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토지 제1부 1 - 박경리 원작
박경리 원작, 오세영 그림 / 마로니에북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토지>를 가슴으로 머리로, 느끼게 한다.

 

<토지>의 이미지화, 형상화

 

박경리의 소설 <토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1897년의 한가위.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아침 인사를 하기도 전에, 무색 옷에 댕기꼬리를 늘인 아이들은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길을 쏘다니며 기뻐서 날뛴다. 어른들은 해가 중천에서 좀 기울어질 무렵 이래야, 차례를 치러야 했고 성묘를 해야 했고 이웃끼리 음식을 나누다 보면 한나절은 넘는다.>

 

글을 읽어가면서, 머릿속에 무언가 그림이 나타난다.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다. 감나무가 보이고, 감나무 위에 까치가 날아와 앉는 것이 보인다. 이미지의 형성, 형상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감나무와 까치가 보이고, 그리고 마을 한편에 송편을 입에 문 아이들이 기뻐 날뛰는 모습이 그려진다.

 

글을 읽는 것과 동시에 머릿속에서는 그 활자들이 이미지로 변화하는 신기한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머릿 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직접 화필로 옮겨 그린다면?

그게 가능한 것일까? 더구나 그 방대한 소설, <토지>를?

 

또 이런 대화를 읽어보자.

 

<"쯔쯔 ... 저 좋은 목청도 흙 속에서 썩을랑가?"

"서서방이 즉으믄 자지러지는 상두가 못 들어서 서분을 기요."

"할망구 들을라? 들으믄 지랄할 기다."

"세상에 저리 신이 많으믄서 자게 마누라밖에 없는 줄 아니 그것이 보통 드문 일가?"

"신주단지를 그리 위할까? 천생연분이지 머."

"소나아로 태어나가지고 남으 제집 한분 모르고 지내는 것도 벵신은 벵신이제?">

 

 

타작마당에서는 굿놀이가 벌어지고 있는데, 그 중 앞장 서서 놀고 있는 서금돌을 두고 동네 아낙들이 주고 받는 대화이다.

그런 대화를 주고 받는 장면은 머리 속에 그려지는가?

이번 경우는 아닐 것이다. 앞에 인용한 <토지>의 처음 장면은 글만 읽어도 머리 속에 형상화가 되겠지만, 이런 대화로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여간해서 형상화가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여기 이 만화 <토지>에서는 둘 다 가능하다. 두 장면 모두 형상화되어 독자들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인용한 <토지>의 두 번 째 부분에서 아낙들이 나누는 대화는 소설 그대로 만화에서 옮겨 놓고 있다. 대화의 맛을 살리기 위해 그대로 옮겨 놓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대화만으로는 아무리 머리 속으로 실감나게 상상한다 할지라도 한계가 있다. 밋밋하다. 그러나 그림, 이미지를 통해 직접 말하는 얼굴, 입모양을 보고 들으면 더 실감이 나지 않는가?

 

그래서 이 책 만화 <토지>는 그런 면에서 먼저 가치가 있다.

글을 이미지화 하여 더 구체적으로 작품에 다가가게 하는 것, 그런 가치가 있다.

 

<토지>를 가슴으로 머리로, 느끼게 한다.

 

본격적으로 이 책을 읽기 전에 등장인물 소개하는 것을 살펴보자.

주요 등장 인물, 최참판가 17, 평사리 농민 18명의 의 얼굴이 소개되고 있다.

 

그 밑에 간략한 인물소개도 같이 하고 있는데, 그 인물 소개를 읽으면서 그 인물의 얼굴을 비교해보자. 어떤가? 신기하게도 인물소개로 이 책의 저자가 말하고 있는 그 모습이 그대로 그 려져 있지 않은가? 아무래도 그 것은 이미 소설로, 또는 영화로 <토지>를 미리 접해서 등장 인물에 대하여 익숙한 감정이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얼굴들을 보면서, 이야기의 흐름을 한번 떠올려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그렇게 등장인물들의 얼굴을 익힌 다음에 본격적으로 만화를 보도록 하자.

이 만화를 볼 때, 일일이 소설 <토지>의 내용을 떠올리지 않아도 좋다. 이 만화 <토지>는 그림으로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니, 그림 보기에 충실하면서 이야기를 쫓아가는 것도 좋다.

 

그림을 보다보면, 구천의 말못하는 울분이 보인다. 어미를 순식간에 잃어버린 서희의 안타까움이 보인다. 그 틈에서 봉순네의 주인을 향한 말없는 충성심이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한다. 용이가 월선의 손을 잡을 때에는 왜 그 둘은 이 땅에서 맺어지지 못한 채 저리 서로를 안타깝게 그리워해야만 하는지, 덩달아 슬픈 마음이 돋아난다. 그리고 귀녀의 예사롭지 않은 몸놀림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본다. 더하여 조준구가 의 밉쌀스런 얼굴로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이렇게 우리 익히 알고 있는 소설 <토지>를 이미지화 하여 보여주는 만화 <토지>는 그냥 줄거리만 읽어가며, 그림만 보고 넘어가는 책이 아니다. 그 소설을 한 걸음 더 깊게 보여주며 한 장면 한 장면을 낱낱이 보여주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토지>.를 가슴으로, 머리로 이해하고 느낄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이 책의 또 다른 가치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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