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오디세이 3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이 나왔다는 소식에 가슴이 벅차고, 읽으면서 머리 속이 차곡차곡 채워지는 뿌듯함을 느끼고, 다 읽고나니 다른 사람한테 자랑하고 싶어지는 책은 그리 흔치 않다. <미학 오디세이> 3권은 바로 그런 책이었다. 미학. 어렵고 따분하기만 한 줄 알았던 그 학문은 진중권의 손을 거치면서 쉽고 재미있는 분야가 되어 버렸다. 그의 책들을 읽으면서 난 서양 미술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최근에는 철학까지 그 범위를 넓혔다. 직접 만난 적은 없고, 메일을 한번 주고받았을 뿐이지만, 진중권은 내게 참으로 좋은 스승이다.

이 책은 현대예술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사진기술의 발달로 인해 그전까지 예술의 목표이던 '원본의 모사'는 의미를 상실했고, 현대미술가들은 어떻게 하면 더 쇼크를 주는가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난 사실 현대 미술가들을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캔버스에 물감을 뿌림으로써 그림을 그린 폴록의 작품에서 도대체 뭘 느끼란 말인가? <과학콘서트>를 보니 폴록의 그 행위에도 카오스적인 질서가 있다고 되어 있지만, 난해하기만 한 현대예술은 내게 고통 그 자체였다. 하지만 진중권은 말한다. 현대 예술은 원래 고통스러운 거라고. 진정한 인식은 고통을 수반하는 거라고. 그런 맥락에서 보니 현대 미술가들의 심성이 나빠서 그렇게 기상천외한 그림을 그리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알게 된 것 또하나. 뒤상인가 하는 미술가가 변기를 작품이라고 출품했다. 그건 훌륭한 예술로 각광을 받았다. 그것에 혹한 나도 변기를 제출한다. 하지만 그것은 예술이 아니란다. 왜 똑같은 작품인데, 내것만 예술이 아닐까? 예술을 뒷받침하는 탄탄한 이론의 존재, 그것이 예술품과 변기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그러니까 내가 할 일은 그럴듯한 변기를 찾는 게 아니라, 현학적이고 남들이 절대 알아들을 수 없는 형이상학적 이론을 발견하는 일, 내가 열심히 책을 읽고 그러는 것도 다 그 목적을 위해서다.

정치 관련 글에서 언어폭력에 가까운 말들을 쏟아붓는 걸 볼 때는 진중권이 싫어지기도 한다. 누군가의 말대로 인터넷에서 너무 오래 싸우다 보니 심성이 피폐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드는데,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훌륭한 미학자이고,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을 미학의 세계로 인도하는 스승이다. 그에게 늘 감사드린다.

사족: 오늘은 3월 31일, 이 책을 읽음으로써 3월도 11권으로 마치게 되었다. 중반까지의 부진을 털고 두자리 숫자를 올린 비결은 그 이후에 얇디 얇은 책들을 대량으로 읽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록을 위한 책읽기를 하니 집계에 포함되지 않는 잡지를 점점 안읽게 된다. 난 <말>이랑 <인물과 사상>, <아웃사이더>를 보는데, 책장에 가보면 안읽고 미뤄둔 과월호가 제법 쌓여 있다. 이걸 다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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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3-31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그렇군요. 이런 걸 보고 필이 통한다고 하나요? 한번 같으면 우연, 두번 같으면 심상치 않음, 세번 같으면 누구 한명이 스토커라는 말이 있지요. 우린 아직 두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