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메디컬 사이언스 2
지나 콜라타 지음, 안정희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1918년 수천만명의 인명을 희생시켰던 스페인독감을 추적하는 내용이다. 보통의 독감이 나이든 사람들을 괴롭히는 데 반해, 그해의 독감은 군인들에서 먼저 시작, 숱한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잠복기도 없어 직장에 출근했다가 오후에 죽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하니, 그건 우리가 알던 통상적인 독감은 아니었다. 그 후 출현한 어떤 독감도 그것만큼 심하지 않았는데, 우루과이 라운드가 우루과이의 잘못이 아니듯, 스페인독감의 책임이 스페인에 있는 것은 아니다. 책에 나온 설명이다.

[..전시 체제(1차대전)였던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여전히 어느 진영의 편도 들지 않았던 스페인에서는 질병에 대한 신문기사를 검열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이 고착화된 것일 수도 있었다(34쪽)]

공포가 지나치면 망각으로 그 당시를 잊으려 하는데, 1918년 독감이 그랬다.
['미국의 역사'에서 토마스 베일리는 단 한문장을 할애했는데, 그 문장에는 전체 사망자 수가 최소한 절반은 축소되어 있었다....1918년 독감은 신문과 잡지, 교과서, 그리고 사회의 집단 기억에서 깨끗이 지워졌다 (85쪽)]

하지만 아무리 불행한 과거라도 잊기만 해서는 안되는 법이다. 과거를 잊는 자는 그 역사를 되풀이한다고 했지 않는가? 다행히도 몇명의 의학자가 1918년 독감에 대해 흥미를 가졌고, 그 전모를 밝히는 데 부분적으로 성공했다.

일반인도 그렇고, 내과를 택하는 전공의들도 그렇지만, 암, 신장, 간 등에 비해 감염내과는 그 중요성에 비해 폄하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독감연구 역시 한물간 주제로 취급되기 쉽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독감에 그다지 위험을 느끼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많은 의학자들이 독감 연구에 매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호장비가 일상화되지 않던 수십년 전만 해도, 독감 연구는 목숨을 건 행위였다. 독감은 아니지만, 황열 바이러스를 연구하던 록펠러 연구소의 과학자 다섯명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망하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이런 위험에 굴하지 않고 독감과의 전쟁을 벌이고자 하는 선각자들은 계속 있어왔고, 지금이라고 해서 그 중요성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커다란 비극으로 발전할 뻔했던 97년의 조류독감이 최소한의 희생으로 끝난 것도 독감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연구자들의 노력 덕분이다.

의학에 관한 책은 대개 재미가 없다고 여겨지기 쉽다. 하지만 이 책은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으며-4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난 눈깜짝할 사이에 읽었다-훌륭한 연구자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던 것도 커다란 수확이라고 하겠다. 의학을 전공한 사람이 읽는다면 몇배의 재미를 추가로 얻을 수 있으리라는 것도 장담하는 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