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십이국기 1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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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 힘이 세다

 

이 소설을 어떻게 분류할 수 있을까요? 일단 판타지 소설로 분류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판타지 소설과는 다릅니다. 격이 다릅니다. .

언뜻 보면 다른 소설들과 별 차이점이 없는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단순히 판타지 소설의 대열에 집어 넣으면 큰 손해를 보는 것이지요.

이런 판타지 소설? 읽어야 시간낭비일뿐!’ 이렇게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그것도 큰, 아주 큰 오산입니다.

 

달립니다. 주인공 빨간머리 요코는 달립니다. 이야기도 같이 달립니다.

이처럼 흡입력이 있는 책은 모처럼만입니다.

다른 판타지 소설에서 느꼈던 것들보다 월등하게 이야기가 힘을 발휘하는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달리고 달리고, 그래도 힘을 잃지 않는 이야기!

작가가 펼쳐내는 이 이야기, 이야기의 힘이 무척 셉니다.

 

그렇게 이야기가 힘이 있게 만드는 요소가 있는데, 몇가지 살펴볼까요?

 

작가의 표현력이 대단합니다. 이런 표현, 누가 구사할 수 있을까요?

<외치는 요코를 보며 고개를 쳐들고 웃던 원숭이가 속삭인다.

있지, 이렇게 생각해 볼 마음은 없어?”> (162)

 

생각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는 대화체 문장입니다.

우리가 실생활에서는 자주 쓰지만, 이렇게 문장으로 만들어진 글을 읽어본 적은?

아마 없는 듯 합니다. 그만큼 이 책의 서술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술술 읽히나 봅니다.

 

이런 문장은 어떻습니까?

<요코는 고개를 끄덕이고 남자의 어깨에 살며시 기대 걸었다. 어깨를 빌려준 남자에게는 조심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주위 사람들에게는 살짝 응석을 부리는 것처럼 보이도록.>(308)

 

이렇게 문장은 유려합니다. 그리고 단순히 상황을 묘사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장면묘사를 통하여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떠올리게 만들어 줍니다.

 

이런 문장들은 다른 여늬 판타지 소설에서는 보기 드문 것들입니다. 거기에서는 사건 묘사에 치우치다 보니, 이렇게 세밀한 심리 묘사는 볼 수 없고, 그저 것핥기에 불과한데, 이 소설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 과연 이러한 것들이 원작의 힘인가요? 아니며 우리 말 번역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그런데 그렇게 문장의 아름다움과 이야기의 힘에 빠져들어 읽다보니, 무언가 심상치 않는 존재가 등장합니다. 바로 몸 없는 푸른 색 원숭이의 등장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래서 푸른 원숭이의 역할이 무언가 살펴보았습니다. .

그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요코가 어려울 때마다 나타나서 그의 불안을 조장하는 존재, 아니 불안한 상태에서 각성과 조심을 촉구하는 내면의 목소리가 아닌가 하는 측면에서 바라보았습니다. 그런 각도로 읽어보니, 이 이야기 속에 한편의 심리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환경에 봉착하여 거기에서 맞부딪치는 사건들과 싸우는 일상!

우리네 현대인들의 불안한 모습이 거기에 투영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심리 드라마측면으로, 특히 불안과 관련하여 이 이야기를 읽었던 것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불안은 어떻게 촉발되는가?

 

<외치는 요코를 보며 고개를 쳐들고 웃던 원숭이가 속삭인다.

있지, 이렇게 생각해 볼 마음은 없어?”>(162)

 

이 구절은 불안심리 촉발에 대한 탁월한 묘사입니다.

 

또한 불안은 현실적으로 다른 사람을 통해서 전염되기도 합니다.

<불안해하는 닷키의 목소리가 요코까지 불안하게 한다.>(128)

 

불안은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좀먹는가?

