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격하게 솔직한 사노 요코의 근심 소멸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책과 저자의 정체가 한 마디로 설명이 되지 않았다. 이 책 뭐지? 저자는 대체 누구지? 하는 의문이 남아있는 채로, 떼어서 책 사이에 끼워두었던 띠지를 다시 책에 걸치는 순간, 거기에 이런 글이 있었다.

거침없는 솔직함으로 심각한 것도 가볍게 만드는 시크한 그녀가 왔다.”

 

바로 그거다. 그 말이 이 책을 설명해주고, 저자의 모습을 한마디로 묘사하는 것이다.

"심각한 것도 솔직함으로 가볍게 만든다!"

 

. 좋은 재주다가지고 싶은 재주다.

더군다나 그것을 글로 풀어낼 수 있다니, 대단한 재주다.

 

심각한 것을 저자는 정말 가볍게 만들 수 있는가?

 

저자 사노 요코는 일본의 작가로, 그 이력이 독특하다.

일본제국주의가 한창 위세를 떨칠 시기에 중국에서 태어나 종전후 일본으로 건너왔다.

그 시기를 묘사한 대목이 있는데, 어머니를 추억하는 글 중 일부분이다.

<중국인이 집 안 살림을 들어내려고 차를 대놓고 신을 신은채로 집안에 들어왔을 때, 아이들을 조르르 세워놓고 엉망진창인 중국어로 남편은 전사하고 나는 병든 몸에 보다시피 아이들도 많다. 부디 당신 아이가 있다면 사정을 봐 달라고 콧물 눈물 닦아가며 한바탕 연극을,,,,,,>(41)

 

물론 아버지가 전사한 것은 아니다. 그 부분을 유머러스하게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5분후에 집주변을 산책하던 전사한아버지는 콧노래를 부르며 돌아왔다.”(41)

 

그렇게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 과거의 기억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가? - 을 가볍게, 가벼운 것으로 만드는 재주,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기쁨이다.

 

그 중의 하나.

 

<8년째 되는 해에 내 차는 깡충깡충 토끼마냥 뛰어 오르더니 굉장한 폭발음과 연기를 내면서 주유소 앞에서 죽었다.>(95)

 

몰고 다니던 차가 더 이상 어찌해 볼 도리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렸다. 남들 같으면 펄쩍 펄쩍 뛰면서 화가 나는 상황인데, 저자는 그것을 가볍게 토끼마냥 가벼운 것으로 만들었다.

 

이런 생각해 내는 작가라면, 읽을 만하다.

 

그뿐이 아니다. 문장으로 상황을 가볍게 만드는 재주는 아무 것도 아니다. 저자의 생각의 깊이와 넓이가 독자들의 생각을 뛰어 넘어, 놀라게 한다.

 

지붕에 관한 묵상

 

<아무리 누추한 집에도 지붕은 있는 법이었다. 그래서 지붕이야기를 하겠다.

어떤 민족을 봐도 집에는 지붕이 얹혀있다. 대개의 지붕은 하늘을 향해 손을 모으는 형태로 되어 있다. 그것은 하늘을 향해 부디 허락해 달라, 이 쩨쩨한 인간의 존재를하고 비는 형상이다. 또는 해님에게 이 지상에 바지런히 집을 짓고 사는 것을 봐 주세요. 그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보세요. 이렇게 두 손을 모으고 있잖아요라고 말하는 형상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그것은 사람이 사람이었던 때의 겸손했던 마음을 형태로 나타낸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어느샌가 목수와는 격이 다른 건축가라는 것이 출현해 지붕을 치우고 평평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사람이게 한 겸손을 내던지고 하늘에 도전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해님에 대해 실례되게도 머리털이 없는 사람같은 건물이 일본에 쑥쑥 나기 시작한 거다.> (113-114)

 

지붕의 형태를 보고 손을 모으고 하늘을 향해 빌고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나는 여기서 처음 본다.

 

사람얼굴을 구분해 내는 초인적인 능력

 

<사람이 사람의 얼굴을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해 보면 무섭다. 거의 비슷한 면적에 눈 두 개와 코 하나, 입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레이아웃도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눈과 입의 위치가 반대인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별안간 현관에 나타난 사람을 ,,,,,,착각하는 일 없이 대응한다. ....인간이란 굉장하다. 구별할 수 있는 능력만으로 충분하니까.> (126)

 

얼마 전 인공지능 로봇은 고양이와 개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런 인공지능 로봇이 사람을 구별할 수 있을까? 그러니 사람이 사람의 얼굴을 구별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로 인간은 인간인 게다. 그야말로 초인적인 인간인 것이다.

 

주변부 인간에 신경써 본적이 있는지?

 

<어렸을 때, 영화를 보면 아무래도 석연치 않은 느낌이 있었다. 주인공이 아닌 인간의 인생은 너무 부당하게 다뤄지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그런 느낌은 잠시뿐, 오직 주인공의 운명에만 마음 졸였다. 그런데 때때로 잊고 있던 주변 인간이 문득 되살아나곤 했다.>(132)

 

저자는 더스틴 호프만의 연가를 보면서, 그런 주변부 인간 같은 그에게 마음이 쏠린다.

<사실 처음엔 코가 엄청 크고 키는 좀 모자라는 남자가 자신의 변변치 못한 인생의 드라마를, 힘껏 분발하여 연기하는 것을 보는 게 기뻤다. 왠지 중심인물이 아닌 나에게도 그 나름의 드라마를 세상이 허락해 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줬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 한번도 해 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저 그런 저자의 생각이 신기하기만 하다. 이렇게 힘들게 타이핑 하면서 기록할 생각까지 할 정도로.

 

다시 이 책은?

 

이 책은 겉으로 보면 가벼운 에세이다. 그러나 그냥 한번 읽어 넘어가는 것이 에세이 류의 특징이라면, 이 책은 당연히 그런 범주에서 벗어난다.

인생의 쓴 맛 단 맛을 다 본 사람이 건네주는 인생의 무게, 그러나 그 무거움을 그대로 건네지 않고 거기에 처방 하나를 덧붙여 놓았다.

 

<인생이 무겁습니까? 그래서 힘이 든다면 어디 이 책으로 가볍게 만들어 보시면 어떨까요?>

 

그런 저자의 목소리가 들릴 것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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