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교양 수업 - 내 힘으로 터득하는 진짜 인문학 (리버럴아츠)
세기 히로시 지음, 박성민 옮김 / 시공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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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제 리버럴 아츠의 세계로 

 

이 책은?

 

저자 세기 히로시는 일본의 법관이다. 법관으로 재직하면서 인문학에 대한 열망으로 많은 책들을 섭렵한 결과 자연과학, 인문사회과학, 문학, 음악, 영화 등에 대해 넓고 깊은 지식을 갖추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리버럴아츠를 배우는 법에 대한 자신만의 노하우를 모두 공개하여, 리버럴 아츠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리버럴 아츠 (liberal arts) 란 무엇인가?

 

먼저 이 책에서 거론하는 리버럴 아츠라는 용어가 생소하게 들린다.

그 말은 보통 쓰이지 않는데, 리버럴 아츠란 무엇일까? 저자는 이렇게 정의한다.

 

인간의 정신을 자유롭게 하는 폭넓은 기초적 학문과 교양”(6)

 

저자가 부연설명하고 있는 것을 들어보자,

 

<다시 말해 리버럴아츠란 살아 있는 교양을 몸에 익혀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 다음 그것을 횡단적으로 연결함으로써 넓은 시야와 독자적인 관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좀 더 넓은 의미에서는 그렇게 얻은 발상을 살려 새로운 일이나 기획에 도전하여 보다 깊고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리버럴아츠는 자연과학, 인문사회, 철학뿐만 아니라 넓게는 비평, 논픽션, 그리고 예술의 각 분야까지도 포함할 수 있습니다.>(6)

 

그렇다면 리버럴 아츠는 왜 필요할까?

리버럴 아츠는 혼자 힘으로 생각하고 그 생각을 확장함으로써 자신의 길을 개척할 수 있게 돕기 때문이죠.”(7)

 

덧붙여 말하자면, 스스로의 힘으로 사고할 수 없으면 인생을 주체적으로 개척할 수 없기에 이런 힘을 기르기 위하여 리버럴 아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이 책 <나를 위한 교양 수업>의 부제는 내 힘으로 터득하는 진짜 인문학이다.

일단 이 책에서 방점은 내 힘으로에 찍힌다.

그래서 이 책은 저자의 해설을 따라가면서 각 분야별로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분야는 그래서 매우 다양하다.

 

크게 분류하자면, 자연과학, 철학과 인문사회, 예술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그 하위 내용으로는 자연과학에서는 생물학, 뇌신경과학과 정신의학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철학과 인문사회에서는 거기에 논픽션을 더하고 있다.

예술에서는 문학, 영화, 음악을 다루고 있으며, 마지막으로는 미술을 다루고 있다.

그러니 이 책에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인문학보다 더 한층 폭넓게 다양한 것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것을 알고 나면 어떤 일이?

 

문제는 이것이다.

그러한 것을 알아서 뭐한다는 것인가? 단지 수준높은 교양만 쌓는 것은 아닌가?

잡다한 지식을 모아 놓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런 의문을 불식시키기 위하여 각항목마다 그것을 배우는 의미를 부여해 놓고 있다.

 

자연과학을 배우는 의의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과 세계를 인식하는데 있어, 큰 틀을 제시해 준다는 것이다.

자연과학은 인간 존재를 규정하는 모든 조건들을 정확하고 치밀하게 밝혀놓고 있기 때문에 자연과학에 대한 공부를 한다는 것은 그러한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를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며, 또한 세계를 인식하게 되면 그 안의 한계적 존재인 인간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철학과 인문사회를 배우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이 세계를 살아가는데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철학과 인문사회를 배우다 보면, 비평적이고 구조적인 관점과 사물을 파악하는 가치관이 생기게 된다.

 

또한 예술을 배우면?

거기에서 즐거움을 얻고 예술을 수용하는 데에서 우리의 내면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

예술 작품을 대할 때에 그것을 수용하기 위하여 수용능력과 해석능력이 필요한데, 그러한 능력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리버럴 아츠가 가져다 주는 힘

 

그래서, 책이나 예술 등의 리버럴아츠를 통해 구체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첫 째는 이 세상을 바로 보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곤란한 상황에 부딪혀도 쓰러지지 않고 신념을 굽히지 않으며 시스템에 사대주의적으로 순응하지 않고 자기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을 관철시켜 나가는 힘 말이다.>(34)

 

둘 째는 살아가는 즐거움과 사고하고 느끼는 즐거움이다.

