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이>란
책은 ‘나의
아이’
이야기다
이 책,
철학책이다.
언뜻
보면 교육 스킬을 가르치는 책 같지만,
철학이
가득한 철학책이다.
교육
철학,
그러나
딱딱한 이론서가 아닌,
실제적으로
적용이 가능한,
아니
적용해야만 하는 철학책이다.
저자의 기본
생각,
공감한다.
혹시 저자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점 때문에 이 책이 오해 받을 수
있겠다.
저자
원준희는 교육사업가이다.
소위
말하는 사교육 사업가이다.
그러니
이 책에는 사교육에서 성공하면서 얻은 공부의 노하우가 숨겨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할지도 모르겠다.
그게
오해라는 것이다.
그런 오해 불식하기 위해 이런 이야기 먼저
들어보자.
아이를 기르는 기본자세다.
저자는
교육자이기 이전에 한 명의 아버지로서의 회한을 먼저 이야기 한다.
<아이가
어릴 때는 이런 저런 조바심에 이것 저것 해주기 바쁘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면 너무 많은 것을 아이의 어깨 위에 올려놓은 것 같아 오히려 미안해집니다.
‘그래!
이제야
제대로 아빠 노릇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고
느낄 무렵,
아이는
이미 제 손을 떠나 있더군요.>(9쪽)
이 말,
이게
바로 내 이야기이다.
그래서
공감이 간다.
나도
모르는 새 아이의 어깨 위에 많은 것을 올려놓은 것 같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내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
문제점,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런 문제,
저자는
직시하고 해결방안을 강구했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페가수스’
과정이다.
<그는
서울 대치동,
목동과
부산 센텀시티 등에 파격적인 코스를 하나 개설했다.
공부를
잘하고 싶은데 의욕이 없는 아이,
공부에
공포증이 생긴 아이,
열심히는
하는데 열정이 없는 아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준다는 ‘페가수스’
과정이
그것이다.>
(책
표지 날개 앞 면)
그 과정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가?
<성적
중심의 기존 교육의 페라다임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아이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교육의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12쪽)
아이에게 주어진 유리천장을 깨라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을 전전하며 공부에 죽도록
매달리는데,
이게
문제가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
그러니
공부에 대한 열정이 식어버리고,
아이들은
다른 목표를 가지게 된다.
<그러니
목표가 바뀝니다.
실력을
높이거나 성적을 올리기 위해 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단지
다른 아이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하여 학원을 다닐 뿐입니다.
중간만
가는 것이 목표가 되고,
그것은
자신의 머리를 지배하는 유리창이 됩니다.>(11쪽)
그렇게 아이들의 머리를 지배하게 된 ‘유리창’을
부수기 위해 시작한 페가수스 프로그램은 효과가 있었다.
<아이들의
성격이 놀랍도록 차분해지고,
스스로
자기가 맞닥뜨려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찾아내고 해결책을 만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변화로 인해 진심으로 보람을 느끼고 아낌없는 희생을 하고 있습니다.>(13쪽)
그렇게 시작하는 그의 이야기를 이 땅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읽어보고
지금껏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바꾸려고 노력해야 된다고 본다.
내 아이는 나만의 아이가
아니다.
우리가 키우고 있는 아이는 나 자신으로는
하나,
둘에
불과하지만,
그
아이는 우리나라의 앞날을 짊어지고 가야 할 ‘아이’다.
그만큼
대표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아이 한명에 대해 가지는 ‘나의
생각’, 내
아이니까 내 마음대로 하겠다,
는
것은 지양해야 할 자세가 아닐까?
그래서 이 책은 그렇게 교육철학을 새로 정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주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은 울림이 있다.
<이
책은 가까이 들여다보면 비결이랄 것가 도 없는 페가수스 교육법의 이론적 정수를 담았다.
그
뿌리는 세계 유수의 교육학,
심리학
연구 결과이며,
그
가지는 공부에 찌든 우리 아이들을 위한 돌파구를 향해 뻗어 있다.
또한
자신의 욕심과 허영으로 아이들을 짓눌러온 우리 부모들의 양심고백을 촉구하는 선언문과도 같다.>
(책
표지 날개 앞 면)
‘아이들을
짓눌러 온 부모들의 양심고백을 촉구하는’
이 말에 예외가 되는 이 땅의 부모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아니
있기는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