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17번의 문제는 이렇다.
[17 (가)의 ㉠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것을 <보기>에서 고르면?

<보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테세우스는 미궁으로 들어가 비밀의 방에 이르고자 한다. 비밀의 방에는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있다. 미궁을 통과하는 길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한번 들어가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미궁으로 들어가는 문은 누구에게나 보이는 것이 아니다.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존재하고 열리는 문이다. 테세우스는 미궁의 문을 찾아 실 끝을 미궁의 문설주에 묶어 놓은 뒤 자신의 예지와 본능으로 미로를 더듬어 비밀의 방에 이른다. 테세우스는 괴물을 죽인 후 실을 따라 무사히 밖으로 나온다. 이 '미궁의 신화'는 문학 예술 작품에서 다양하게 변형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① 테세우스 ② 미노타우로스
③ 미궁의 문 ④ 비밀의 방
⑤ 실 
 
 (가) 고향 -백석-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어 누어서 어느 아츰 ㉠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집드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씰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띄고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어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그러니까 고향에 가기 위해 뭐가 필요하냐는 건데, 정답을 3번으로 한 평가원의 해석은 이렇다. "핵심은 그 과제를 해결하는 관건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동굴로 가는 문을 찾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습니다. 들어갈 때 들고 가는 밧줄은 나중에 동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필요한 도구이지요"

아니다. 아리아드네의 실타래가 도구인 것처럼, '의원' 역시 고향에 이르고자 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의원이 고향을 일깨워 줬다면, 실타래는 미궁의 문으로 나오게 해준 것, 이카루스였다면 아마도 날개가 정답일 테지.. 그래서, 많은 수험생이 정답으로 쓴 5가 타당하다는 게 내 생각이며, 평가원의 해석은 그다지 보편타당하지는 않은 것 같다. 뒤늦게나마 5번도 정답이라고 한 것은, 당장의 공신력 실추는 있을지언정 스스로의 오류를 바로잡고자 하는 용기있는 행동이었다.

우스운 것은 3번을 썼던 수험생들의 행태다. 다른 경쟁자들이 2점씩 올라가는 게 참을 수 없다는 거다. 그래서 그들은 거리로 나서 무력시위를 했다. 난 고교생들이 시위를 하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견해를 시위 등을 통해 밝히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한 게 아닌가. 하지만 그 이유가 문제다. "다른 애들 점수 올려주면 내 등수가 떨어지잖아!"라는 게 과연 시위의 이유일 수 있을까. 그들의 시위에는 부안 사람들의 시위에서 느껴지는 절박함이나, 농민 시위에서 보이는 생존권을 위한 몸부림이 들어있지 않다. 등수가 떨어지는 데 대한 시기심 말고는 난  신문에 난 그들의 시위모습에서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오답은 바로잡아야 한다. 오답을 인정하고 5번을 정답으로 하는 것은 정의가 바로잡히는 일, 그렇다면 그들은 자기들의 등수 보존을 위해서 정의의 구현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되버린다. 원칙적으로 따지면 5번이 정답이 됨으로써 3번은 정답이 아닌 게 되어야 하고, 그들의 점수는 2점이 깎여야 맞다. 하지만 평가원 측은 그럴 배짱은 없었고, 3번을 쓴 애들은 공연히 2점이 올라갔다. 그것만으로 만족해야 할 일을, 5번은 틀리게 하라고 시위를 한다?

안다. 우리가 그들을 그렇게 가르쳤음을. 진리를 추구하기보다는 남을 짓밟고라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게, 남들 것을 빼앗아 하나라도 더 많이 갖는 게 정의라고 말이다.  그들은 지금, 배운대로 행동하고 있다. 하물며 자신의 일생이 걸린 수능시험인데!!! 다른 나라들은 다 하는 사회적 연대를 왜 우리는 못하는지, 우리는 왜 모든 갈등이 극한투쟁까지 가는지 그 이유를 대충 알만하다. 그렇다. 모든 갈등의 배후에는 살인적인 대입경쟁이, 수능이 있다. 권모술수와 정략으로 점철된 <삼국지>가 수능 준비를 위해 꼭 읽어야 필독서가 되버린 것도, 우리의 대학입시가 권모술수와 정략이 판을 치는 곳이기 때문이 아닌지.


단 한번의 대학입시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소름끼치는 학벌주의가 깨지지 않는 한,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수능파동을 보면서 또다시 느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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