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에 슬퍼할수록 행복한
사람이다.
이
책은?
쇼펜하우어의 글에 저자가 생각을 덧붙여 편집한 책이다.
쇼펜하우어,
읽기
어려운데,
이렇게
읽어가니,
의외로
쉽게 여겨진다.
물론 쉽게 여겨진다는 말은
쇼펜하우어를 자기의 방식대로 풀어낸 저자가 있기에 그렇다.
저자는 쇼펜하우어의 글을 열 가지
주제로 나누어 읽는다.
우연,
기쁨,
고독,
현재,
성격,
행복,
고통,
수용,
통찰,
관계.
그런 주제에
관하여,
감정과
욕구를 들여다보고 적절하게 표현하는 능력,
그것을
배울 수 있는 철학을 평생 연구한 쇼펜하우어의 목소리로 들어보는 것,
거기에 저자가
해석을 겸한 코멘트를 부가하여 쇼펜하우어의 생각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쇼펜하우어의 말만
읽고,
그
깊은 뜻을 헤아리기는 보통 일이 아닌데,
쇼펜하우어를
이런 식으로 읽어보니,
신선하다.
왜
쇼펜하우어인가?
‘왜
쇼펜하우어를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저자가 영국인 철학자 친구에게 답했다는 다음의 말로 대신해도 좋을 듯하다.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스토아 철학이 당신에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쇼펜하우어는 아주 훌륭한 선택이 될
것이다.
(257쪽)
이 책에서 얻은 의외의 수확
이
책,
쇼펜하우어의
생각을 전해준다는 차원에서 일단 책의 가치가 있지만,
나에게
의외의 소득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저자가 남긴 글 “들어가며”와
“나오며”에
들어 있는 저자의 생각들이다.
그게
어쩌면 더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현대인에게 치료적 기능을 갖는
철학,
치유로서의
철학에 관심을 갖고 있다”(256쪽)는
저자의 인식.
이런
인식에 공감한다.
철학을
위한 철학이 아니라,
기능하는
철학으로서,
특히
현대인들의 심리적 아픔에 치료적 기능을 갖는 철학이라!
이런
글을 읽는다는 것도 이 책을 읽는 기쁨 중의 하나라 할 것이다.
저자는 심리학과 철학의 관계에
대하여 이런 말을 한다.
“나를
깊게 들여다보게 만든 것은 심리학이었지만,
심리적
한계와 굴레를 뛰어넘어 더 크게 살아가는 법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던 것은 철학이었다.”(258쪽)
심리학과 철학에 관한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참고가 될만한 자세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특별히 저자가
‘들어가며’의
서두에서 말하고 있는,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는
부분은 이 책 말고 따로 떼어 별도의 내용으로 해도 좋을,
아주
의미있는 내용이다.
현대인에게 이제는 상시적 개념으로
인정되는 불안,
그
불안의 정체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리의 불안은 서구에서 말하는
불안과는 그 속성이 다르다.
서구의 불안은 일반적으로 실존적
불안에 가깝다.
반면
현대 한국 사회의 불안은 그 속사정이 좀 복잡하다.
그런
전제하에,
저자가
내리는 결론은 이렇다.
<이땅의 성인들 대부분은
‘역할’로서만
그 자리에 있었을 뿐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지 못했다..........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모였지만 서로의 역할을 잘해낼 때에만 말썽이 없었다.
있는
존재 그대로가 아니라 ‘역할’로
살아온 우리들은 결국 ‘역할’을
잃게 될까 봐,
불필요한
존재가 될까 봐 두려워하는 불안의 노예가 되었다.>
(8쪽)
그동안 찾아다니던 불안의 실체가
바로 이 책에 있었다.
불안은 존재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역할’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
불안의 실체를 명확하게 해 준
것,
이
책에서 무릎을 치며 읽은 부분이다.
밑줄 긋고 싶은 글들
<하루하루가
작은,
하나의
삶이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태어나는 것이요,
매일
밤 잠드는 것은 죽는 것이다.>
(90쪽)
이런 쇼펜하우어의 말에 저자는
이렇게 덧붙인다.
“죽음을
생각할수록 삶은 더욱 뚜렷해진다.”(91쪽)
<어떤
사람이 행복한지 알아보려면 그를 즐겁게 하는 게 무엇인지가 아니라
그를 힘들게 하는 게 무엇인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
사소한 것에 슬퍼할수록 행복한
사람이다.
잘 지내는 사람이라야 사소한 것에
불편을 느낄 수 있다.>(133쪽)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인간은
벌어진 일 그 자체보다,
그
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255쪽)
-
스토아
철학의 핵심원리 (2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