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난 이런 말을 들으며 자랐다. "남자는 세번 운다. 태어났을 때, 부모님을 잃었을 때, 나라가 망했을 때"   커가면서 의문이 생겼다. 태어났을 때 한번만 우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이 동시에 돌아가시는 것도  아닌데다, 나라가 꼭 망하는 것도 아니잖는가. 그런 의문에도 불구하고 난 여간해서는 잘 울지 않는  아이로 자랐다. 싸우고 난 뒤에도 울면 지는 거구, 억울한 일을 당해도 울면 안됐다. 십대 시절을 회상해 보면 운 기억이 거의 없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난 눈물이 멋지게 느껴졌다. 예컨대 슬픈 영화를 보고나서 눈물을 흘리는 남자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헤어진 여인을 잊지못해 어깨를 들썩이는 남자의 모습은 멋지지 않는가? 20대 시절의 난 그래서 의도적으로 운 적이 많다. 슬픈영화를 볼 때면 눈을 깜빡이지 않아 눈물을 유도한다든지, 괜히 휴지를 꺼내 눈가를 닦는다든지 하면서. 슬픈 상황이 되면 그와는 관계없는 슬픈 기억들을 총동원해 눈물을 짜내곤 했다. 곁에 있던 여자가 그렇게 우는 날 멋지게 봤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삼십대가 되자 내가 좀 이상해졌다.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사흘 내내 울기만 했던 거야-가족들 중 제일 많이 울었다-이해할 수 있다. 벤지가 아플 때 운 것도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도전 골든벨>에서 마지막 학생이 탈락하는 걸 볼 때면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 걸까? 슬픈 드라마를 볼 때 우는 엄마를 놀리곤 했었는데, 지금의 난 안슬픈 드라마를 보고서도 곧잘 눈물을 흘린다. 어젠 가족 대항 노래자랑을 보면서도 난 울었다. 남매팀의 남동생이 얼마 전 유산을 했다는 얘기도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이미 2승을 거둔 삼촌-조카팀의 삼촌이 휠체어를 타고 나와 <사랑으로>를 부르는데 왜 그리 눈물이 나는지.

나이가 많아지니 저절로 눈물이 많아진 것일까, 아니면 눈물에 대한 젊은 시절의 동경이 꿈을 이룬 것인지 모르겠지만, 막상 눈물이 많아지고 나니 멋있기는커녕 스스로가 청승맞아 보인다. 눈물 없던 시절로 다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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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1-05-21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지금은 토끼같은 아내와 강아지같은 자식들 덕분에 많이 안우시죠?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