다. 잘생긴 얼굴과 뇌쇄적인 미소만으로는 2%가 부족한 걸까?

시공을 초월한 만남을 갖던 유지태와 김하늘은 천안대에서 상봉한다. 이미 김하늘의 얼굴을 알고 있는 유지태야 그렇다쳐도, 김하늘은 어떻게 유지태를 한눈에 알아봤을까?  넘어가자. 영화니까. 아무튼 내가 지나간 적이 있는 천안대 캠퍼스가 나와서 반가웠는데, 영문학과에 진짜로 유소은-김하늘의 극중 이름-이란 교수가 있는지 궁금해져 홈페이지를 찾아봤다. 없었다. 있었으면 신기할 텐데 말이다. 유지태가 김하늘 친구아들이 아니라면,  혹은 김하늘이 다른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더라면 둘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결혼을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는 나도, 그때의 충격 때문인지 독신으로 지내고 있는
2000년의 김하늘이 안되어 보이며, 그가 학교를 옮기면서까지 유지태를 기피하는 게 이해가 갔다. 어찌되었건, 다시봐도 참 아름다운 영화라는 데 전적으로 '동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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