저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삶에는 현실 속의 삶과, 책이나 작품을 수용하고 창조(수용에는 수용하는 사람의 창조적인 활동도 포함된다)하며 살아가는 삶, 즉 마음속의 삶이 있다. 리버럴아츠를 접하는 것은 후자의 삶을 충실히 따르면서 현실의 삶에서 수용할 수 있는 가치와는 또 다른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에게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는 행위는 좋은 벗과 알찬 시간을 보낼 때와 똑같이 큰 의미가 있다.>(35)

 

더하여, 이 책은?

 

저자의 학문에 대한 열망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은 저자가 각 항목의 말미에 붙여놓은 추천도서 목록이 아닐까 한다. 

 

그런 도서 목록을 보면, 저자가 얼마나 많은 책들을 섭렵했는지를 알 수 있는데, 저자는 그런 책들을 독자들로 하여금 읽어 더 깊은 리버럴 아츠의 세계를 만끽해보라고 권면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좋은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거기에서 언급된 책을 찾아 읽으려는 생각을 갖게 되니, 그쯤하면 좋은 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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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임의 바다
팀 보울러 지음, 서민아 옮김 / 놀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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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헤티를 이해하기 위하여 

 

이 책은?

 

작가인 팀 보울러는 성장소설의 대가로 알려지고 있다.

<리버 보이>로 잘 알려진 작가의 신작인 <속삭임의 바다> 역시 한 소녀의 성장을 다룬 직품이다.

무대는 작은 섬마을이다. 그런 섬마을에서 헤티라는 소녀를 주인공으로 하여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런 식으로 읽어 보았다.

 

이 소설에서 먼저 짚고 싶은 것은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다.

섬마을이라 육지와 고립되어 있어서 그런지, 마을 사람들은 독선적이고 고집이 세다. 좌장격인 퍼 노인도 그렇고, 심지어 이 소설의 주인공인 헤티도 마찬가지다. 

 

또한 섬마을, 외부로부터 고립된 지역. 지형적으로 그런지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 공동체는 무척이나 폐쇄적이다.

 

그런 지형과 사람들의 페쇄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묘사 등을 통하여, 나는 이 책을 헤티라는 소녀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상황을 우리가 속해 있는 조직과 개인으로 바꿔가면서 읽어 보았다.

 

먼저 우리가 속해있는 조직이 그렇게 폐쇄된 집단이라면?

그러한 집단에서 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외부에서 어떤 자극이 왔을 때, 거기에 모두다 섬마을 사람처럼 배척하고 등을 돌리는데 과연 나는 헤티처럼 그들에 맞서는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헤티의 성격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인공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헤티는 어찌 보면 문제아 같아 보인다. 할머니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물론, 다른 마을 사람들과도 사이가 원만하지 못하다. 자기 고집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저자는 헤티의 성격을 그렇게 고집이 있는 것으로만 묘사하고 말았을까?

성격이 그러니까, 별 수 없다?

그게 아니라. 저자는 헤티에게 다른 그 무엇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한 것 을 하나 마련해 준다. 그게 바로 바다유리다.

 

바다유리는 비전(vision)

 

여기에서 바다유리의 존재를 다시 생각해 본다.

헤티는 바다유리에서 무언가를 본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같은 바다유리를 보면서도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바로 남이 갖지 못하는, 남이 보지 못하는 비전(vision)이 아닐까?

 

그 바다유리를 통해 보이는 인물이 바로 바다 건너 온 노파(?- , 이 번역이 참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노파라니?)를 만났을 때에 바로 알아보게 되는 것도, 바로 그런 비전을 헤티가 보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능력, 바로 그게 헤티만이 가지고 있는 비전이다.

 

그래서 그런 비젼을 가지고 있었기에, 헤티가 마을 사람들의 의견에 반대하는 것도, 심지어 할머니의 말에도 거역하는 것이 이해가 되는 것이다. 남들과 다른 비전을 가진 사람은 한 때(?) 자기가 속한 조직에서 따돌림을 받기도 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이 소설은 그런 헤티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려 놓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녀의 성격이 이런 상황 고립된 섬마을 - 에서는 필요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다 폐쇄된 공간에 익숙해져, 변화를 바라지 않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헤티의 존재는 빛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이번에는 자기가 속한 조직차원이 아니라, 개인 차원으로 적용해 보자.

