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지 않은 혁명
손석춘 지음 / 월간말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과연 그럴까. 그래서다. 우리가 xx하는 까닭은. 진범은 누구인가]

이런 식의 비장한 말투와 더불어, '깜냥' '곰비임비' '가살피운다' '시나브로'같은 순 우리말이 도처에 등장하는 게 손석춘님이 쓰는 글의 두가지 특징이다. 한가지 특징이 더 있다면, 우리 사회에 대한 희망이 묻어난다는 것. 그는 특히 '젊은 벗'으로 지칭되는 청년들에게 희망을 품고 있는 듯한데, 난 거기에 별로 공감하지 못하겠다. 신자유주의의 광풍 아래 자기 스스로의 생존조차 장담할 수 없게 된, 그래서 자신의 안위밖에 관심이 없는 듯한 우리 젊은이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담? 그럼에도 그는 말한다.

'누가 이승만을, 누가 박정희를, 누가 전두환을, 저 피묻은 독재권력의 철옹성을 무너뜨렸는가? 민중이다. 민중은 더디지만...끊임없이 역사의 발걸음을 옮겨왔다(319쪽)]
모르겠다. 역사라는 게 크게 봐서 진보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이런 속도로 가다간 우리가 바라는 그 날이 언제 올 것인지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렇긴 해도, 이 책을 읽으면서 별반 노력도 안하면서 진보에 대한 희망마저 갖지 않는 스스로의 모습이 부끄럽긴 했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노무현은 민중의 기대를 저버린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노무현의 당선에 기대를 가진 사람 중의 하나지만, 손석춘의 말은 기본적으로 옳다. 노무현이 서민의 대통령이 되리라는 희망은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지 않은가. 디제이도 그랬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면 자신의 지지층의 정서와 어긋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지지층은 자기가 무슨 짓을 해도 자신을 지지할 것이므로, 자신을 뽑지 않은 집단에게 영합해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것이 아닐까. 정말 그렇다면, 그건 어리석은 행동이다. 증오에는 이유가 없다고, 소위 반노 세력은 노무현이 무슨 짓을 한다해도 좋게 보지 않게 마련이다. 노무현이 아무리 우향우를 한들, 수구세력의 눈에 그는 여전히 '빨갱이'에 불과하다. 반대 세력에의 영합은 오히려 지지층의 이탈을 불러와, 양측 모두로부터 욕을 먹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던가. 그가 후보 때인 작년 5월, 손석춘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노무현의) 바람이 사라진다면 책임은 누구에 있을까. 수구정당. 수구언론일까. 아니다. ...바람의 맨 앞에 자리한 정치인 노무현에 있다 (50쪽)'
노무현 바람의 실종이 노무현의 탓이듯, 취임 초 70%를 넘던 지지율이 지금의 25% 수준으로 추락한 것 역시 그의 책임이 가장 크다.

'마땅히 국가에서 책임져야 할 일까지 가족으로 떠넘기는 것은 야만이다. 텔레비젼에서 연예인들이 소년소녀 가장들을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전화(ARS) 성금을 모으는 행태들이 대표적이다....가족주의나 온정주의가 아니라 제도적인 사회보장이 가족윤리의 진정한 복원을 위해 필요하다 (258쪽)'

이 말 역시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태풍 매미 때도, 지하철이 불탔을 때도 정부는 시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었다. 태풍이나 재난에 대비할 시스템을 갖추는 대신, 일이 있을 때마다 시민들에게 손을 내미는 정부가 도대체 무슨 필요가 있을까?

뭐니뭐니해도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대목은 여기였다.
[저 많이 울었습니다...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들(권력자들)은 하나도 변함없음이 화가 나서...사실 정말 많이 울었던 것은...그들이 여전한 것이 꼭, 힘겨운 생활 내세우며 세상을 등지고 있던 내 자신 때문인 것만 같아서였습니다 (161쪽)]
스스로 착하게, 남에게 폐 안끼치고 살아간다고 자부하는 분들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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