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누구인지 말해
이
책은?
작가 신중선의
소설로서,
작가도
작품도 처음 접한다.
책표지에는 이런 말이 제목에 덧붙여
있었다.
<열일곱
해 전,
도심에
위치하고 있는
광장의 쓰레기통에서 갓 낳은 아기가
발견되었다.
도심 광장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기는 백화점 쇼핑백에
들어있었다.
그 백화점은 광장에서 도보로
10분
거리도 채 안 되는 장소에 있었다.>
그게 바로 이 책의
시작이다.
그렇게 시작한 이야기는 그 아이의
성장,
그리고
자기가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그 여행을 보여준다.
주인공에 대하여
주인공이 되는
소년,
몽상가
소년은 정이 가는 인물이다.
왜 정이
갈까?
불쌍해서?
그것은
아니다.
단순히
주인공이 불쌍하게 여겨진다고 정이 가지는 않는다.
그럼
그 소년의 어떤 점에 정이 가는 것일까?
바로 자기가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찾아다니는 그 여정에 정이 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부모를 찾아다닐
때에,
같이
다녔다.
여기에서
–
물론
작가가 의도한 것이겠지만 –
페이의
조카가 아닐까,
싶은
생각에 소설의 전개가 그리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책장이 넘겨지면 질수록
상황은 그런 나의 기대를 저버리는 방향으로 나갔다.
그래서 마지막 부분에
-
이미
상황은 결판이 났음에도 -
몽상가
소년이 페이를 찾아가 자기가 아들이 아닌가 확인하는 장면에서는 오직
안타까울뿐이었다,
공자
말씀하시되,
이름을 바르게 할
것이다.
제자가 정치를 한다면 무엇을
가장먼저 하겠느냐 묻자,
공자는
"반드시
명을 바로잡겠다(必也正名乎)."고
하였고,
또한
"정치란
바로 잡는 것이다.(政者
正也)."라고도
하여 정치에 있어서 정명의 중요함을 피력하였다.
이름을 바르게 하는
것,
그
말과 이 소설은 관련이 있다,
물론 공자 말씀과는 약간 거리가
있겠지만,
몽상가
소년은 그래서 자기가 누구인지.
이름이
무엇인지를 애타게 찾아다닌다.
이름에 대한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이
작품에는 유독 이름에 대한 단상이 많이 등장하며,
소년을
제외한 페이와 탐정 B는
진짜 이름을 버리고 자신이 직접 지은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
부모가
지어 준 이름 대신 스스로 만든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자신의 뜻대로 살아 보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자신의 진짜 이름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소년의 상황과 대비되는 설정이다.
스스로를
‘몽상가물고기’라
이름 짓고 살아가는 소년은 간절하게 제 이름을 찾고 싶어 한다.
진짜
이름을 갖는다는 것은 소년에게 있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과 동일한 의미다.>(6쪽)
어린왕자의
재림인가?
물론 이 소설에서 이해되지 않는
인물도 있다,
바로
탐정 B의
존재이다.
그는 이 소설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
것일까?
그가 누수되는 수도의 물방울 소리를
듣고,
모스
부호를 해석하는 방법으로 외계에서부터 온 소리를 듣는다.
우주개가
보내는 신호다.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 그의 작업이 몽상가소년의
정체를 밝히는데,
어떤
역할을 했는가?
탐정
B와
몽상가 소년의 만남은 살아 있어서는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그래서 이 소설은
<어린왕자>와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어린왕자>의
결말을 아는지?
안다면 이 소설의 결말도 짐작이 될
것이다.
그러니 탐정
B의
존재는 이 소설을 몽환적인 분위기로 만들어가는 역할을 한다.
저자가
노린 바가 그것이 아니었을까?
세상에 어떻게 물방울로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을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한다면,
어디
그게 소설 읽는 자세인가?
이 소설은 그것을 뛰어 넘으라고
말하는 것이다.
거기 이 소설의 매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