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라는 소녀가 쓴 일기로 구성된 <인상주의, 빛나는 색채의 나날들>를 읽다보면 드레퓌스 사건이 자주 언급된다. 정의는 언제나 승리한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프랑스 공화국의 기틀을 만들었던 그 사건이 귀족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춰졌을까. 줄리의 일기다.
[드레퓌스 사건이 화제가 되었다. 요즘은 어디서나 이 사건이 화제가 되어 시끄럽다. 만일 그 남자-드레퓌스-가 무죄임에도 벌을 받는다면 매우 무서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152쪽)]
20세의 소녀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하는 까닭은 기득권층을 옹호하고 반유대 정서에 빠져있던 당시의 언론들이 진실을 보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신문이라고 해서 얼토당토 않게 반유대 감정을 조장하지는 않는 법, 당시 귀족들 사이에서는 이미 반유대정서가 자리잡고 있었다. 유명한 화가였던 르느와르의 말이다.
"(유대인들이) 여러 나라에서 쫓겨난 것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니까. 그들이 프랑스에서 어떠한 지위도 가지지 못하도록 해야 해. 드레퓌스 재판을 백일하에 드러내라고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공개할 수 없는 경우도 많고, 알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 (157쪽)"
드레퓌스를 옹호하는 측에서 재판결과를 밝히라고 요구한 건, 드레퓌스가 유죄라는 증거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명백한 진실에 귀를 막고, 이렇게 말한다.
"알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고.
다시 줄리의 일기다. [르느와르 아저씨는 유대인의 특성은 분열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했다. 확실히 그렇다(168쪽)]
스무살짜리 여자애가 이런 잘못된 편견에 빠져있는 건, 우리나라에서 호남인에
대해 갖고있는 편견을 연상케 한다. 그런 편견은 확대재생산되어 움직일 수 없 는 사실이 되며, 그 사실은 다시금 호남 사람들을 옥죈다. 내 친구의 말이다.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돈을 안주더라. 그래서 알아봤더니 호남사람이야. 이런 경험이 꽤 많아"
호남 차별론자들의 한정된 경험은 기존의 편견을 고착화시키는 데 일조한다. 전두환 정권에 저항했던 광주항쟁도 그들의 눈에는 "공산집단의 사주를 받은 폭도들의 반란" 에 지나지 않는다.
[어제 루베-프랑스 대통령으로 드레퓌스파다-가 달걀세례를 받았다는 기사를
읽었다. 드디어 사람들이 국가원수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에 대해 반발하기 시작했다. 드레퓌스파 신문은 '귀족계급의 봉기, 왕당파의 음모'라고 썼다. 이런 식으로 얼토당토 않은 사실을....어쩌고.... 공화국 대통령이 이런 모욕을 당했다니 창피한 일이다. 그러나 루베는 유대인 동료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모욕을 당해도 결코 사임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정도 모욕에 사임을 할 사람이라면, 당선 한시간도 지나기 전에 그만두었을 것이다(222쪽)]
유대인을 옹호하는 대통령에 대한 경멸의 감정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지금 우리 나라 대통령에게 그러는 것처럼. 잘난 보수 층으로서는 대학도 안나온, 그리고 말투가 천박한 대통령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집권한 지 불과 몇개월이 지났지만 벌써 이런 말들이 나온다.
"군사 쿠테타를 해야 한다" "임기를 못채우고 물러날 수도 있다"
물론 이건 그들의 희망 사항이다. 도대체 왜 그들은 노무현이 못마땅한 걸까. 조선희에 따르면 디제이 정권 5년은 3김 청산도 하고, 그간 독재 때 당한 애들이 한풀이를 하는 기간이라고 넘어갔지만, 당연히 자기들 것이 되어야 할 정권이 또다시, 그것도 품위라곤 없는 노무현에게 패배를 하자 인내의 한계에 달한 거란다. 그래서 그들은 대통령의 한마디 한마디를 물고 늘어지며, 국가 위기를 부채질한다. 정권이 몰락하기만 한다면 나라야 망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그들의 결의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드레퓌스 사건 때 프랑스 언론들이 진실을 보도하지 않았듯, 지금의 언론들은 북핵 위기를 고조시키고, 경제위기설을 퍼뜨려 경제 침체를 더더욱 부채질한다. 100년 전의 프랑스와 2003년의 한국은 너무도 똑같다. 하지만 프랑스에는 지식인의 위상을 새로 정립했던 에밀 졸라가 있었던 반면, 한국의 지식인들은 이미 보수언론의 품안에서 허우적대며 자신의 학문적 양심에 반하는 글들을 써재낀다. 드레퓌스가 결국 무죄를 선고받으며 프랑스에 정의가 살아 숨쉬고 있음을 보여 준 쾌거를 우리나라에서 재현할 것 같지 않다는 게 바로 그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