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인생 강의 - 낙타, 사자, 어린아이로 사는 변신의 삶
이진우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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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말하기를, “삶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니체를 읽는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읽어도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을 감수하고 읽어야 한다. 특히 나 같은 사람에게 니체는 난공불락의 성 같다.

지금껏 니체와 친해지기 위하여 기울인 노력이 얼마였던가? 읽은 책만해도 한 수레(?)는 될 것 같고, 들인 시간만 해도 몇 년은 될 것 같다.

 

그래도, 그렇게 노력해도 아직 멀기만 하다. 니체는!

그렇게 멀기만 한 니체를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으니, 지금까지 들인 공이 아까워서도 그렇지만 니체는 여전히 나에게 끌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인생을, 아니 운명을 사랑하는 자로 남을 수 있었을까? 어떻게 하면 나는 걷는 법을 배웠다. 그후 나는 줄곧 달렸다. 나는 날아다니는 방법을 배웠다. 그 후 나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움직일 수 있었다. 이제 나는 가볍다. 나는 날고 있으며 나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제야 어떤 신이 내 몸 속에서 춤을 추고 있다.”(149) 라고 고백할 수 있을까?

 

그런 니체가 부러워,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이진우 교수가 EBS<인문학 특강>을 통해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

책으로 펴내면서 곁들인 것이 있는데, 그것은 뭉크의 그림이다. 뭉크는 니체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표현주의 화가인데, 니체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그래서 중간 중간에 실린 그의 그림은 니체의 사상을 더 잘 나타내주는 효과를 나타낸다.

 

니체 가라사대, “신은 죽었다

 

니체가 말한 신은 죽었다가 의미하는 바는 문자 그대로 신이 죽었다는 말이 아니다. 니체가 말한 의미는 하이데거가 말하길, “현실적인 것을 현실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던 모든 형이상학적 근거가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라 한다. 그러니 신이 죽었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우리 삶의 모든 근거가 발밑에서 사라져버리고, 우리가 의지하고 믿었던 중심이 없어져버리고, 우리가 사물을 인식할 수 있게 해준 지평선이 사라져버렸다는 의미이다. (46)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니라 삶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그런 신이 죽어버린 시대에서 사람들의 관심은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니라 삶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로 바뀐다.

 

그 이유는? 저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가치가 미리 주어져 있고, 우리가 어떻게 살면 되는지에 관한 전범이 주어져 있던 시대에는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삶을 견뎌내기가 정말 어려워요. 나이가 든 사람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청소년은 더 그런 것 같아요. 방향을 읽어버린 시대, 지금이 바로 신이 죽은 시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108)

 

그런데 여기, 바로 이 지점에서 니체는 반전을 시도한다.

삶의 목적도 없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지만, 살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목적을 강요합니다. 살려면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점”(108) 이 바로 니체가 보여주는 반전이다.

 

그래서 그런 목적없는 허무주의의 시대에 오히려 사람들은 거기에서 목적을 찾기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영원회귀의 삶으로

 

바로 이런 과정을 거쳐 니체의 영원회귀의 사상에 도착한다.

니체는 말한다.

네가 사람들과 아주 다른 삶을 산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따지고 보면 별다른 차이가 없다. 네가 지금 아주 고귀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삶조차도 과거에 무수히 반복되었던 삶 중 하나에 불과하다.”(110)

 

그러니, 그렇게 반복되는 삶이기에 니체는 삶을 긍정하라고 한다.

삶은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야,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니고 온 몸으로 끌어안아야 될 긍정적인 것이야”(112)

 

그래서 니체의 생각은 궁극적으로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사상중의 사상, 영원히 반복적으로 회귀한다는 사상을 온 몸으로 인식하고 체현한다면 그 사상은 널 변화시킬 것이다. 너의 삶이 변화할 것이다.”(113)

 

니체는 언제나 새롭다

 

이 책을 읽고, 다른 부분도 그렇지만, 특히 영원회귀의 사상에 관해 한 발자국 진전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니체를 읽는 내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마치 이제 니체에 대해서 한 걸음을 마악 디딘 것 같은 기분이랄까, 기쁘다. 문일지십(聞一知十)이라 하여, 누군가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고 하지만, 나로서는 이제 한 가지 조금 깨닫게 되었으니, 다만 한두 가지라도 더 알게 되기를, 그렇게 살 수 있기를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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