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밥을 무척 빨리 먹는다. 고등학교 때도 그랬다. 넷이 마주앉아 밥을 먹으면 꼭 1등으로 도시락 뚜껑을 덮었다. 쓸데없는 것에 경쟁심을 갖는 내 심리 탓일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같이 먹는 사람 중 나만큼 빨리 먹는 사람이 있다면 밥먹는 속도가 더 빨라지니깐.

대학 때도, 졸업한 이후에도 난 밥을 빨리 먹었다. 빨리 먹으면 살찐다던데, 지금의 퉁퉁한 내 몸매는 밥을 빨리 먹은 결과일지도 모른다. 밥을 혼자먹는 걸 애처롭게 바라보는 시각이 있을 테지만, 사실 난 혼자먹는 걸 좋아한다. 물론 혼자 먹는 경우가 거의 없긴해도, 혹시라도 혼자 먹게 될 땐 난 평소보다 더 빨리 밥을 먹는다. 그러니깐 내가 밥을 빨리 먹는 건, 남들이 뺏어먹을까봐 그러는 건 절대 아니라는 얘기다.

학생 때, 조교 때만 해도 밥을 빨리먹는다고 해서 문제될 껀 없었다. 오히려 다른 선생님들이 다 드셨는데, 을 먹어야 하는 내 동료가 안스럽게 느껴졌을 뿐이다. 하지만 내 지위가 올라감에 따라 밥을 빨리 먹는 건 남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 되었다. 내가 밥을 다 먹고 나면 아직 밥이 많이 남았음에도 조교들은 숟가락을 놓는다. 몇번 그러고 나서부터는 내 나름대로 천천히 먹으려 노력하지만, 그래도 늘 1등이다.

소설가 장정일이 쓴 '식습관'이란 글을 보고 많이 웃었다. 길게 인용한다.
[나는 어떤 자리에서든 가장 먼저 숟가락을 놓는다....단 한번, 계명대학교 앞의 어떤
분식집에서 나보다 먼저 숟가락을 놓는 인간이 있었다. 아무런 경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차 하는 순간의 급습이었다.
나보다 배나 더 빨랐던 그이 숟가락질에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잔뜩 부아가 나서 페어플레이 스피릿이라곤 전혀 없었던 것 같았던 그에게 따졌다. "너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빨리 밥을 먹을 수 있는 거니? 씹지도 않고 먹니?"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그냥 넘기면 되지 밥을 왜 씹는데?" 대단한 강적을 만났다고 생각하며 마음 속으로 '나는 뜨거운 음식도 수정과 마시듯 훌훌 삼켜대는 기술이 있으니, 언제 이 친구를 뜨거운 국밥집이나 칼국수 집으로 데려가 본때를 보여줄까?'라고 벼르던 것이 한 6-7년 전의 일이다(61-62p, [화두 혹은 코드, 강금실 외])

장정일이 보통 사람이 아닌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걸 읽고 나니 언제 한번 밥 빨리먹기로 붙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장정일을 꺾은 그 친구를 잘 아는 선배의 말에 의하면 "그친구, 집안구성이 복잡해서 식사 때 식구들을 안보려고 빨리 먹는 버릇이 생겼을 꺼"란다. 그말을 듣고보니 내가 빨리 먹게 된 것도 아마 그래서가 아닐까?

어릴 적, 난 호랑이같은 아버님 밑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두들겨 맞으면서 자랐다. 잘못한 게 없어도 "맞은지 일주일 되었지?"라면서 우리를 집합시켰다. 밥먹는 시간은 늘 혼나는 시간이었다. 그때 기억을 더듬어 보면, 밥먹다 말고 방으로 가 운 적이 꽤 있었던 것 같다. 장정일을 꺾은 친구처럼, 그런 게 나로 하여금 밥을 빨리 먹게 하지 않았을까.

빨리 밥을 먹는 게 유리한 적도 있다. 실험을 하다보면 '10분간 실온에서 방치'같은 과정이 있다. 남들은 엄두를 못낼 그 시간에 난 유유히 밥을 먹고 올 수 있다. 게다가 내가 좀 빠른가. 그런 거 말고는, 밥을 빨리 먹는 건 그리 좋은 습관이 아니다. 혹시 자녀를 키운다면, 밥먹을 때는 절대 야단치지 말자. 식사를 즐겁게 해야 건강한 법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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