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장일치는 무효다 - 좌파 자유주의자 변정수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변정수 지음 / 모티브 / 2003년 9월
평점 :
절판


[..고대 유대 사회에서 의회 구실을 하던 산헤드린에서는 투표 결과 만장일치가 나오면 그것을 무효로 하고 다시 투표를 했다고 한다]

'자유주의자'란 말이 멋져 보이는지 자신을 자유주의자라고 강변하는 사람이 하나둘이 아니지만, '만장일치는 무효다'라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은 진정한 자유주의자가 무엇인지, 자유주의자로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증명해 준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모든 것을 획일적인 방향으로 몰고가는 우리 사회의 폭력성을 비판하고 있는데, 책을 읽으면서 대개는 공감했고, 가끔은 통쾌했으며, 나 스스로에 대해 많은 성찰을 하게 되었다. 그 전에 읽었던 변정수님의 책, <나는 남자의 몸에 갇힌 레즈비언>에서는 저자의 전투적인 태도에 마음이 불편했지만, 이 책은 아주 편안한 자세로, 시종 고개를 끄덕여가면서 읽을 수 있었다.

이전에 내가 존경하던 어떤 분이 '북한과 우리나라의 관계가 일본과 우리의 관계만큼만 된다면, 굳이 통일이 필요없다고 본다'라고 했을 때, 난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고 꿈에도 소원은 통일인데, 어떻게 저런 말을 하지?'라며. 그건 내가 '분단 아니면 통일'이라는 흑백논리에 빠진 나머지, 무엇을 위한 통일인가에 대한 성찰이 전혀 없었던 탓일게다. 왜 통일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것도 나처럼 어린 시절의 맹목적 학습에 의해 통일을 강요당한 탓이 아닐까. 저자의 말이다.

['통일'이라는 형식은 분단 극복의 유일한 대안이 아닐 수 있으며, 심지어 가장 바람직한 대안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단에 대한 문제의식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통일에의 염원'으로 환원되는 것은 사실 역사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엄청난 비약이다(373쪽)]

이렇듯 저자는 우리가 당연시하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한다. 사이비종교에 대한 비난을 비판하는 저자의 사려깊음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며, '자기존중이 있어야 남도 존중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에도 깊은 동감을 표하게 된다. 내가 이 책을 '나의 무식을 깨우쳐 준 책'으로 분류해 리스트에 올려놓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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