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파괴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아멜리 노통의 책을 읽느라 하루가 짧다. 존 그리샴 하면 법정 스릴러, 베르베르는 과학 미스테리가 떠오르지만, 노통의 소설은 어디로 튈지 읽기 전까지는 모른다. 이번 소설 역시 그랬다. 자신의 중국 체험을 소설화한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말 위에 앉아 나는 선풍기들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그때 내 나이 일곱살...]

일곱살 애가 말을 타? 워낙 희한한 일을 많이 벌이는 노통인지라 진짜 그런가 하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자전거를 말이라고 하는 거였다. 그는 왜 하는지도 모르겠는 전쟁에 참여하고, 그 와중에 자기보다 훨씬 이쁜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 시종 무관심한 이쁜 여자애에게 몸달아하던 노통은 결국 그 여자애가 자기에게 관심을 보이게 만드는데, 그 비결은 무관심이었다.

[나는... 베이징의 겨울만큼이나 차갑게 엘레나를 대했다. 내가 그 방침에 집착하면 할수록 엘레나는 그 큰 눈에 사랑을 담아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139쪽)]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이건 자신이 충분히 매력적이라 상대가 빠져들 가능성이 있을 때나 써야 한다. 예컨대 나같은 사람이 그런 방법을 쓴다고 해보자. 십년을 기다려도 상대방은 신경도 안쓸거고, 오히려 좋아할 거다. 희한한 것은 노통도 여자고 엘레나도 여자라는 것. 아무리 성 구분이 희미한 어릴때라고 해도,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고보니 노통은 남자를 아주 쓸데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다음 대목을 보자.

[나는 그들(남자)에게 연민을 느꼈다. 그들의 두 다리 사이에는 괴상망측한 것이 달려 있었다. 그들 자신은 그것에 대해 딱하게도 자부심을 갖고 있는 모양이지만, 그것은 그들을 더욱 우스꽝스럽게 만들 뿐이었다(93쪽)]

그 괴상망측한 걸 빌미로 자부심을 갖는 남자들의 행태는 나도 끔찍히 싫어하는 바이지만, 어차피 이 세계는 남자와 여자가 공존해야 하는 곳이 아닐까? 모르긴 해도 노통의 책을 사는 독자들 중에는 남자들도 꽤 있을텐데 말이다. 비록 소설이지만, 엘레나 얘기가 사실인 것처럼 주인공의 견해들은 노통 자신의 얘기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자에 대한 '무시'도 그렇지만, 고독을 좋아하는 것 역시 노통의 실제와 가깝지 않을까 싶다.

[친구들이란 만나서 터무니없는, 나아가 괴상하기 짝이 없는 태도를 취하거나...쓸데없는 행동을 하는...사람들...친구들을 갖는다는 것은 퇴화의 징후...친구를 사귀는 것이 내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49쪽)]

소설을 쓰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고, 창조자는 대개 고독하다.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는 이유로 친구와 절교까지 하는 쥐스킨트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노통 역시 그런 고독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책날개에 실린 노통의 장난꾸러기 같은 얼굴을 보면, 고독과 노통은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려면 어떠랴. 지금처럼 재미있는 책만 계속 써주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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