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헤티를 이해하기
위하여
이
책은?
작가인 팀 보울러는 성장소설의
대가로 알려지고 있다.
<리버
보이>로
잘 알려진 작가의 신작인 <속삭임의
바다>
역시
한 소녀의 성장을 다룬 직품이다.
무대는 작은
섬마을이다.
그런
섬마을에서 헤티라는 소녀를 주인공으로 하여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런 식으로 읽어
보았다.
이 소설에서 먼저 짚고 싶은 것은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다.
섬마을이라 육지와 고립되어 있어서
그런지,
마을
사람들은 독선적이고 고집이 세다.
좌장격인
퍼 노인도 그렇고,
심지어
이 소설의 주인공인 헤티도 마찬가지다.
또한
섬마을,
외부로부터
고립된 지역.
지형적으로
그런지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 공동체는 무척이나 폐쇄적이다.
그런 지형과 사람들의 페쇄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묘사 등을 통하여,
나는
이 책을 헤티라는 소녀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상황을 우리가 속해 있는 조직과 개인으로 바꿔가면서 읽어 보았다.
먼저 우리가 속해있는 조직이
그렇게 폐쇄된 집단이라면?
그러한 집단에서
‘나’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외부에서 어떤 자극이 왔을
때,
거기에
모두다 섬마을 사람처럼 배척하고 등을 돌리는데 과연 나는 헤티처럼 그들에 맞서는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헤티의 성격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인공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헤티는 어찌 보면 문제아 같아
보인다.
할머니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물론,
다른
마을 사람들과도 사이가 원만하지 못하다.
자기
고집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저자는 헤티의 성격을 그렇게
고집이 있는 것으로만 묘사하고 말았을까?
성격이
그러니까,
별
수 없다?
그게
아니라.
저자는
헤티에게 다른 그 무엇 –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한 것 –을
하나 마련해 준다.
그게
바로 바다유리다.
바다유리는
비전(vision)
여기에서 바다유리의 존재를 다시
생각해 본다.
헤티는 바다유리에서 무언가를
본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같은 바다유리를 보면서도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바로 남이 갖지
못하는,
남이
보지 못하는 비전(vision)이
아닐까?
그 바다유리를 통해 보이는 인물이
바로 바다 건너 온 노파(?-
난,
이
번역이 참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노파’라니?)를
만났을 때에 바로 알아보게 되는 것도,
바로
그런 비전을 헤티가 보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능력,
바로
그게 헤티만이 가지고 있는 비전이다.
그래서 그런 비젼을 가지고
있었기에,
헤티가
마을 사람들의 의견에 반대하는 것도,
심지어
할머니의 말에도 거역하는 것이 이해가 되는 것이다.
남들과 다른 비전을
가진 사람은 한 때(?)
자기가
속한 조직에서 따돌림을 받기도 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이 소설은 그런 헤티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려 놓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녀의 성격이 이런 상황
–
고립된
섬마을 -
에서는
필요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다 폐쇄된 공간에 익숙해져,
변화를
바라지 않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헤티의 존재는 빛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이번에는 자기가 속한 조직차원이
아니라,
개인
차원으로 적용해 보자.
외부와 담을 쌓고 자기만의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
많지
않은가?
그런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외부로부터 어떤 자극을 받았을 때,
그
자극에 반응하는 모습이 바로 퍼 노인을 비롯한 섬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까?
내 마음속에도 분명 변화에
반대해서,
현실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 안에는 변화해보려는
헤티를 닮은 마음과 변화에 반대하고 안주하려는 섬마을 사람들을 닮은 마음이 서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이 헤티라는 소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성장소설이라면,
이
이야기를 읽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상황에 적용하여,
나
자신의 성장을 생각해보는 그러한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헤티의
고집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 헤티를 보여준 소설로 나는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