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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연옥 여행기 ㅣ 단테의 여행기
단테 알리기에리 원작, 구스타브 도레 그림, 최승 엮음 / 정민미디어 / 2015년 7월
평점 :
단테의 연옥
여행기
<연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단테의
『신곡』은
지옥,
연옥,
천국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테가 지옥을
거쳐,
연옥을
지나 천국에 이르는 여정을 『신곡』은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천국과 지옥의 개념은 인정하지만,
연옥의
개념은 부인하고 있다.
그러면
신곡에서의 연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이
책,
『단테의
연옥 여행기』를
읽기 전에 먼저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연옥은 어떤
곳인가?
<연옥은
12세기
무렵 새롭게 제시된 정죄계(淨罪界)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리스도교
문헌에는이렇다 할 문학적 전례도 없다.
단테는
하데스 안에서 어떤 부분을 이용하는 것 말고는 전적으로 자기 스스로 상상해 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마미치
도모노부,
<단체
신곡 강의>
295쪽)
일단 연옥을 상상의
장소,
기독교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장소로 생각하고 읽었다.
그러면
<연옥>은 어떤
곳인가?
지난 번 서평
(천국편)에서
지옥과 천국의 차이를 이렇게 파악했었다.
<지옥은
모든 희망이 없는 곳이다.
그 반면 천국은 탐내는 욕망이 없는
곳이다.>
그러면 그런 각도에서 연옥은 어떤
곳인가?
<죄의
골짜기가 지옥이라면 연옥은 은총의 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지옥은 죄를 인식하는 것이고 연옥은 죄를 씻는 곳이다.
여기서 죄씻김은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완전히 회개할 때만이 진정 가능하다.
따라서
이 연옥의 산에 오르려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전제되어야 한다.>(7쪽)
<지옥의
죄가 뉘우치지 못한 자들의 죄라면 연옥의 죄는 죽기 이전에 회개한 자들의 죄이다.
따라서
지옥의 죄는 영원히 정죄될 수 없는 것이고 연옥의 죄는 구원받은 영혼들이 천국에 올라가기에 앞서 자신들의 모든 죄를 씻는
곳이다.>(8쪽)
그렇게 연옥은 지옥과 성격을
달리한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만난 칸트의
말이다.
<심연의
율법이 깨진 것인가?
아니면
너희 죄인들이 내 산으로 올 수 있다는 새로운
법이
하늘에서 내려오기라도 한
것인가?
> (민음사,
신곡
연옥,
10쪽)
여기에서 산은 연옥을
의미한다.
혼은
그 산을 올라가 지상낙원에 도달하고 천국의 입구로 다가간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풀어 놓았다.
<지옥의
골짜기를 뒤덮은 영원한 어둠에서 너희를 이끈 빛은 무엇이며 또한 길잡이가 되어 준 자가 누구냐?
엄하기
이를 데 없다면 지옥의 규율이 무너졌다는 말이냐?
아니면
천국의 법칙이 바뀌었기에 지옥에 떨어졌던 너희가 내 바위 동굴로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이냐?>
(18쪽)
‘너희
죄인들이 내 산으로 올 수 있다는 새로운 법’
(민음사)
‘지옥에
떨어졌던 너희가 내 바위 동굴로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
(정민
미디어)
그래서 단테는 그 연옥의 산에
도달하여 연옥에서의 모험을 시작하는 것이다.
결국,
연옥이라는
곳은 ‘희망’이
있는 곳이다.
죄가 씻기어 하늘에 올라갈 수 있는
희망이 있는 곳이다.
즉, 연옥 자체는 큰 기쁨이 없는
곳이지만,
아득히
멀리 하늘이 보이고 혼을 정화해 하늘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
즉
희망이 있는 곳이다.
우리는
지옥,
연옥,
천국을 이 땅에서
경험한다
이
책,
단테의
신곡 세편을 읽으면서,
지옥,
연옥,
천국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지옥은
모든 희망이 없는 곳이다.
연옥은 희망이 있는 것이고
그 반면 천국은 탐내는 욕망이 없는
곳이다.>
비록 그러한 세계는 사후에 우리에게
주어지겠지만,
이
땅에서 살아갈 때에도 그러한 상황 –
희망이
있고 없고,
욕망에
휘둘리는 -
은
이루어지는 것이니,
그러할
때,
우리는
지옥,
연옥,
천국의
경험을 미리 앞서 하게 될 것이다. 단테의 신곡은 이 땅에서 그러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의미도 분명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