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를 가슴으로
머리로,
느끼게
한다.
<토지>의 이미지화, 형상화
박경리의 소설
<토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1897년의
한가위.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아침 인사를 하기도 전에,
무색
옷에 댕기꼬리를 늘인 아이들은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길을 쏘다니며 기뻐서 날뛴다.
어른들은
해가 중천에서 좀 기울어질 무렵 이래야,
차례를
치러야 했고 성묘를 해야 했고 이웃끼리 음식을 나누다 보면 한나절은 넘는다.>
글을
읽어가면서,
머릿속에
무언가 그림이 나타난다.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다.
감나무가
보이고,
감나무
위에 까치가 날아와 앉는 것이 보인다.
이미지의
형성,
형상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감나무와
까치가 보이고,
그리고
마을 한편에 송편을 입에 문 아이들이 기뻐 날뛰는 모습이 그려진다.
글을 읽는 것과 동시에 머릿속에서는
그 활자들이 이미지로 변화하는 신기한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머릿 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직접 화필로 옮겨 그린다면?
그게 가능한
것일까?
더구나
그 방대한 소설, <토지>를?
또 이런 대화를
읽어보자.
<"쯔쯔
...
저
좋은 목청도 흙 속에서 썩을랑가?"
"서서방이
즉으믄 자지러지는 상두가 못 들어서 서분을 기요."
"할망구
들을라?
들으믄
지랄할 기다."
"세상에
저리 신이 많으믄서 자게 마누라밖에 없는 줄 아니 그것이 보통 드문 일가?"
"신주단지를
그리 위할까?
천생연분이지
머."
"소나아로
태어나가지고 남으 제집 한분 모르고 지내는 것도 벵신은 벵신이제?">
타작마당에서는 굿놀이가 벌어지고
있는데,
그
중 앞장 서서 놀고 있는 서금돌을 두고 동네 아낙들이 주고 받는 대화이다.
그런 대화를 주고 받는 장면은 머리
속에 그려지는가?
이번 경우는 아닐
것이다.
앞에
인용한 <토지>의
처음 장면은 글만 읽어도 머리 속에 형상화가 되겠지만,
이런
대화로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여간해서 형상화가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여기
이 만화 <토지>에서는
둘 다 가능하다.
두
장면 모두 형상화되어 독자들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인용한
<토지>의
두
번 째 부분에서
아낙들이 나누는 대화는 소설 그대로 만화에서 옮겨 놓고 있다.
대화의
맛을 살리기 위해 그대로 옮겨 놓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대화만으로는 아무리 머리
속으로 실감나게 상상한다 할지라도 한계가 있다.
밋밋하다.
그러나
그림,
이미지를
통해 직접 말하는 얼굴,
입모양을
보고 들으면 더 실감이 나지 않는가?
그래서 이 책 만화
<토지>는
그런 면에서 먼저 가치가 있다.
글을 이미지화 하여 더 구체적으로
작품에 다가가게 하는 것,
그런
가치가 있다.
<토지>를 가슴으로
머리로,
느끼게
한다.
본격적으로 이 책을 읽기 전에
등장인물 소개하는 것을 살펴보자.
주요 등장
인물,
최참판가
17명,
평사리
농민 18명의
의 얼굴이 소개되고 있다.
그 밑에 간략한 인물소개도 같이
하고 있는데,
그
인물 소개를 읽으면서 그 인물의 얼굴을 비교해보자.
어떤가?
신기하게도
인물소개로 이 책의 저자가 말하고 있는 그 모습이 그대로 그 려져 있지 않은가?
아무래도
그 것은 이미 소설로,
또는
영화로 <토지>를
미리 접해서 등장 인물에 대하여 익숙한 감정이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얼굴들을 보면서,
이야기의
흐름을 한번 떠올려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그렇게 등장인물들의 얼굴을 익힌
다음에 본격적으로 만화를 보도록 하자.
이 만화를 볼
때,
일일이
소설 <토지>의
내용을 떠올리지 않아도 좋다.
이
만화 <토지>는
그림으로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니,
그림
보기에 충실하면서 이야기를 쫓아가는 것도 좋다.
그림을
보다보면,
구천의
말못하는 울분이 보인다.
어미를
순식간에 잃어버린 서희의 안타까움이 보인다.
그
틈에서 봉순네의 주인을 향한 말없는 충성심이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한다.
용이가
월선의 손을 잡을 때에는 왜 그 둘은 이 땅에서 맺어지지 못한 채 저리 서로를 안타깝게 그리워해야만 하는지,
덩달아
슬픈 마음이 돋아난다.
그리고
귀녀의 예사롭지 않은 몸놀림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본다.
더하여
조준구가 의 밉쌀스런 얼굴로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이렇게 우리 익히 알고 있는 소설
<토지>를
이미지화 하여 보여주는 만화 <토지>는
그냥 줄거리만 읽어가며,
그림만
보고 넘어가는 책이 아니다.
그
소설을 한 걸음 더 깊게 보여주며 한 장면 한 장면을 낱낱이 보여주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토지>.를
가슴으로,
머리로
이해하고 느낄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이 책의 또 다른 가치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