외부와 담을 쌓고 자기만의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 많지 않은가?

그런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외부로부터 어떤 자극을 받았을 때, 그 자극에 반응하는 모습이 바로 퍼 노인을 비롯한 섬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까?

 

내 마음속에도 분명 변화에 반대해서, 현실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 안에는 변화해보려는 헤티를 닮은 마음과 변화에 반대하고 안주하려는 섬마을 사람들을 닮은 마음이 서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이 헤티라는 소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성장소설이라면, 이 이야기를 읽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상황에 적용하여, 나 자신의 성장을 생각해보는 그러한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헤티의 고집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 헤티를 보여준 소설로 나는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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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 리더 vs 힐링 리더
송수용 지음 / 스타리치북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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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 리더 vs 힐링 리더

 

이 책은?

 

리더십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리더를 킬링 리더와 힐링 리더로 구분하여 리더십 이론을 전개한다.

 

킬링 리더는 자신의 언어와 행동, 판단과 선택을 통해 구성원들의 사기를 무너뜨리고, 표면적으로는 조직을 위한다는 대의명분하에 실제로는 자신의 성격대로 조직을 이끌어 결국 조직의 지속 가능성에 치명적인 해악을 끼치는 리더”(5)을 말한다.

 

또한 저자는 킬링 리더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기도 한다.

킬링 리더는 리더의 자리에 있으면서 구성원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자를 말합니다. 여기서 죽음은 신체적인 죽음만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의 의욕과 사기를 무너뜨리고 활력과 생동감을 앗아가는 심적인 죽음도 포함됩니다.”(16)

 

그 반대의 리더인 힐링 리더는 자신의 마음과 성격을 먼저 힐링해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하여 다른 사람에게도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존중으로 대함으로써 구성원들이 스스로 의욕과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의 모든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심적, 물리적 여건과 환경을 제공하는 리더”(7)를 말한다.

 

또한 힐링 리더를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힐링 리더는 리더가 먼저 힐링을 경험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원들의 힐링을 도우며 나아가 공동체 전체가 행복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리더를 말합니다.”(33)

 

그런 이분법이 타당한 것인가?

 

그런데  리더를 킬링 리더와 힐링 리더, 두 가지 모습으로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

저자는 그런 이분법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리더를 킬링 리더와 힐링 리더로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실제로는 상당히 무리라는 것을 잘 알지만 리더들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단순 명쾌하게 제시하기 위해서 두 개념의 대결 구도로 구성하였다.”

 

저자의 말은 그렇게 이분법으로 리더를 구분한 필연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있는 말이다.

그래서, 결국, 이 책은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각자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여, 어떤 리더인지? 그래서 혹시라도 킬링 리더라면 자기를 변화시켜서 힐링 리더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권면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이 책에서 전개하고 있는 리더십 이론의 전개 과정이 참으로 논리적이다..

이 책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1.나는 킬링 리더인가 힐링 리더인가

2.먼저 힐링을 경험해야 힐링 리더가 될 수 있다 '셀프 힐링'

3.힐링된 최강의 팀으로 혁신을 선도한다 '팀 힐링'

4.1,000년을 지속할 위대한 기업을 빚는다 '컬처 힐링

 

과연 한 조직에서 리더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이 질문에 이 책은 답변을 하고 있다.

한 조직의 리더는 전 직원의 물심양면에 걸친 행복추구”(31)를 목적으로 하여야 한다.

따라서 리더는 셀프 힐링을 경험하고, 조직을 힐링해야 하며, 더 나아가서 기업 전체의 문화적 환경까지 힐링할 수 있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

그런 순서를 따라서 저자는 리더십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밑줄 긋고 싶은 글

 

(ship)중에서 최고의 배(ship)Leadership이다. (15)

 

어제의 탁월한 리더가 오늘 킬링 리더가 되는 이유는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6)

 

사람의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어떤 전략과 방법도 무용지물이라는 것.(31)

 

리더는 오히려 팔로워들이 자신만 따르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리더는 팔로워들이 리더가 추구하는 비전, 조직이 지향하는 비전을 따르도록 인도해야 합니다.(56)

 

사색이란 수많은 소음 가운데 자신에게 의미있는 소리를 정확히 포착하는 것이다.(126)

 

사색을 위한 방법, 세 가지 (127)

첫째는 독서를 통한 사색.

