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도 흔들리는 땅
이
책은?
이 책의 제목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땅』이고,
부제는
<소설로
읽는 조선시대 역사지진>이다.
부제를 통하여 말하는 것처럼 이
책은 소설이다.
저자는
이 책을 자전소설이라 한다.
(4쪽)
저자가
<책머리에>서
말한 바를 미루어 본다면,
저자가
공부한 것 –
지진-
을
설명하기 위하여 부득이 소설의 형태를 띤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소설이라 이름하지만 소설의 구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자기가
연구하는 것을 시간을 따라 정리하는 수준으로 보며 될 것이다.
그런데 저자가 소설이란 형식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는 지진에 관한 학문적 성과를
대중에게 접근해서 알려주기에는 이 형식이 적당하다는 점이다.
이것을
논문이나 학술지에 발표한다면,
과연
대중에게 어느 정도 알릴 수 있었을까?
아무래도
대중들의 눈에 띄지 않고 묻혀버렸을 것이다.
또한 저자는 소설이란 형태를
빌려서,
학자로서의
저자가 겪었던 고뇌를 말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한
어려움을 드러내기에는 소설의 형식이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것이
중요한 것인데,
소설의
형태로 무언가 말하려고 했다는 것.
그것은
우리가 전혀 무관심하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경고의 메시지를 소설의 형태로 전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이 책의
내용은?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부는
주인공이 역사지진에 대해 배워가는 과정을 그렸다.
이
부분은 소설의 형식을 띈 것으로,
저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조선시대의
역사적 기록인 『조선왕조실록』,
『승정원
일기』,
『해괴제등록』
의
기록을 살펴보면서 지진이나 화산활동,
해일
등에 관한 내용들을 정리하고 있다.
후반부는 조선시대 문헌에 기록된
재해 사건들을 시간 순으로 정리한 지진,
화산,
해일기록을
제시했다.
이
부분에는 자료인 <조선
시대 지진 화산 해일 기록>과
역시 자료인 <지진사건별
진앙지진도 지진규모 최대지반가속도>를
수록해 놓았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사건들
1906년
양력 4월
24일
『조선왕조실록』
기사는
고종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어난 지진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사실을 기록해 놓고 있다.
(91쪽)
그런데 실제 지진이 발생한 날은
4월
18일이었다.
그러니
미국에서 지진이 일어난 엿새 후에 한국의 조정에서 그 일을 언급하고 있었다는 것이 첫 번째 놀라운 일이었다.
두
번째 놀라운 일은 그 지진에 한국인 피해자가 있음을 알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고 말하고 있는 점,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지?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
-
역사는 되풀이
된다.
왜 저자는 그렇게 소설의 형태를
빌리는 수고를 하면서까지 역사지진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는가?
그것은 우리의 안전불감증에 대한
경고의 의미가 먼저 있다.
마치
우리나라는 지진으로부터 안전지대인 것처럼,
지진에
전혀 무방비 상태,
아니
무개념인 현재 상황을 역사에서 찾아낸 자료들을 제시하면서,
우리나라가
그렇게 지진에 관해 태평하지만 않았던 사실을 상기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특히 지금 원자력발전소가 위치하고
있는 곳들도 과거에 안전지대가 아니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
하나,
재난
컨트롤타워에 대한 지적이다.
저자는 곁가지로 등장시킨 것처럼
보였던 도서관 근무 직원 김영욱의 입을 통하여 재난에 대한 뼈아픈 충고를 쏟아 놓는다.
이미 재난은 정치적 요소가 되었다는
것.
집권자는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거나 구출하는 문제보다는 그런 문제로부터 정권의 안보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
이러한
시스템이 재난으로부터 희생자를 최대한 줄일 수 없게 만드는 요소가 되었다는 것.
(236쪽)
그러한 것을 김영욱의 입으로
웅변하게 한다.
그래서
지젝의 말을 빌려서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기억하라.
문제는
부패나 탐욕이 아니다.
문제는
시스템이다.”(237쪽)
그리고 덧붙여
말한다.
<지진이나
쓰나미,
전염병
등은 국가 시스템이 중요할 것으로 생각해요.
국가
외에는 전국의 행정망과 보건소를 통괄하는 네트워크가 없으니까요.
그
시스템의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재난 시스템은 있으나 마나일테죠?>
(239쪽)
그렇게 이 책은 역사지진을 통해
현재를 돌아보게 하는 그 점,
그것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