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에 고양이에 관해 썼던 글 세편을 연속으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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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양이를 부탁해요

두달쯤 전, 벤지가 안먹고 남긴 음식을  쓰레기 비닐을 뜯어가면서 게걸스럽게 먹는 고양이를 봤다. 그후부터 난 아침마다 음식을 만들어 고양이들에게 줬다.
언제부터인가 고양이들의 숫자가 한마리씩 늘어나, 지금은 대충 여섯 마리 정도가 아침마다 내가 주는 아침을 기다린다. 내가 음식접시를 내려놓자마자 여기 저기서 고양이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그 중에는 포우의 <검은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괴기스런 녀석도 있고, 페르시아 카펫 위에 누워 골골거리고 있어야 마땅할 외모를 지닌 고양이도 있다.


사람에 위아래가 없듯이 동물도 높고 낮음이 없는지라, 그렇게 이쁜 애들이 찌꺼기에 가까운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건 분명 마음이 아픈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내 능력이 벤지 하나 건사할 정도밖에 안되는 것을.

처음 나만 보면 도망을 치던 고양이들은 나의 선의를 이해했는지 이젠 내 모습을 봐도 그다지 놀라지 않는다. 내가 쓰다듬는 걸 허용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어찌되었건 나랑 맺어진 끈끈한 유대감은 그들이 원래부터 도둑고양이로 태어난 게 아닌, 그저 먹고살기 힘든 환경 때문에 쓰레기통을 뒤지는 신세로 전락했음을 말해준다. 출근을 안해서 늦잠을 잘 때면 집 앞에서 야옹 하면서 계속 울어대 자는 날 깨웠고, 시간이 없어 음식을 못챙긴 날은 서운한 표정으로 울어대 날 미안하게 만들었다. 처음엔 벤지만 보면 몸을 둥글게 휘곤 했지만, 벤지가 목소리만 크지 별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는지 이젠 별로 신경을 안쓴다. 한마디로 말해 고양이와 나 서로가 서로를 길들이면서 신뢰를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올 8월엔 비가 징그럽게 많이 왔다. 어제는 특히나 장대같은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먹이를 들고 고양이들을 찾았건만 눈에 띄질 않는다. 도대체 어디서 이 비를 피하고 있을까 안스럽기만 했다. 언젠가는 먹겠지 하는 맘으로 현관 앞에 음식접시를 내려놓고, 계속 내리는 빗줄기를 원망스러운 맘으로 째려보며 출근을 했다. 그날 마침 직장에 있는 청소 아주머니 하나가 팔에 긁힌 상처가 있기에 왜 다치셨냐고 물어봤다.
"광에 고양이가 한 마리 들어왔기에 빗자루로 쫓다가 할퀴었어요"
"아유, 욕보셨네요"라고 대답을 하긴 했지만, 고양이를 위해서 한평의 공간도 내주지 않는 그 야박함이 약간은 원망스러웠다. 고양이도 그 아주머니의 광에 숨어드는 게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장대같은 빗줄기를 피하려고 어쩔 수 없이 그곳을 찾았겠지. 언제부터인가 우리 도시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해버린 고양이지만, 그들에게 잠시 비를 그을 지붕을 제공해 줄 여유를 가져 달라는 게 너무 무리한 요구일까. 고양이를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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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뒤부터 일년쯤 뒤에 쓴 글입니다.

제목: 고양아, 안녕

어려서부터 전 고양이를 좋아했습니다. 제 손등을 수도 없이 할퀴었지만, 등을 활처럼 구부린 모습, 소리없이 걷는 동작하며, 목을 만져주면 골골거리는 것 등 이뻐하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물론 충직한 개를 훨씬 더 좋아했지만요. 어릴 적엔 동물을 좋아하다가 커서는 싫어하는 사람도 꽤 봤지만, 전 지금도 털달린 동물을 좋아합니다.

언젠가 서울시내에 고양이들이 들끓기 시작했지요. 그들이 먹을 것을 찾아 쓰레기봉투를 뒤지는 걸 본 어느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렇게 이쁜 애들이 왜 쓰레기를 뒤적이며 살아야 할까"
그래서..... 전 고양이들에게 아침을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고양이들은 식사 때에 맞춰 저희집 앞으로 모였죠. 절 보면 야옹야옹거리는 모습이 참으로 귀여웠습니다.

그러길 거의 일년이 다 되어 가던 지난주, 전 한마디 예고도 없이 일방적으로 식사를 끊었습니다. 우리집 앞에 진을 치는 고양이 숫자가 너무 많아지고-새끼들까지 다 데려오더라구요-저희집 앞이 지저분해지는 것도 그렇고, 동네 주민들의 원성이 자자해 더이상 견딜 수가 없더군요. 오늘이 4일째, 고양이들은 매우 아쉬워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벤지 오줌을 뉘러 밖에 나갔더니 절 보고 따라다니면서 "야옹"거립니다. 그들의 울음소리가 "밥줘"로 들려 너무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도둑고양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듯, 도둑고양이로 태어나는 고양이도 없습니다. 그들 역시 적당한 먹이와 숙소만 제공된다면, 얼마든지 애완용 고양이가 될 수 있지요. 절 보면 드러누워 장난을 치려하는 녀석들을 보면서 전 제 생각이 맞다고 확신하곤 했습니다.