둘째는 글쓰기를 통한 사색.

셋째는 화두를 통한 사색.

 

감성과 이성의 차이는 이성은 결론을 낳지만 감성은 행동을 낳는다는 점이다. (134)

 

이 책의 가치

 

저자는 리더십 이론을 개인적 역량에 한정해서 전개하지 않고, 팀 전체적 측면에서 고찰한다.

따라서 리더십은 개인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전체 조직을 위한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리더십을 고찰하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리더십에 관한 추상적인 개념이나 이론적인 용어들을 나열하지 않고  다양한 사례들을 제시하면서 리더십을 이론이 아닌, 살아있는 실체임을 보여주고 있는 점에 가치가 있다.

 

다음으로 리더로 하여금 힐링 리더가 되기 위하여 조직 전체를 포괄하고 돌아볼 수 있도록 하며 조직 전체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려는 마음을 갖게 해주는 점, 이 책의 또 다른 가치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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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신부님
장은경 지음 / 밥북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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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신부님

 

이 책은 ?

 

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요셉이라는 신부를 중심으로 그와 인연(因緣, 人緣)이 있는 여러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묘한 것이 여기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가 서로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다.

그래서 그 상처를 부여안고, 고통을 받으면서 살아가는데, 그 상처를 치유하려는 시점마다 해당 인물들은 죽음을 맞이한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가슴 아픈 소설이다.

 

읽기 어려웠다.

 

요셉 신부를 둘러싸고 그가 신부가 되기 전에 맺었던 인연들이 신부가 된 후의 인생에 계속 연결되면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요셉 신부의 일인칭 시점에서 서술하는 소설이다.

 

그런데 이런 구조는 마지막에 가서 무너진다.

바로 요셉신부가 죽기 때문이다. 요셉신부가 죽으니까 화자가 없어지게 되는데, 이야기는 덜 끝났기 때문에 부득이 에필로그에서 제 3자를 등장시켜 소설을 마무리한다.

그러니 굳이 일인칭으로 소설을 끌어가려는 의도가 무색해지는 것이다.

 

또한 이 소설에서 화자의 의식의 흐름이 과잉상태를 보이는 바람에 읽기가 어려웠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프롤로그에서 3장까지, 요셉 신부의 일인칭 서술로 끊임없이 현재와 과거를 오고 간다.

여기에는 3개의 시제가 등장한다. 현재, 과거 (, 중간과거), 대과거 (아주 먼 과거).

일단 프롤로그에서 현재 시점에서 시작한다.,

1장에서는 현재 시점에서 시작하여 요셉신부의 의식을 인예사에서 맺은 인연을 회상하는 과거시점(중간과거)으로 돌아간다. 그러다가 다시 현재시점으로 돌아온다.

다시 고덕사가 등장하는 과거시점(대과거)으로 간다.

 

2장은 현재시점에서 시작해서, 다시 인예사의 과거시점으로 갔다가 다시 현재로.

3장은 고덕사의 과거시점으로 시작한다. 다시 현재시점으로, 그리고 인예사 현재, 다시 인예사 과거, 다시 인예사 현재.

 

이렇게 인예사와 고덕사를 두고 과거와 현재 시점의 서술이 변화무쌍하게 전개된다.

그래서 3장에서 나는 다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43) 라는 문장에서 잠시 흐름을 놓쳤다. 이게 과거의 이야기인가, 아니면 현재의 시점인가?

자세히 정신 차리고 읽어보니, 현재의 시점이다.

 

이렇게 프롤로그에서 제 3장에 이르기까지, 독자들은 요셉신부가 서술하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기 바쁘다.

 

그 뒤에서도 같은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도 한다.

6장이다. 6장은 현재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요셉 신부는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공중전화를 찾아 사제관으로 전화를 걸었다.”(75)

전화 통화를 마치고, 갑자기 이제 멀고 먼 과거, 요셉 신부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다.

다시 또 신부가 되고 나서의 과거로 돌아간다.

