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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편안한 죽음 - 엄마의 죽음에 대한 선택의 갈림길
시몬느 드 보부아르 지음, 성유보 옮김 / 청년정신 / 2015년 10월
평점 :
품절
모든 인간은
죽는다.
이 책의 끝을 저자는 이렇게
맺는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그러나
개인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돌발사건이다.
죽음은,
그가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무엇으로든 정당화할 수 없는 폭력이다.>(217쪽)
이 문장
중,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저자에게 하나의 화두가 되었던 말이다.
같은
말로 제목을 삼은 소설이 그 결과로 나왔는데,
(1943년에
집필을 시작하여)
1946년에
출간된 <모든
인간은 죽는다>가 바로
그것이다.
그 소설에서 보봐르는
'죽음'이라는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죽음과
삶의 문제를 천착하는데,
이
책의 말미에 그 소설에서 생각한 바로 그 말 –
모든
인간은 죽는다 -
을
반복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
책은?
1963년
10월,
저자가
로마를 여행하던 중에 어머니의 사고 소식을 듣게 된다.
그
소식을 듣고 파리로 돌아오게 되는데,
사고를
당한 어머니는 병원으로 옮겨져 투병생활을 하다가 한달 후 세상을 떠난다.
저자는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는 동안,
어머니와의
관계를 생각하고,
화해하고,
그리고
더 나아가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실존적 존재인 ‘한
인간인 어머니’에
대한 성찰을 담아,
이
책을 1946년에
펴낸다.
그러므로,
이
책은 저자의 모든 것 –
철학은
물론이고,
인생
그 자체,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
다 들어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엄마와의 화해
저자는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동안
어머니와의 관계를 성찰하게 된다,
다음은 그런 주제에 관한 몇가지
생각들이다.
<나는
이번에는 서로가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5분이
지나도 적당한 이야기가 생각나지 않았다 엄마와 나 사이에 공동관심사가 얼마나 적었던가를 생각해 보았다.>
(138쪽)
<오랫동안
둘 사이에 쌓였던 어떤 회환 같은 것들이 치유되고 있음을 느꼈다.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 같았던 해묵은 애정이 되살아났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말 몇 마디 또는 몸짓 속에는 애정이 배어들고 있었다.>
(154쪽)
살아있다는 것
<엄마는
살아있고,
의식있는
상태였지만,
당신이
살아있는 모습이 어떤 것인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155쪽)
<“정신이
흐려지는구나.”
회진을 온
P
박사에게
엄마가 하소연을 했다.
“내
의식이 없는 거 같아요.”
“의식이
없으시다면 그걸 느끼지도 못하는 걸요.”
의사의 말에 엄마는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
(96쪽)
<엄마가
나무라듯이 말했다.
“잠을
자다니 오늘을 살지 못한 셈이야.
나는
살아 있는 날들을 그냥 보내버리고 있어.”
하루하루가 엄마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것이었다.>
(170쪽)
인간은 고독한 존재
<나는
사르트르에게 엄마의 입에 대해서,
그날
아침에 보았던 엄마의 모습을 그대로 이야기 했다.
그리고
내가 거기서 읽었던 것들을 빼놓지 않고 이야기했다,
......결코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던 고독을,
그
고독은 죽음 앞에 혼자 서야 하는 고독이자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는 삶에 대한 고독이었다.>
(55쪽)
<엄마는
아주 쉽게 상처를 받는 성격이었다.
한
마디 비난을 20년이
지나서도,
아니
40년이
지나서도 두고두고 곱씹을 수 있는 분이었다.>
(74쪽)
인간은 고독한
존재이길래,
항상
끊임없이 외부의 관심을 추구한다.
그것을
저자는 어머니로부터 볼 수 있었다.
<엄마는
자신을 돌봐주는 걸 즐거워하고 끊임없이 우리의 관심을 당신 쪽으로 이끌었다.>
(109쪽)
<엄마의
친구와 친척들이 엄마 소식이 궁금해서 찾아왔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들을 맞이할 기력이 없어서 대부분 문 밖에서 돌아가게 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걱정을 해준다는 게 엄마에겐 여간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145쪽)
<온종일
엄마의 손을 잡고 있었는데,
엄마가
‘나를
이대로 보내지 말아 달라!’며
애원을 하는거야.>
(121쪽)
존재와 부재
다음은 어머니의 죽음을
보면서,
저자가
떠올린 생각들인데,
사르트르와
함께 실존주의에 입각하여 삶을 관조한 저자의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우리에게
소중한 누군가가 사라지게 되면 우리는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대해 고통스런 자책감을 수도 없이 느끼게 된다.
그는
죽음으로써 오히려 그만의 존재를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해준다.
그는
그가 없음으로써 완전한 무(無)가
되기도 하고 그가 있음으로 온전히 존재하는 세계마냥,
거대한
존재가 된다.>
(93쪽)
<지상의
존재가 무(無)에
이르는 과정을 나는 익숙할 때까지 지켜보았다.>
(199쪽)
<그렇게
기다려 왔으면서도 또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었던 모습,
시체가
된 여자가 엄마 대신 침대위에 누워있었다.
손도
이마도 싸늘했다.
여전히
엄마였다.
그리고
영원히 엄마의 부재였다.>(177쪽)
타인의 고통에 대하여
그런 죽음을 눈 앞에서 목도한
저자는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고통을 단지 엄마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모두에게로 확장시킨다.
바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다.
<엄마의
죽음은 비교적 편안한 것이었다,
“나를
짐승과 같은 사람들한테 맡겨두지 마.”라고
하던 엄마의 말이 생각난다.
나는 누구에게도 그렇게 호소할 수
없을 모든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다.
자기
자신에게 단 하나의 보호자도 없이 무심한 의사들과 혹사당하는 간호사들의 인색한 자비 앞에서 무방비 상태로 놓여 졌을 때,
그는
얼마나 고통스러울 것인가?>(194쪽)
이 책의
결론은?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결론은
무엇일까?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나도 엄마처럼 저(관)
속에
들어가게 되리라는 사실이야.
그게
아니라면 너무나 불공평할 테니까 말이야.”
그렇다,
우리는
우리들 모두의 장래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불행한
사실은 누구나 똑같이 겪게 될 이 일을 우리는 각자 혼자서 겪어야 한다는 점이다.>
(204쪽)
이 말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또한
불행하다는 생각으로 끝을 맺으니,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어쩌랴!
그런
두 가지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존재가 바로 우리네 인간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