아무것도 안준 채 냉정하게 들어와버린 지금, 깨끗해진 집앞과는 달리 제 맘은 편치 않습니다. 절 보던 고양이들의 슬픈 눈이 생각나서요. 혹자는 이렇게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지금 사람도 굶는 와중에 고양이가 굶는 게 뭐 대수냐"고. 그런 말도 일리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전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노숙자들에게 아침 한번 대접해 봤냐고요. 자기는 아무 것도 안하면서, 남이 하는 선행-물론 제가 하는 게 선행인지 아닌지 헷갈리지만-에 딴지를 거는 건 나쁜 일이 아닐까요? 노숙자를 보면 마음이 아프지만, 전 제 눈앞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는 노숙 고양이들이 더 안스럽습니다. 그래도 대접받고 살았던 시기가 있을 노숙자 아저씨들에 비해, 출생 때부터 도둑고양이로 찍혀 박해만 받았던, 그래서 사람에게 쉽사리 정을 못붙이는 고양이들이 제 맘을 더 아프게 합니다.

며칠만 더 버티면 고양이들은 더이상 우리집 앞에 진을 치지 않을테고, 새로운 곳을 찾아가겠지요. 그들에게 아침 식사를 하는 몇개월간, 알게 모르게 그들과 정이 들어버려, 이렇게나 마음이 아픈가 봅니다. 안만나면 쉽게 잊혀지는 사람과 달리, 동물과 쌓은 정은 이렇듯 질긴 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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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로부터 한달 후에 쓴 글입니다

밥을 안준 후에도 고양이들은 쉽사리 우리집 앞을 떠나지 않았다. 약삭빠른 놈들은 이미 자취를 감췄지만, 그중 몇마리는 아침에 벤지와 함께 산책을 나갈 때마다 내게 "야옹 야옹"  울면서 시위를 했다. 그들은 내게 "왜 우리랑 한마디 상의도 없이 그런 일을 벌이느냐"고 말하는 듯했다. 미안한 표정으로 두손을 내저어도, 그들은 내 맘을 몰라줬다.

지난 일주일간, 계속 비가 왔다. 자신들을 환영해 주는 곳이 없을텐데, 고양이들은 어디서 비를 피할까. 비가 와도 고양이들은 아침마다 우리집에 왔다. 내가 현관문만 열면 우리차 밑에서 야옹거리며 한두마리씩 기어나왔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안스러운지 가슴이 찢어졌다.

지난 토요일, 날 보며 뛰어나온 고양이 한마리가 다리를 전다. 방심하다가 차바퀴에 다리를 다쳤는지, 아니면 심성 고약한 사람에게 두들겨 맞아 다쳤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일까. 녀석의 얼굴이 너무 슬퍼 보인다. '다른 때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밥 좀 줘요!'라고 말하는 듯.

그러던 나도 서서히 고양이들의 존재에 무심해졌다. 아픈 현실에 더이상 아파하지 않게 될 때, 난 인간이 무서운 존재라는 걸 느낀다. 그 고양이들은 죽을 때 날 원망할까? 아니면 몇달이라도 아침밥을 챙겨준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할까. 사람과는 달리, 대개의 동물은 은혜를 잊지 않는 법이니, 후자가 아닐까.

가끔씩 생각을 한다. 서로 싸워가면서 밥을 다 먹은 고양이들이 입맛을 다시며 어디론가 사라지는 모습을. 장마가 끝났다는데, 오늘 밤에도 비가 장대같이 온다. 지금 이순간, 그때 그 고양이들은 어디서 비를 긋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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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뒷얘기를 조금 하자면, 다리를 다친 고양이는 아직도 저희집 앞에서 얼쩡거립니다. 다른 녀석은 다 외면해도 그녀석한테만은 그럴 수 없더라구요. 다른 녀석이 없을 때를 골라 몰래 그녀석에게 먹이를 줍니다. 가끔은 기회를 노리고 있던 시커먼 고양이가 맛있는 것만 채서 달아나기도 하지요. 그래도 예전처럼 고양이가 들끓지는 않습니다. 그 덕분에 동네 사람들의 민원도 이젠 없답니다. 며칠 그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 죽은 건 아닌가 하며 마음아파했는데, 오늘 아침 그 녀석이 다시금 야옹거리며 앉아 있더군요.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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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의꿈 2004-01-17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참 착하시네요- 고양이가 준 밥을 먹었다는게 신기하지만-(나도 한번 예전에 시도한 적은 있었는데 실패했거든요).. 자신이 무감각해져 간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거에요- 누가 그랬듯이 진짜 바보는 자기가 바보인줄 모른다고 하잖아요-..
다리저는 고양이가 불쌍하네요-..(도둑고양이로 태어난 고양이들은 다들 불쌍하긴 하죠- 어떤 고양이들은 혈통 좋은 고양이 밑에서 태어나 한번 팔리는데 수백만원씩 하는데.. 인간과 다를바 없죠;)

마태우스 2004-01-17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맛있는 걸 주면 잘 먹는답니다. 요리 실력의 차이가 아닐까 싶네요^^ 하여간 다리다친 고양이, 참 안됐습니다. 적절한 때 치료만 받았다면 그렇게 안되었을텐데, 마음이 어찌나 아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