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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평점 :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8/0715/pimg_7472501531955805.jpg)
1999년, 인천 모 건물 4층에서 불이 났다.
불은 계속 번져 2층까지 내려갔는데,
당시 2층에는 호프집이 있었고,
그 안에서는 축제를 마친 중. 고교생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고,
56명이나 되는 사망자 대부분은 바로 그들이었다.
술값을 받지 못할까봐 주인이 2층 호프집의 문을 잠가 버린 탓에
탈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 주인은 불이 커지자 비상구로 혼자만 탈출하는 엽기성을 보였는데,
그 당시 여론은 “술을 먹은 중고생이 문제다.”였다.
정말 부끄럽지만 나 역시 그런 여론에 고개를 끄덕였다.
책이 필요한 이유는 이런 잘못된 생각에 경종을 울려줄 수 있어서다.
호프집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경애의 마음>의 한 대목.
[맥주를 마셨다는 이유만으로, 죽은 56명의 아이들이 왜 추모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하는가 생각했다. 그런 이유가 어떤 존재의 죽음을 완전히 덮어버릴 정도로 대단한가.
그런 이유가 어떻게 죽음을 덮고 그것이 지니는 슬픔을 하찮게 만들 수 있는가. (71쪽)]
이 구절은 유령이 스크루지를 인도하듯 나를 1999년으로 가게 했고,
신문을 보면서 “벌써부터 술 마시고, 싹수가 노랗지”라며 혀를 차던 내 모습을 보게 해줬다.
삶의 대부분을 모범생으로 살아왔다는 자부심이 만들어낸 그 허위의식은
사건의 본질을 보려하지 않고 여론에 편승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난 앞으로도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지 않았을까.
책을 읽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나로서는 도저히 생각하지 못할 획기적인 표현을 발견할 수 있어서다.
책의 주인공 상수는 재수학원에서 해병대를 나온 조교로부터 혹독한 대우를 받는다.
나태해질 때마다 선착순 달리기나 뜀뛰기 등의 얼차려를 시키는 그 조교에게
상수는 분노와 원망을 느끼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이 이 관계에서 약자이며, 그의 선처와 용서를 바라게 된다는 것을 느낀다.
늦잠을 잔 어느날, 오늘도 또 얼차려를 받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운동장에 나갔더니
조교가 매우 평화로운 표정으로 상수를 대한다.
“제가 지각했거든요”라고 상수가 말하자 조교가 답한다.
자신은 이미 계약이 끝났고, 그래서 더 이상 얼차려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상수는, 좀 더 정확히 김금희 작가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 낸다.
[...결론은 사랑이라거나 연애라거나 하는 것에 복무하는 이들이 일종의 노동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다양한 통로로 물질교환이 일어났으며 권력관계가 조성되었고 결국에는 어느 한편이나 쌍방의 착취로 관계가 종료되기까지 끊임없이 성실과 근면을 강요받았다. (153쪽)]
연애가 노동이고 거기 종사하는 자들이 노동자라니, 이렇게 공감이 갈 수가.
내가 권력자에게 했던 수많은 노동들이 생각났고,
그래서 갑자기 욱 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지만,
이 나이에 새삼 욱할 필요가 뭐가 있겠나 싶어서 다음 부분을 계속 읽어 내려갔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뭔가 많이 느끼게 해주는 소설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