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휴대폰을 처음 가졌던 96년, 휴대폰은 그 자체로서 선망의 대상이었다. 휴대폰 예절이 정착되지 못한 그시절, 공공장소에서 "난데!"라면서 큰소리로 전화를 걸 때면 사람들은 시끄럽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저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을게다. 휴대폰은 그 이전에 통신세계를 지배하던 삐삐가 가지고 있던 불편함을 일거에 해소시켜 준 혁명이었다. 휴대폰의 대중화와 더불어 삐삐는 급격히 사용자가 줄어들었고, 싼 가격으로 그에 맞서려던 시티폰도 하나의 해프닝으로 전락하고 만다.

처음 휴대폰은 정말 무거웠다. 주머니에 넣으면 걷기가 힘들 정도였다고 할까. 초창기 휴대폰 개발이 사이즈를 줄이는 방향으로 진행된 것은 당연했다. 휴대폰은 급속히 작아졌고, 유행이 지난 휴대폰은 '무전기'라 불리며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가벼움을 과시하려는 듯 사람들은 전화기를 목에 걸거나 안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휴대폰이 더이상 작아질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을 때, 컬러 휴대폰이 나왔다. 차태현과 안성기가 화면에 나와 "난 컬러로 쏜다"고 외쳐댔다. 하지만 난 컬러화에 대해 시큰둥했다. 컬러라고 해서 좋을 게 도대체 뭐가 있담?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말도 안되어 보이던 기능이 휴대폰에 장착되기 시작했는데, 그건 바로 디지털 카메라였다. 디지털 카메라의 용도는 그야말로 다양하다. 접촉사고가 났다든지, 놓치기 싫은 순간을 포착하고자 할 때 디카만한 게 또 어디 있겠는가. 언제 올지 모르는 순간을 위해 디카를 가지고 다니는 건 불편하지만, 휴대폰이야 늘상 갖고 다니는 게 아닌가.

물론 지금의 화질로는 휴대폰이 디카를 이길 수 없다. 디카의 화소가 300만-500만인 데 비해, 얼마 전 개발된 삼성과 큐리텔 카메라폰의 화소는 겨우 130만 정도. 하지만 2년 안에 300만화소가 넘는 카메라폰이 나올 예정인 것을 보면, 카메라폰이 디카를 이길 것은 거의 확실하다.

사실 휴대폰은 각종 기기와의 싸움에서 번번히 승리해 왔다. 정확한 시각을 제공함으로써 젊은 애들이 시계를 안차도 되게 만들었고, 한때 엘리트의 표상이던 전자수첩 역시 휴대폰이 나오면서 사라져 버렸다. 요즘은 게임도 인터넷으로 하는 실정인데, 큐리텔에서는 그래서 게임만 전문으로 하는 게임폰도 개발 중이란다. 심지어 mp3 기능까지 내장한 전화기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고 보면, mp3가 퇴출될 날도 그리 멀지 않은 게 아닐까?

휴대폰 개발이 늘 성공한 것은 아니다. 안성기가 열연했던, 음성을 인식해서 전화를 걸어주는 "본부! 본부!" 시리즈는 별반 반응을 얻지 못했고, 018에서 야심작으로 내놓은 두번호 전화기도 그냥 그렇게 사라졌다. 지금은 듀얼폴더가 당연한 것 같지만, 처음 나온 휴대폰은 뚜껑도 없는 거였다. 폴더형이 나오면서 밋밋한 휴대폰은 퇴출됐고, 그건 듀얼폴더에 자리를 양보했다. 얼마 전 나온 스카이를 보니 폴더를 밀어서 열던데, 그건 특이한 면은 있지만 사용에 불편해 보편화되지는 않을 것 같다. 지금 쓰는 휴대폰은 그러니까 시장에서 선택된 것만이 살아남은 결과인 셈이다. 그런 멋진 휴대폰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내 휴대폰은 아직 흑백에, 단음이다. 48화음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벨소리가 나는 휴대폰이 부럽기 짝이 없지만, 뭐 어떤가. 전화만 잘 걸리면 되지.

* 마지막 말은 지금이니까 하는 소리고, 이제 곧 나도 카메라폰이 생긴다. 그때가 되면 이럴 거다. "카메라폰 없는 애랑은 전화하기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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