이어지는 7장에서는 6장의 끝 부분인 과거 속 이야기를 하고 있다,

거기에서 다시 과거로, 그리고 현재로,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또 한 번 흐름을 놓쳤다.

 

저자는 요셉 신분의 그런 의식의 흐름을 잘 따라가며 서술하고 있었지만, 독자인 나는 피곤했다.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아쉬운 대목이다.

 

이 책을 읽고나서

 

인연이 참으로 무서운 것임을 새삼 깨달았다.

사람들은 이렇게 얽히고설켜 살아가는가?

 

요셉 신부를 돌봐준 지연스님은 S산 밑에 있는 찻집 푸른섬의 주인 마리아의 오빠와 인연이 있다. 한 때 부부였던 사이.

지연스님이 거처하는 인예사는 마리아의 아버지가 시주해서 만들어준 것. 그것도 인연이다.

지연스님의 죽음은 요셉 신부가 인예사에서 거처하는 동안에 요셉 신부로 인한 것. 그것도 인연이다. 그러니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자는 것, 새삼 깨닫는다.

또 하나, 이 소설에는 죽음이 많이 등장한다.

요셉 신부의 아버지의 죽음, 마리아의 아버지의 죽음, 지연 스님의 죽음, 그리고 요셉 신부의 죽음까지.

 

그런데 그들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들 죽음이 이 소설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지연 스님의 죽음은 이야기를 끌어가는 데 중요한 모멘텀이 되는데 반하여 요셉 신부의 죽음은 이야기를 마무리하게 만든다.

이 이야기에서 요셉 신부의 죽음을 통하여 주려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막막한 느낌을 받았다.

인생은 이런 것인가? 신이 있다면, 신이 있어 이들의 인생을 움직인다면 왜 그런 인연을 만들었을까? 왜 그들의 인연을 그렇게 끌어가는가? 죽음이 그들 인연에 꼭 필요한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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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이해하는 군주론 클래식 브라운 시리즈 1
김경준 지음 / 생각정거장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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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이해하는 군주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책이다.

 

첫째는 그 내용이 오해하기 딱 좋게 되어 있다, 그래서 그 책 몇 구절만 가지고 마키아벨리를 오해하고, <군주론>을 오해한다. 그냥 권모술수를 위한 책으로 오해한다.

 

이 책의 편자도 그 점을 안타까워한다.

<군주론>을 대개는 읽지도 않고 섣부른 고정관념으로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지지 않는 마피아 철학정도로 간단히 폄하해 버린다는 것이다. (6)

 

들 째는, 지금껏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들이 그 내용을 오해하기 쉽게 만들었다.

제대로 된 번역이 드물다는 것, 그래서 제대로 읽고 싶어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군주론>에 대하여 직접 읽은 적이 없이 그저 다이제스트한 판을 읽거나, 얻어 들은 이야기로 군주론을 재단하려 든다.

 

따라서 군주론은 제대로 이해하자면 많은 시간과 수고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책의 편자는 <군주론>을 읽고자 하는 독자들이 그런 어려움에서 벗어나도록 이 책을 편집했다.

 

첫째는 <군주론>의 내용 중, 뺄 것은 빼고 남길 것만 남겨 놓았는데, 그 부분이 아주 적절하다. 물론 <군주론>의 내용이 복잡하거나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그 중에 전체를 이해하는데 굳이 읽어야할 필요가 없는 부분도 있는데, 편자는 그것을 과감하게 삭제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군주론>을 알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 놓았다.

 

둘째, 다른 번역본들은 그 내용에만 치중해서 군주론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 놓지 않은 책들이 많다. 설명을 해 놓되, 각주 정도로만 해 놓았다.

 

그런데 이 책은 본문중에서 필요한 부분만 뽑아내었고, 대신 거기에 편자의 해설을 붙여 놓았다. 그러니 <군주론>을 더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게다가, 해설에서는 과거의 이야기로 <군주론>을 읽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으로 읽어낸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런 설명을 듣고 있으면 바로 우리나라의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를 연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적(現在的)이다.

 

 

또하나, 이 책은 크기가 손에 들고 다니기에 적당하여, 그야말로 곁에 두고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런 장점이 있음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읽어본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군주론>을 알기 쉽게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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