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0년 6월
평점 :
일시품절


서른이 넘어 책읽기의 즐거움을 알고 난 뒤, 책을 읽을수록 스스로 무지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걸 타개할 목적으로 닥치는대로 책을 읽고 있는데, 서양미술에 관해 공부를 하려니 신화를 모르고는 얘기가 안된다. 다행스럽게도 이윤기님이 쓴 책이 나와있어 아주 재미있게 읽었는데, 방대한 스케일을 가진 그리스 신화를 읽으면서, 우리 신화의 빈약함에 기분이 상한다.

그쪽 애들이 '지구를 짊어지고 있는 아틀라스'라든지 '헤라를 속여 남의 말을 따라할 수밖에 없게 된 에코 요정', '에로스를 사랑한 프시케' 같이 장황하면서도 나름대로 재미있는 신화를 만드는 동안, 우리 선조들은 도대체 뭘 한걸까? 호랑이와 곰이 마늘을 먹는데, 호랑이는 중간에 포기하고 곰이 사람이 되어 환웅의 부인이 되었다는, 어릴 적에 들어도 재미없는 신화가 고작이지 않는가? 물론 그 신화 말고도 전해내려오는 신화가 없는 게 아니며, 기록에 철저하지 못한 우리의 특성을 고려할 때 중간에 없어진 신화들도 꽤 많을 테지만, 현존하는 신화들 중 '매일같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태양마차를 끄는 헬리오스'같은 방대한 스케일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이윤기는 '우리 민족으로서의 '우리'보다는 인류의 한갈래로서의 '우리'라는 관점을 갖자'고 하지만, 그게 맘같이 잘 되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그토록 웅장한 신화의 세계를 창조한 비결이 도대체 뭘까? 그들이라고 특별히 상상력이 뛰어난 것은 아닐텐데 말이다. 내 생각으로는 그들의 발달한 정치체제가 신화의 융성을 가져오지 않았나 싶다. 여자와 노예가 제외된 반쪽짜리이긴 해도, 그들이 꽃피운 민주주의는 그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것이었다. 자신의 권리, 인간답게 살 권리가 평등하게 보장되는 환경에서 그들은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편 게 아닐까?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 사람이 상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전제 군주의 학정에 시달리던 우리 선조들이 이렇다할 신화를 만들지 못한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절차적 민주주의가 정착되긴 했지만, 우리 사회에서 창조적인 사고를 가로막는 요소들은 여전히 많다. 다양한 의견이 '무질서'로 인식되는, 획일적 사고에 길들여진 사회 분위기도 그렇지만, '다름'이 곧 '차별'로 이어지도록 제도화된 국가보안법의 존재가 사회 구성원들의 상상력을 질식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름에 대한 존중,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주인공이 되는 웅대한 서사시를 우리 스스로 써나가기 위한 필수 조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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