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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를 알면 성경이 보인다 - 성경으로 하는 한자 공부
김석규 지음 / 일리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으니 공자님 말씀이
떠오른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
이 책을 읽고
나니,
왜
공자님 말씀이 떠오르는 것일까?
<한자를
알면 성경이 보인다>고
하더니,
이
책 읽으니 논어의 공자말씀이 먼저 떠오르다니..
아침에 도를
들으면.....란
공자의 말씀이 떠올랐다.
朝聞道夕死可矣(조문도석사가의)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논어)
그렇다 이 책을 읽고 모르던 것들을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런 경우를 공자는
말씀하셨겠지?
성경을 수시로 읽어오던
사람이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성경에서 그간 모르던 것을 알게 되었으니 기쁘다는 말이다 .
사랑을
아십니까?
이런 것
말이다.
‘사랑’이
순수한 우리말인가,
아닌가?
지금껏 사랑을 우리말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다’
정도로
생각해 왔는데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을
순 우리말로 알고 있지만 한학자들은 사랑(思量)에서
온 말로 보고 있다.”(128쪽)
이어서 그 뜻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사량(思量)은
‘생각해서
헤아림’이라는
뜻이다.
중국
당(唐)나라
시인들이 ‘임을
향한 그리움’이란
의미로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려대
김언중 교수는 이 말이 우리나라에 건너와 ‘야’가
‘아’로
단(單)모음화되어서
’사랑‘이
된 것이라고 했다.>(128-129쪽)
이런
것,
처음
알게 되었으니,
그
아니 기쁠손가?
의(義)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의(義)이다.
“성경이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의(義)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의(義)이다.”(139쪽)
저자는 덧붙여
말한다.
<인간은
십자가를 지시고 죽어 마침내 하나님의 의(義)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義롭다’함을
얻게 됐다.
義롭게
되는 길은 오직 십자가 구속(救贖)의
은혜에 대한 영혼의 응답,
즉
’믿음’으로만
가능하다.>(139쪽)
이 글을 읽고 눈이 번쩍
띄었다.
그동안
의(義)하면
‘사람의
의(義)’만
생각했던 것.
그래서
의(義)자가
나오면,
하나님
앞에서 의인 열 명만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지 않으시렵니까,
하고
간구하던 아브라함이 떠올랐던 것인데,
이
책 그 부분을 읽고나니 ‘아차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러니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공자님 말씀이 먼저 생각난 것,
그
정도는 예수님도 헤아려주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