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루스 노부스 진중권 미학 에세이 2
진중권 지음 / 아웃사이더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책 첫페이지에 그림이 하나 나오는데, 벌거벗은 여인이 얼굴을 가리고 있고, 나이든 노인들이 놀란 눈으로 그녀의 몸을 감상한다. 노인들 중 몇은 맛이 간 표정이다. 진중권의 설명이다. [저 아름다운 여인은 ...창부 프리네다....창부라는 말은...기혼 명사들의 애인 역할을 했던 교양있는 여인들을 가리켰다고 한다]

'소녀의 청순함에 지능까지 갖췄던' 프리네는 당시 한다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이 여인의 향기를 증오하던 사람이 있었다' 왜 그랬을까? 진중권은 그 이유를 이렇게 추측한다. '구애를 했다가 거절을 당해서?'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남자들이란 원래 좀 치사한 동물이 아닌가. 자기가 못먹을 감은 남도 못먹게 하는 물귀신 심리, 물귀신이 전부 남자인 건 바로 그래서가 아닐까.

하여간 프리네는 사소한 죄목으로 재판을 받게 됐는데, 이 경우 그리스에서는 대개 사형을 당했단다. 그녀의 변호를 맡은 전 애인 알파, 구차한 말로 변명을 하느니 '프리네의 아름다움에 호소하기로' 한다. '그는 배심원들 앞에서 여인의 몸을 덮고 있던 천을 갑자기 들춘다...순간 배심원들은...저 여인의 아름다움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갑자기 생각났는데, 어제 까르네 스테이션에서 식사를 하던 가정적인 내 친구는 노란옷을 입은 늘씬한 여인이 지나갈 때마다 숨도 안쉬고 그녀를 바라봤다. 내가 말했다. '별로 이쁘지도 않잖아' 그의 대답, '살이 많이 보이잖아!' 내 친구가 프리네의 벗은 모습을 봤다면 질식해서 응급실로 가지 않았을까?

하여간 배심원들은 이렇게 말한다. '오, 저 아름다움을 우리는 신의 의지로 받아들이자' 저 신적인 아름다움 앞에서는 한갓 피조물이 만들어낸 법이나 기준은 효력을 잃는다. 판결은 내려졌다. 무죄! 천을 들췄는데 무우다리와 똥배가 나왔다면 사형을 당했을 거란 말이지. 예나 지금이나 이쁜 여자가 유리한 건 변함이 없는가보다.

미학이란 건 물론 이쁜 여자의 미를 밝히는 학문은 아니다. 처음 이야기만 이럴 뿐, 안그런 것도 많다. 그래도 이건 확실하다. 진중권의 미학 강의는 참 재미있다는 것. 그의 유려한 글솜씨에 각종 그림들이 어우러진 이 책은 다 읽고 나서도 책을 덮기가 굉장히 안타까웠다. 진중권의 책을 갈비에 비유하는 게 결례가 되겠지만, 맛있는 갈비의 마지막 한 점을 먹으면서 느끼는 그런 아쉬움과 비교하면 될까?

상한 고기, 물먹인 소고기, 병든 닭과 같은 책들이 수없이 범람하는 이 세상에서, 그래서 좋은 책을 고르기가 무지하게 어려운 이 시대에, 진중권이라는 이름은 책의 품질을 보장하는 KS 마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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