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단편선집 - 국내 미발표작
레오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강주헌 옮김 / 오늘의책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세계문학사에 우뚝 솟은 거장의 미발표작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관심을 불러일으킨 <톨스토이 단편선집>은 매우 교훈적인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다. 스크루지의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젊은 황제'를 비롯해, 젊을 때의 잘못으로 결국 파국을 맞는 '악마' 등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바르게 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다.

어릴 적이라면 모르겠지만, 법과 원칙을 지킬수록 손해라는 가치관이 정립된 터라 이 책의 메시지들에 시큰둥하게 된다. 바르게 사는 건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수단 방법을 안가리고 이윤을 추구하는 게 '잘사는 것'이 어버린 정글 속에서 '바르게 살라'는 가르침은 공허하기만 하다. 예컨대, 순진하게 군대를 다녀왔더니 나보다 더 건강한 군면제자는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

어릴 적, TV와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정의는 언제나 승리한다'는 이데올로기를 주입한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부조리로 가득찬 사회를 봤을 때 그가 느낄 배신감은 얼마나 클까? 그렇게 본다면 어린이들에게 현실과 동떨어진 공자님 말씀을 가르치는 게 무슨 도움이 될까?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도 그다지 좋은 책이 아니지만, 내용도 별 재미가 없다. 어릴 적에 다들 한번씩 들어봤음직한 평이한 이야기들로 가득찬 이 책이 최근의 톨스토이 붐에 힘입어, '미발표작'이란 타이틀을 달고 우리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다는 게 나로서는 유감이다.

한가지 더. '악마'라는 단편에서 톨스토이는 젊은이의 마음을 빼앗은 유부녀를 악마로 그리는데, 여기서 그의 반여성적인 면모를 볼 수 있다. 엄연히 부인이 있으면서 다른 유부녀에게 눈독을 들이는 놈이 더 나쁜 거 아닌가? 남의 부인-밧세바-을 빼앗고 권력을 이용해 남편을 죽게만든 다윗에겐 면죄부를 주고, 할 수 없이 왕과 결혼한 밧세바를 당시 사람들이 '다윗을 유혹한 음탕한 여자'로 몰아간 것처럼,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 뒤집어 씌우는 수법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가부장 사회인 우리나라도 그런 '피해자 탓하기'가 만연하고 있는데, 그런 전통은 이제 좀 그만둬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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