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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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드런 액트

 

칠드런 액트(The children act), 우리말로 바꾸면 아동법정도가 될 것이다.

이 책은 그래서 아동법에 관련된 사건이다.

관련되는 법령을 이 책은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아동의 양육과 관련한 사안을 판결할 때..

법정은 아동의 복지를 무엇보다 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아동법 제 1a.>

 

이 법을 둘러싸고, 주인공인 판사 피오나 메이의 힘겨운 싸움을 그린 것이 이 소설의 기본 얼개가 되겠다.

 

이 소설은 그런 판사인 피오나의 환경이 어떤지를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바로 남편과의 갈등이다. 남편 잭이 개방결혼의 형태로 가정을 이끌어가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그 말은 결혼을 유지하면서 다른 여인과 자유로운 형태의 관계를 허용해 달라는 것.

그런 제안에 피오나는 혼란을 겪으면서, 가정은 갈등에 휩싸인다.

 

그런 피오나에게 법정은 계속 그녀에게 판결해야 할 사건들을 배당한다.

그런 사건 중에 이 소설의 줄기가 되는 사건 하나가 등장한다.

 

사건 개요는 이렇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아이(애덤)가 백혈병에 걸려 수혈을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런데 그 가족은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수혈을 거부하여, 자칫하면 그 아이가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병원 측은 수혈을 하려고 한다. 결국 아이에게 수혈을 해야 한다는 병원측과 하면 안된다는 가족간에 다툼이 일어나고, 그 사건이 피오나 메이에게 배당이 된다.

 

이 사건을 결론짓기 위하여 피오나는 법정에서, 또한 애덤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서, 그녀는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판결을 내리기 위해 피오나가 가장 고심한 부분은 바로 아동법에서 규정한 바 아동의 복지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피오나가 내린 판결문 몇 군데를 살펴보자.

 

<아이가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나이에 근접해 있습니다. 종교적 신념을 위해 죽음을 각오한다는 사실은 그 믿음이 얼마나 심오한지 증명합니다. 또한 그의 부모가 끔찍이 사랑하는 자식을 신앙을 위해 희생시킬 각오를 한다는 사실은 여호와의 증인이 고수하는 힘을 보여줍니다.> (168)

 

그러한 점을 피오나는 다 인정한다. 그만큼 판결을 내리는 자로서 고민이 깊다는 것이다. 

 

그 다음, 피오나는 몇 가지를 덧붙인다.

이 점이 이 소설에서 가장 귀한 부분이라고 여겨진다. 여호와 증인 신도들의 수혈 거부 사건이 가끔씩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하는데, 그런 경우의 판결문은 읽지 못했고, 또 어떤 결론으로 끝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판결에서는 이 부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로 이 힘 때문에 저는 멈춰 서게 됩니다. 왜냐하면 아이는 17세가 되도록 종교적, 철학적 사고라는 격변하는 영역에서 다른 표본을 접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기독교 종파는 신자들 간의 열린 논쟁이나 반대의견을 장려하는 문화가 아닙니다. ...... 아이는 아동기 내내 강력한 하나의 세계관에 단색으로, 중단없이 노출된 채 살아왔고, 그런 배경이 삶의 조건을 좌우하지 않았을 수는 없습니다.>(168)

 

정상적인 판단력이 채 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사상 하나에만 계속해서 노출되어 있다는 것, 그것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피오나는 어떤 것이 칠드런 액트(아동법)가 도모하고 있는 아동의 복지에 부합한 것인가를 판시한다.

 

고통스럽고 불필요한 죽음을 감수하는 것, 그리하여 신앙을 위해 순교자가 되는 것이 아이의 복지를 도모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피오나는 그 아이에게 수혈할 것을 최종 결론으로 내린다.

이렇게 그 아이에게 수혈을 받도록 하고, 생명을 살리게 되는데, 이 책의 백미는 바로 그런 결론에 이르기까지 판사인 피오나가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떻게 결론에 이르게 되는가 하는가에 있다.

 

후반부에 가서는 소설 자체는 급격히 몰입도가 줄어든다.

사건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옮긴이는 책의 뒷부분 <옮긴이의 말>에서 이 책이 그를 살리는 판결을 내린 후 문제는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소설은 그 뒤의 연쇄적 결과를 긴장감 있게 다루고 있다’(293)고 하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그 뒤에 일어나는 사건, 즉 애덤이 피오나를 찾아오고, 피오나가 애덤에게 느꼈던 이상한 감정 등은 군더더기에 불과하게 느껴질 뿐이다.

 

그리고 남편과의 화해도, 어떤 계기가 없이 그냥 어물쩡 지나가버린 느낌이다.

그러니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개운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게다가 애덤의 죽음까지!

 

그러나, 이 책은 피오나가 애덤에게 수혈을 하도록 판결을 내리기까지, 그녀가 고심하는 그 과정에서 독자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는 소설이다.

사건의 흥미진진한 전개보다는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고려하고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소설이 흔치 않은데, 바로 이 소설이 그러한 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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