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의 국경
이
책은?
소설이다.
소설가
신경진의 장편소설이다.
유희란 이 책의 주인공 신유희를
의미하고,
국경이란?
국경이란 사랑의 좌절과 실패의
예감을 굳게 닫힌 국경의 이미지로 묘사하며 그녀를 현실에서 초현실적인 가상 세계로 이끄는 도구가 되는 장치가
된다.
작가의 치열함과 정교한 장치
작가의 치열함이
돋보인다.
작가로서
치열하다고 평가하는 이유가 분명 있다.
이 작품에서 독자들은 작가가
배치해 놓은 정교한 장치에 꼼짝없이 속아 넘어간다.
그만큼
저자가 치열하게 작품을 구성한다는 말이다.
무엇인가
하면,
‘죄르지
임레’라는
인물과 그가 이끌었다는 ‘엠베리
오르삭’이란
나라의 존재이다.
얼마나 정교하게 구성을 해
놓았는지,
‘죄르지
임레’와
‘엠베리
오르삭’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볼 정도였다.
그것도
당연히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검색을 해보았는데 아무런 결과가 없어 맨 처음에는 내가 잘 못 검색을 한 줄로 알았다.
그렇게
기연가미연가 하는 중에 작중 인물들도 같은 행동을 하는 것(259,
267쪽)을
보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작가의
치열함과 정교한 장치에 깜박 속은 것이다.
작가는 주인공의 아버지를 닮았다
저자는 소설
중,
유희의
아버지 신현우와 닮았다.
대화기법이
말이다.
책 속에서 신현우는 이런 식으로
대화를 이끌어간다.
<이런
식의 대화법은 아버지만의 독특한 방법이었다.
삶이라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에서 느닷없이 역사적이고 철학적인 예를 빌려 설명하는 구습.>(24쪽)
딸 유희와 이혼 협상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현우는
느닷없이 문제의 인물인 ‘죄르지
임레’와
극가 이끌었다는 나라 ‘엠베리
오르삭’을
거론한다.
그렇게
느닷없는 신현우의 대화기법을 저자는 그렇게 평가하고 있다.
나는 그 말 중에서
‘삶이라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에서 느닷없이’라는
부분을 그대로 저자에게 돌려주고 싶다.
이런
말을 덧붙여서.
‘유희가
엠베리 오르삭으로 가는 것은 초현실주의적 도피인가,
회피인가?’
유희가
‘엠베리
오르삭’으로
가는 것은 (실체가
없는 곳이기 때문에)
다분히
유희의 현실도피일 것이다.
거기에서
국경지기 샨도르를 만나는 것도 그러고 보면 꿈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중에 민중이 합류하고 거기를 같이 빠져나오는 것은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한다.
소설중,
‘국경의
여름’과
‘국경의
겨울’
부분에서
저자는 현실주의에 입각해 유희의 사랑을 묘사한다.
그녀가
선택한 사랑은 순수하고 이타적인 사랑,
본능적이고
쾌락적인 사랑이다.
그래서
지독하게 현실적이다.
그러니
그러한 현실주의자 유희가 ‘국경의
봄’에서
초현실주의적인 도피를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잠시이지만 그런 - 그러니 '느닷없이'라는 말이 정확하게 맞다 - 행동이 이해되지 않아,
유희가
‘엠베리
오르삭’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는,
‘아,
소설
속에서는 이 나라를 존재하는 것으로 설정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유토피아는 없다, 그러나....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런
나라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다.
그러니
독자들은 또한번 저자에게 진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저자에게 지고 만
독자들에게 저자는 말한다.
‘유토피아는
그리스어로 없다(ou)
와
장소(topos)라는
단어를 조합해 만든 말이에요.’(338쪽)
그러니,
유희가
찾던,
유희의
아버지 현우가 찾던,
그리고
혹시나 해서 그들을 따라다니면서 유토피아를 찾아 나섰던 독자들에게,
저자는
냉정하게 말한다.
“그녀는
이슬비를 맞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등
뒤로 유희의 국경이 점점 멀어져 갔다.”(338쪽)
참,
이런
말도 저자는 했다.
“희망이
있다면 사랑뿐이다.”(338쪽)
그 말은 아무래도 냉정하게 할 말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