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내 곁엔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
김경주 지음 / 열림원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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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헤맬 때, 내 곁엔 누가? 무엇이?

 

시극(詩劇)이란?

 

<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내 곁엔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라는 긴 제목의 책을 읽었다. 시극이라고 한다. 내 상식으로는 시극(詩劇)이란 극의 내용이 시로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극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등장인물 사이에 오가는 대화가 시로 이루어진다는 말인가?

 

읽었다, 한 번. 그런데 인물들 사이에 오고가는 대사가 시 같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대화, 산문체 대화로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도 이게 시극? 그런 의문이 먼저 들었다.

 

내가 헤맬 때, 내 곁엔 아무도 없었다,

 

읽었다. 그런데 내용마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는 의문은 물론이거니와, 등장인물간의 관계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두 번째 든 생각은 자괴감, 내가 글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일까, 이해력이 부족한 것인가? 아니면 무언가 다른 것이 있는 책인가?

 

그렇게 헤맸다. 그렇게 헤매며 한 번 읽고나서 다시 읽으려 했다. 두 번쯤 읽으면 이해가 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번 읽으려다가 해설이 첨부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해설을 읽어볼까 말까, 순간적인 망설임이 일었다. 문학에 전문적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해설이란 항목은 대부분 젠 체 하는 평론가의 놀이터에 불과했다. 요령부득으로 전문용어들이 난무하고, 현학적인 문장의 뒤엉킴, 그래서 어떤 경우는 더욱 난해한 미로로 끌려가기 일쑤였기에, 이 책의 경우도 혹시 그런 경우가 아닐까, 하는 기우가 또한 일었다.

 

그래도, 내용이 이해되지 않으니 이 해설 역시 이해가 되지 않으면 별 도리가 없지 않겠는가 하는 체념을 반넘어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그러니 제목을 패러디해서 말하자면,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가장 헤맬 때, 내 곁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있었다. - 의문, 자괴감, 기우 말끔히 해소해주는 해설

 

그렇게 생각하고 읽었던 해설, 읽기 잘했다. 해설을 읽고 나니 등장인물이 어떤 사람들인지, 심지어 유령인 것도 알게 되었고, 그들 간의 관계도 선명하게 드러나 보였다. 그러니 나의 독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었다. 정말 해설 읽기를 잘 했다.

 

그러니 내가 가장 헤맬 때 나를 도와줄 무언가가 이미 예비되어 있었는데, 나는 자라 보고 놀란 토끼처럼 지레 짐작으로 '해설' 읽기를 저어하고 있었으니, 그걸 읽지 않았더라면 이 책의 진면목을 놓치고 말 뻔했다.

 

그렇게 나의 부족한 독해력을 도와줄 장치가 마련되어 있어, 나의 의문, 자괴감, 기우를 모두 말끔하게 해소해주었다,

 

들어있는 뜻 깊은 의미들

 

그래서 나는 해설을 읽고 본내용을 다시 한번 읽었다.

거둔 수확은 의외로 많다. 뜻 깊은 의미들이다. 그냥 열거하기로 하자.

 

인생은 다른 인생의 삶에 있어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타자와의 공감대는 어떻게 형성이 되는가?

눈을 바라보며, 귀 기울여 듣고, 진심으로 답하는 가운데 상대방과의 접점이 생긴다.

대화는 정보교환에 머무르지 않고 시적교류로 이루어지면 어떨까?

 

빛나는 아포리즘

 

사랑하는 이가 떠나도 슬픔마저 떠나지는 않는 법이니까 (60)

 

사람들은 벌레가 징그럽다고 생각할 뿐, 벌레의 날개에는 관심이 없죠. (105)

 

눈은 세상에 자신의 고요를 조금씩 쌓고 있는 거예요.

곧 저 눈은 다 고요가 될 거예요. 깊고 아득한 것들로 돌아가기 위해서. (108)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어둠 속에서 손을 꼭 잡고 이렇게 조금만 있자....하는 거요.

멋져

또 말해줘. 사랑이 뭐야?

이불 속에서 지느러미를 부비며 노는 거. (118)

 

그래서 이 책, 시극(詩劇) 맞다.

 

이런 아포리즘을 찾아 읽으며, 나는 이 책이 왜 시극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대사가 들리기 시작했는데, 그 대사들이 리듬을 타고 있으며,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에서도 리듬을 타고 있었다.

해설을 쓴 평론가 허희는 리듬을 재발명해야 한다(149) 했는데, 그것은 작가의 몫이고, 독자인 나로서는 이 책에서 시극의 요체인 리듬을 재발견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등장인물간의 관계도 리듬을 타고 소통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으니. 이런 책 처음이다. 좋은 느낌으로 - 비록 등장인물들은 행복한 결말을 맞지 못하지만 - 책을 접었다.

 

다시 질문 - 내가 가장 헤맬 때, 내 곁엔 누가? 무엇이?

 

이 책의 해설이야기가 아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헤맬 때 과연 내 옆에 누가 있을까? 내가 그 헤맴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애쓸 때 누가 나에게 그런 역할을 해 줄 수 있을까? 책을 덮으며 든 또 하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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