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로 철학하기
슬라보예 지젝 외 지음, 이운경 옮김 / 한문화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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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로 철학하기>란 책을 읽었다. 매트릭스 2가 개봉될 즈음에 나온 책인데, 그렇게 시류에 영합하는 책은 대개는 엉성하기 마련인지라 살 생각이 없었지만, 저자가 그 유명한 슬라보예 지젝 등인 것만 믿고 사서 읽기 시작했다. 내 우려와는 달리 그 책은 매트릭스 1편에 관한 철학적 고찰이었고, 내용도 꽤 흥미로웠다. 이름있는 저자는 대개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 법이다.

내가 매트릭스 1편을 본 건 2001년 여름인데, 그걸 보고 나서 난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재미있는 영화가 왜 흥행에 실패했지?' 알고보니 그 영화는 서울에서만 90만이 넘는 관중을 동원한 흥행작이란다. 하여간 비디오를 본 지 2년이 지났는지라 영화의 세부적인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났는데, 책을 읽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매트릭스 1 비디오를 빌렸다. 속이 안좋아 소주를 마시면서 비디오를 봤는데, 처음 봤을 때보다 몇배나 더 재미있는 영화가 있을 수 있다는 건 경이로운 발견이었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는 말은 불변의 진리, 난 2시간 동안 넋을 잃고 화면을 응시했고, 책에서 풀이된 대사들을 음미했다. 어느 한장면, 대사 한마디도 버릴 게 없는 완벽한 영화, 그제서야 난 내가 너무나도 재미있게 본 2편에 대해 사람들이 '1편보다 못하다'고 했던 이유를 이해했다.

철학이란 단어만 들어도 머리가 아파오는 나지만, 이렇게 생활 속에서 설명되어지는 철학은 그래도 재미있다. 최고의 엔터테이너인 김용옥이 평소 같으면 거들떠도 안볼 <논어>를 대중화시켰듯, 인문학도 얼마든지 재미있을 수 있다. 이정우 교수의 철학 강좌가 인기를 얻는 이유도 그의 철학이 형이상학적 세계에 머물지 않고 우리의 삶 속에 녹아있는 철학적 요소를 알려주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 인문학의 위기라는 것도 기득권을 쥔 사람들이 상아탑이라는 폐쇄적인 장소에서 대중들의 삶과는 무관한 지적 유희를 벌이기 문이 아닌지? 그들이야 펄쩍 뛸 일이지만, 내가 보기엔 영화 한편에 철학의 온갖 요소들을 담아낸 워쇼스키 형제가 그분들보다 훨씬 더 훌륭한 철학자다. 이땅의 수많은 철학자 분들도 지젝처럼 낮은 곳으로 내려와 대중과 소통하는 게 어떨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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