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맞이하는 인문학적
풍경들
새벽이 언제 올지
몰라
문이란 문은 다
연다.
새처럼 깃털 달고
날아올까,
아니면 바닷가 파도처럼
밀려올까?
- 에밀리
디킨슨, <새벽의
인문학>
95쪽에서
인용.
작가의 눈은 우리와
다르다.
이 작가의 눈은
신비하다.
경이롭다.
작가의
눈은 현미경으로 또는 망원경으로 작동한다.
아니
그보다 더 치밀한 광학적 프리즘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가 언제 새벽에
‘새들의
첫 노래 소리도 숨죽인 듯 낯설’(139쪽)은
것을 느껴 보았던가?
그리고
‘그러고
나면 한 마리 한 마리씩 노래를 받아 부른다’(139쪽)는
것을 생각이라도 한 적이 있던가?
그런
-
우리는
결코 상상도 하지 못했던 -
새벽을
저자는 우리에게 보여준다.
새벽을,
우리가
잠자느라 또는 잠이 깨어서도 전혀 보지 못했던 순간들을 그만의 특이한 눈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새벽의
<파브르
곤충기>,
<시튼의
동물기>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곤충기,
동물기가 있다.
시튼의
동물기,
파브르의
곤충기이다.
그러데 그런 것들보다도 더
치밀하게 관찰한 기록이 여기 이 책에서 전개된다.
일일이 소개하기 어려워 대충 그 항목만
소개하련다
“나는
청설모가 꼬리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 즐겁다”로
시작하는 청설모 이야기. (161쪽)
“푸른가슴왜가리의
옆모습은 이곳에서 아침에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로
시작하는 왜가리 이야기.(162쪽)
굴뚝새 한 마리가 현관문 근처에
달아놓은 베고니아 화분으로 뛰어든다, 라는 굴뚝새 이야기.
(165쪽)
어디
그뿐인가,
그림도 시도
있다.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그림
<남풍,
맑은
하늘>을
주제로 한 산 이야기,
더
나아가 파도이야기 (170쪽)
그리고 모네가 우연히 호쿠사이의
작품을 접한 일화도 우리를 새벽으로 인도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171쪽)
모네에 대한 찬사는 비단 여기뿐만이
아니다.
모네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77쪽부터
한 장에 걸쳐 이어진다.
고딕
성당을 그리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창가에 이젤을 놓는 모네,
바로
루앙성당을 대상으로 서른 한 장을 그린 일화를 설명해준다.
그것은
새벽에 빛이 역동적으로 바뀌는 모습을 그리기 위한 모네의 노력이었다.
신선한 시각
-
저자는 우리를 툭
친다.
'저 새벽 빛을 보라'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저자는
새벽에 뜨는 태양의 빛이 어떻게 우리 사람의 눈에 인식이 되는가,
시간이
변함에 따라 어떻게 빛이 변하는가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신선한
시각”,
“우리의
지각은 늘 레이다망을 피해 다니다가 모네 같은 화가가 우리를 툭 치며 외칠 때에야 깨어난다.”(79쪽)
모네만 그런
것인가?
아니!
이
책의 저자가 우리를 툭 치는 바람에 우리는 비로소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이 책이 우리를 깨우게 하는 방법이다
뜻밖의 소득 -영화
<아름다운 비행
(Fly
Away Home)>
어머니를 잃고 방황하던 소녀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야생 기러기들과 함께 생활하고 이들과 함께 비행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있다.
원제는
<Fly
Away Home>.우리
말 번역은 <아름다운
비행>이다.
그런데 영화의 내용에 모티브를 준
실제 일화가 있다.
캐나다의
빌 리시먼이 1993년
자신이 제작한 초경량 항공기를 타고 기러기들을 캐나다에서 미국 버지니아 주 까지 이주시킨 적이 있다.
리시먼은
영화에 직접 항공기 스턴트 더블로 참가했다.
물론 이 영화에서 아내를 사고로 잃었다거나 딸과 함께 비행했다는 내용 등은 영화만의
픽션.
그런데 이 일화가 실제라는 것을
들어 알고 있기는 했는데,
이
책을 통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된 것이 의외의 소득이었다.
<리시먼은
새와 함께 비행한 최초의 인간이었다.
1988년
온타리오 근방에서 초경량 비행기로 캐나다 기러기떼를 이끌고 비행한 경험이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이 책 42쪽
이하를 참조하시라.
경탄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다음은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마치
우물에서 맑은 물을 길어내듯이 건져낸 글들이다.
이런 표현들을 이 책 말고 어디에서
읽을 수 있을까?
<새들은
노래로 주변 경치 속으로 파고들어 사방을 누빈다.>
97쪽
이런 표현은
어떤가?
<아주
단순한 소리라도 내려면 목구멍을 부풀리는데 그럴 때면 흰 목덜미에서 조그만 깃털 두 개가 삐죽 솟는다.>
(102쪽)
이런
표현,
거짓말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 표현을 접하면 독자들의 반응은 두 가지 일 것이다.
하나는
아니 어떻게 그런 관찰이 가능한가?
어떻게
그렇게 세밀한 관찰이 가능했을까?
그냥
지어낸 말 아닐까?
조그만
깃털 두 개가 솟았다니?
세
개도 아니고 한 개도 아닌 두 개가?
그런 의구심이 그 하나요.
또 다른 반응은
경탄!
특히 시간을 기록하면서 새벽을
묘사한 “새가
내는 모든 소리”(95쪽
이하)는
경탄 그 자체이다.
이런
기록은 그냥 카메라나 동영상으로 찍어서 올리기는 오히려 쉬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이런 식으로 글로 옮긴다는 것은 그야말로 누가 할 수 있으랴?
이 책의 저자 밖에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그래서 매 페이지마다 경탄하며
읽었다. 저자는
새벽을 맞이하는 독자들에게 풍경을 인문학적으로 보여주는데, 모든 것이 경탄할 만 것들이다. 그렇게 새벽을 경탄하며
맞이하면 하루가 얼마나 풍요로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