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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에게서 배우는 권력의 리더십
스테파니 존스.조나단 고슬링 지음, 박수성 옮김 / 시그마북스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반면 교사로서의
나폴레옹
리더십의 단골
손님은 위인이다.
위인에다가
뭔가 획기적인 업적을 남긴 사람을 선호하고,
게다가
말로가 좋은 사람이면 금상첨화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리더십
이론가들은 죽은 자든,
살아있는
자든 불러내어,
리더십
이론에 합류시킨다.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은 그래서 언제나 환영받는 인물이다.
반기문 사무총장도 좋은 예이다.
그러나 한때를 풍미했던 사람 중에
히틀러를 리더십 이론의 대상으로 삼은 것을 보았는지?
히틑러는 기피대상
1호다.
그럼
징기스칸은?
글쎄,
징기스칸은
위인전에는 등장할지 모르나,
리더십
대열에는 등장한 것을 아직 본 적이 없다.
그들은 모두다 리더십으로
분석하기에는 하자가 있는 인물이기에 그렇다.
그렇다면
나폴레옹은?
혹시 나폴레옹
하니까.
프랑스의
한 때 황제였던 인물이고,
위인전에는
빠짐없이 등장하는 인물에다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인물이니,
리더십
이론에 등장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그의
행적중 이런 것을 한번 살펴보자.
하나만
보자.
그는
러시아 원정을 감행하여 죄없는 병사 50만
명을 아사,
동사로
몰아넣었다.
그거야 국가의 지도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이라 하자.
그렇다면
자기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모략과 공포정를 시행하여 언론을 통제하고,
나라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정부(情婦)는
권력이다.
나는
그것을 얻고 떠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데 너무 많은 힘을 들였으며,
내
권력을 탐내는 자는 누구라도 엄하게 응징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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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기자 뢰데레(Roederer)에게,
1804년
11월
4일
(14쪽)
그런데도 그의 리더십을 운위할 수
있을까?
설령 그의 말로가 실제와는 다르게
영화롭게 끝났다 할지라도,
그의
생전 행적으로서는 리더십을 운위할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나폴레옹에게서’
배우는
리더십이다.
그런 잔인하고
폭군이었던,
그래서
인류 역사 –
아니,
이
것은 인류 역사가 아니라,
프랑스
역사일지도?
- 의
한 폭을 검게 물들였던 그에게서 배울만한 것이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제목을 다시 봐야
한다.
‘권력의
리더십’이다.
그로부터는 보통 말하는
‘선한
의미의 영향력’을
말하는 리더십을 배울 것이 없고,
다만
‘권력의
리더십’만
배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제목이 무척 솔직한 것이다.
왜
나폴레옹인가?
나폴레옹의 그런 면을
제외하고,
딱
하나 그로부터 배워야 할 이유가 있다.
<나폴레옹의
리더십 방법은 실제 전쟁터는 물론 국내정치,
국제
무대,
그리고
직장에서 권력을 얻고 사용하는 예시들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상대적으로
덜 격동적인 현대에도 나폴레옹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까닭은 오늘 날 리더에게 요구되는 것들이 나폴레옹의 시대만큼이나 복잡하고
다면적이기 때문이다.>(9쪽)
그러니 그의 리더십은 순전히 권력
–
총칼로
만들어진 권력-에서
나오는 리더십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그 시대와 유사하니까,
그의
리더십을 살펴보자는 것이다.
반면 교사로서의 나폴레옹
그러나,
그렇게
이 책을 대하는 것은 저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 책을 읽어보면
어떨까?
이 책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론이다.
아니
이론이 아니라,
지침서다.
현실로
살아가는 데는 이론을 따지고 할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꿩
잡는 게 매라는 말도 있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도 있으니,
현실에
충실하자!
그래서?
이 책에서
<나폴레오에게서
배우는 리더십>을
배워서,
나폴레옹처럼
그렇게 권력을 사용해서 사리사욕을 채우라는 것이 아니라,
나폴레옹처럼
그릇된 리더십을 발휘하려는 사람을 알아서,
미리 사전에 막자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애초에 리더의 자리에 올라서지 못하도록 막아내자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그런 그릇된
리더십을 구분하는 지침서로 읽어보면 어떨까?
아마 지하에서 자기의 행적을
후회하고 있을 나폴레옹도,
나의
이런 생각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