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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 평전 - 스스로 빛났던 예술가
유정은 지음 / 리베르 / 2016년 7월
평점 :
사임당 평전
이 책은?
철저하게 속은 기분이란 게 이런 것일까?
아니면 한 밤중에 누군가에게 끌려가 잔뜩 혼쭐이 나고, 그 다음날 아침에 어딘지 모르는 곳에 홀로 버려진 느낌, 대체 여기가 어딘지 알 수가 없는 그런 상태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난 기분이 바로 그랬다.
신사임당, 지금껏 알고 오던 신사임당의 현모양처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이었다니?
물론 성웅이라고 까지 칭해지는 이순신 장군의 경우 과도하게 부풀려진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신사임당마저 그랬다니,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순신 장군은 박정희에 의해 한번 불려 나왔지만, 신사임당은 더 심했다. 역사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불려나와 새로운 옷을 입고 나타난 것이다.
저자는 그러한 신사임당의 모습에 주목하고, 지금까지 우리 역사에서 신사임당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하여 왔는지, 역사를 훑어가면서 시대별 평가의 궤적을 따라가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역사를 살펴보면서 신사임당에게 제자리와 제 모습을 찾아주자는 시도를 기록하고 있는 책이다.
과연 신사임당은 ‘현모양처’였을까?
신사임당을 수식해주는 단어가 하나 있다. 현모양처라는 말이다.
현모양처라는 말은 ‘어진 어머니이면서 착한 아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당연히 신사임당과 걸맞는 단어로 신사임당이 생전에 들은 말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정작 조선시대에는 현모양처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절개가 굳은 여자를 일컫는 열녀(烈女)와 시부모에게 지극한 효행을 실천하는 효부(孝婦)만이 있었을 뿐이다.> (4쪽)
그러니 신사임당은 현모양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저자에 의하면 신사임당은 애당초 현모양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신사임당에 대한 불편한 진실
신사임당은 그동안 우리가 알아오던 것처럼, 생존할 당시부터 현모양처의 모습으로 역사에 기록된 사람이 아니다.
저자는 역사적 기록을 살펴보면서, 시대마다 그 당시 정권의 필요에 의해 불려나와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그러한 사실(fact) 을 저자의 말로 들어보기로 한다.
<신사임당이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사후 백여년이 지난 17세기 중엽부터이다. 송시열이 사임당의 난초 그림과 산수 그림에 붙인 발문으로부터 시작된다.> (92쪽)
<이렇게 시작된 사임당에 대한 평가는 실상 사임당의 본 모습이라기보다는 율곡 이이를 낳은 어머니로 칭송하기 위한 하나의 정치였다.> (93쪽)
<요동치는 정치적 상황 속에서, 송시열은 서인의 결속력을 높이고 정권 유지를 위해 서인의 정신적 근간이었던 율곡 이이를 신격화하기 시작했다. 율곡 이이를 신격화하기 위하여 그 부모 역시 신격화해야 했기에 이 때부터 사임당은 예술가로서의 주체적인 모습이 아니라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면서 부덕을 실천한 이원수의 아내인 객체적인 모습으로 그려지지 시작하였다, (94-95쪽)
<노론계 유학자들에 의해서 사임당의 화가로서의 모습은 가능한 한 은폐되거나 왜곡되었다. 훌륭한 유교적 여성으로서 태교를 잘 실천했던 현숙한 부인, 훌륭한 아들을 키워낸 어머니, 내조를 잘한 아내등 유교사회가 강조했던 부덕을 잘 실천한 사임당의 모습만이 살아남게 되었다.> (95쪽)
결국 신사임당은 당시 역사적 요구에 따라 실제 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불려나왔다는 것이다.
<이 때 만들어진 조선시대 전통적이고 수동적인 여성상의 이미지가 300여년 동안 남성들에 의해 다져지고 다져져서 지금까지도 신사임당 하면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가 만들어 낸 현모양처의 대표적 인물’이라는 오명을 달고 있다.> (95쪽)
그런데 그 후 신사임당은 또 다른 모습으로 역사에 불려 나오게 된다.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성을 계몽하고 교육해야 한다는 개화파 지식인의 주장에 따라 아들을 낳아 그 아들을 기르는 교육자로 그 위치가 상향 조정된다.>
<이 때 사임당은 율곡을 교육한 어머니로 근대 사회에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1908년 장지연이 쓴 『 여자 독본』이 그것이다. 여기서 신사임당은 문명국가의 국민을 교육하는 어머니로 조명되었다.> (98쪽)
또한번 신사임당은 불려 나오는데, 이번에는 이순신 등과 함께 불려 나온다. 역시 저자의 말로 들어보도록 하자.
<신사임당이 전통적인 현모양처의 대명사로 다시 거론되며 주목의 대상이 된 것은 1960년대 부터이다.> (104쪽)
<시대적 이데올로기 속에서 국가의 영웅으로 추앙될 인물이 필요했는데 그 때 선택된 인물이 바로 세종대왕, 이순신, 신사임당 등이었다.> (104쪽)
<박정희 정권은 이 영웅들을 자신들의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105쪽)
다시 이 책은?
그래서 그런 신사임당의 모습을 본받자는 운동이 퍼지자. <이제 현모양처는 여성의 꿈이 되어 버린 것이다. 여성 스스로 주체적인 삶이 아닌 남성의 타자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아픈 현실이 되어 버>(107쪽)린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에 대하여 반론도 적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신사임당은 그저 현모양처로만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2007년 신사임당이 새 화폐의 초상인물로 선정되었을 때 뜨거운 논란이 되기 시작하였다. 그후로도 계속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기계적인 주입교육의 방법에 의하여, 또한 시대의 필요에 따라 인물을 다르게 규정한다는 사실, 알게 되어, 내 눈을 가리고 있던 눈가리개 떼어낸 기분이다. 이제 그러한 눈으로 밝히 보고 신사임당의 본 모습 찾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 나도 또한 다른 독자들도,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