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언젠가 났던 한겨레 기사다.
[황금가지 출판사가 출간한 셜록 홈스 시리즈가 한달 새에 12만부나 팔려나갔다는 소식이다. 모처럼 추리소설이 장기 불황을 벗어날 조짐을 보여서인지 까치, 황금가지, 태동, 샘터 출판사가 앞다투어 뤼팽 시리즈를 펴낸다는 얘기도 들린다]
추리소설 하면 당연히 옛날 추억이 떠오른다. 남들도 다 그랬겠지만, 어릴적 난 추리소설을 퍽이나 좋아했다. 특히나 셜록 홈즈 시리즈는 내 어린시절을 지배했던 소설로, 먼 훗날 내가 말도 안되는 탐정소설을 쓰게 되는 계기가 된다.

모리스 르블랑이 쓴 <괴도루팡>의 '거인 대 괴인'을 보면, 영국의 명탐정 헤록 숌즈와 루팡이 대결하는 장면이 나온다. 웬 헤록 숌즈?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르블랑이 <괴도루팡>에서 자신의 주인공 홈즈를 등장시키자 코난 도일이 화를 냈고, 할수없이 셜록 홈즈에서 앞의 S와 뒤의 H를 바꾸는 편법을 쓴 것. 그 책의 결말 부분에 가면 이렇게 끝을 맺는다. "괴인 대 거인, 둘은 누가 이긴 것도 아니다. 비겼다" 말이 비겼지, 루팡에게 숌즈는 번번히 골탕만 먹는데, 그럼에도 비겼다고 한 건 역시 코난도일을 의식한 것이리라.

누군가의 말이다. 셜록홈즈의 소설 중 가장 기발한 소설은 <붉은머리 클럽>이라고. 그말을 듣고보니 그런 것 같아, 다른 곳에 가서는 마치 내 의견인 것처럼 이렇게 말한다.
"붉은머리 클럽이 가장 훌륭하지"
런던에 가면 셜록홈즈의 집이 있어 홈즈의 유물들을 전시해 놓았다는데,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든다고 하니 장사수완도 참 대단하다. 정말 웃기는 건, 어려운 사건을 해결해 달라는 편지가 세계 각지에서 수천통이 넘게 쇄도한다는 것. 사람들도 참....

나이가 들면서 포우라든지, 아가사 크리스티 등의 다른 추리 작가들도 많이 알게 되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한국의 김성종이다. 우리 나라 추리소설의 선구자격인 그는 <제5의 사나이>, <최후의 증인> <7개의 장미송이> 등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그의 소설은 범인이 책 앞부분에 이미 노출되어 있는지라 엄밀한 의미에서 추리소설이라고 하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내가 그 책을 탐독했던 건, 그의 책이 당시로서는 충격적으로 야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살고 싶다>는 도대체 추리소설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정사신만 나온다 (거기다 동성애까지...) 물론 그가 썼던 <최후의 증인>과 <여명의 눈동자>는 굉장히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80년대 중반 이후의 작품을 보면 맛이 간 흔적이 역력하다.

한때 내가 좋아했던 아가사 크리스티, 그녀의 작품을 읽던 초기 난 그녀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하지만 좀 많이 읽다보니 순 엉터리다. 추리소설을 읽는 건 탐정이 독자와 더불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일진데, 그놈의 포와르는 단서를 지혼자 다 갖고 있다가 막판에 사람들을 불러모아놓고 일장연설을 하면서 사건을 해설해 준다. 이건, 무협지다!

나혼자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닌지라, 소설가 김형경 씨는 자전적 소설인 <세월>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여자가 싫어하는 추리작가가 하나 있다. 저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 그녀는 늘 사람들을 외딴 산장이나 망망대해의 배 같은 고립된 공간에 가두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고는 아무 단서도, 아무런 실마리도 제공해주지 않고, 아니 그것들을 더 꽁꽁 감추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소설이 거의 끝날 때까지 범인이 누구인지 추측할 만한 어떤 단서도 제공하지 않으면서, 모든 인물을 다 범인으로 지목한다. 그러다가, 가장 나중에 가서야 선심 쓰듯, 혹은 독자들을 비웃듯, 모든 범행 방식과 범행 동기와 범행 내용들을 한꺼번에 설명한다. 작가 혼자서 신나게.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읽고 나면 늘 속은 느낌이
든다. 그런 추리소설은 재미없다 (1권, 188p)]

<고양이>를 쓴 포우는 추리라기보다는 괴기에 가깝고, 을 쓴 앨러리 퀸은 귀가 안들리는 탐정을 등장시키는데, 그 탐정이 독순술을 익혀 입술 모양을 보고 상대의 말을 다 알아듣는다. 그럴 바에는 뭐하러 탐정을 귀머거리로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커가면서 추리소설을 안읽게 되는 건 추리소설이 지닌 이런저런 한계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우리 나라의 추리소설은 정말 척박한 환경에 있는지라,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좋아하는 추리소설 작가를 대라고 한다면 몇명이나 답을 할지 모르겠다. 예전에 진짜로 할일이 없어서 2권으로 된 이상우 씨의 추리소설-남한산성 어쩌고 하는 제목이었다-을 읽었는데, 어찌나 재미가 없는지 얽히고 섥힌 애정관계임에도 상당한 인내를 요구했다. 범인이 잡혔을 때 하나도 놀랍지 않는 추리소설을 쓰는 건 아무나 하는 건 아니다.

궁금한 것 하나. 추리소설을 읽으면 머리가 좋아질까? 웬지 그럴법 해 보이는 그 말은 그러나 사실이 아니다. 둘의 관계를 입증하기 위해 아이큐가 150이 넘는 인간들을 만날 때마다추리소설을 좋아했냐는 질문을 했는데, 단 한명도 좋아한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추리소설을 읽으며 대통령의 꿈을 키웠다는 루머를 접하고 나면 추리소설과 머리는 아무 관계가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머리야 타고나는 것 아닌가. 참고로 아이큐가 200이 넘던 JS 밀은 어릴 적 순 인문, 철학 책만 읽었다고 한다.

아가사 크리스티도 죽고, 코난도일도 죽었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니라 외국에서도 그들을 능가하는 뛰어난 추리작가가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서점에 들를 때 추리소설 분야는 잘 안가서 그러는지 몰라도, 요즘 들어 뜨는 추리작가를 난 하나도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에 다시금 추리소설 붐이 이는 건 왜일까? 한겨레 기사를 읽어봤더니 결론은 없고 이렇게만 나와있다.
[따라서 팬터지 소설의 한계를 탈피해보려는 출판사들이 억척스레 몸부림친다거나, 비비 꼬여들기만 하는 정치인들의 비리에 식상한 젊은 독자층이 쾌도난마식 해결책을 강력히 요구한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만족스런 대답은 아닌 듯하다.]
이게 무슨 말일까? 잘 모르겠다. 어렵게 쓰는 건 별 내용이 없을 때 취하는 태도인데 말이다. 이 기사의 제목은 이렇다. "부패가 얽히고설켜 답답한 시대 떴다 추리소설" 그러니깐 작가는 우리 나라의 부패가 추리붐을 일으켰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닐까?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 부패가 만연한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며, 이제 웬만한 부패에도 놀라지 않게 된 우리 국민들을 생각한다면 부패와 추리소설을 연결시키는 건 좀 우습다.


부패와 추리소설은 별 상관이 없다. 그저 일시적 유행일 뿐인 걸 지나치게 확대해석 하는 건 더욱더 머리를 아프게 하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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