 

<이 원숭이는 요코의 절망을 먹으러 오는 것이다. 사람 마음을 꿰뚫어 보는 요괴처럼 요코의 마음에 숨은 불안을 폭로해서 요코를 좌절시키기 위해 나타난다.> (202)

 

<푸른 원숭이의 말은 요코의 불안이다. 원숭이는 그 불안을 폭로하기 위해 찾아온다. 불어난 불안을 먹기 위해서다. 아마도 그런 것이리라.>(238)

 

<푸른 원숭이는 요코의 불안을 폭로한다. 푸른 원숭이의 말에 일일이 대답하는 것은 자신을 납득시키는 작업과 비슷했다.> (239)

 

불안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그런데 그런 불안이 부정적인 의미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닙니다,.긍정적인 방향으로도 작동하는데, 저자는 다음과 같이 그것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푸른 원숭이는 자신도 눈치채지 못한 불안까지 폭로해 주니까,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용할 수 있다.> (241-242)

 

불안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자신을 설득하고 또 설득하며 날이 저문 길을 반달음질로 걸었다.>(287)

<스스로를 열심히 설득하던... >(287)

 

일단 불안에 대처하는 방법은 그렇게 불안한 생각이 들 때마다 그것을 납득시켜 이겨내는 것입니다. 선은 이렇고 후는 이러니, 불안하지 않다, 내가 이렇게 결정하는 것이 옳다, 라고 스스로 납득이 되게끔 사고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불안에 대처하다가 드디어 요코는 불안을 내치게 됩니다. 상징적인 묘사이긴 하지만 요코는 불안을 제거해 버립니다.

 

<혼신의 힘을 담아 풀 숲을 후려쳤다. 풀숲을 벤 검 끝은 공기마저 가르며 손에 묵직한 감촉으로 돌아왔다. 흩날리는 이파리 사이로 원숭이 머리가 날아간다. 땅에 떨어져 피를 뿌리며 데굴데굴 굴렀다.>(294)

 

그 보다 더한 방법, 목표와 희망!

 

그러나 그러한 방법보다 실상 더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불안을 이겨내는 방법, 이 책에서 소개하는 가장 큰 힘을 가진 방법은 바로 요코가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돌아간다. 반드시 그리운 곳으로 돌아간다. ......돌아가기 위해서는 살아있어야 하니까 내 몸을 지킨다. 이런 곳에서 죽고 싶지 않다.> (204)

<...돌아가고 싶어.> (262)

<마음속에서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288)

 

그래서 결국 요코는 해피엔딩을 맞이합니다.

푸른 원숭이인 불안은 요코에게 불안을 촉발시켜 이제 희망은 더 이상 없으니, 빨리 죽으라고 꼬드기는데 요코는 그것을 희망이란 존재로 물리치며 자기의 생명을 귀하게 여겨 결국은 이겨내는 것입니다.

<아무도 아까워하지 않는 목숨이니까 나만이라도 아까워하기로 했어.> (241)

 

이렇게 이소설을 심리드라마의 측면에서, 푸른 원숭이와 주인공 요코가 불안을 가운데 두고 투쟁하는 심리드라마로 살펴본 나의 시각은 마지막 결말 부분에 이르러 연왕의 말로 증명이 됩니다.

 

요코가 연왕을 만났을 때에 연왕은 이렇게 푸른 원숭이가 어떤 존재인지를 밝힙니다.

<"검집은 원숭이로 모습을 바꾸어 나타나지. 원숭이는 사람 마음속을 읽는데. 이것 또한 긴장을 늦추면 주인의 마음을 읽어 어지럽히지."> (365)

 

푸른 원숭이란 존재는 바로 그렇게 주인의 마음을 읽어 어지럽히는 '불안'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이 소설을 읽어보았습니다.

물론 이 소설을 다른 각도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소설은 요코라는 소녀의 성장소설로도 볼 수 있고, 또 요코가 자리를 비우게 되자 그 학교 친구들이 요코를 평가하는 멘트를 통하여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소외가 이루어지는가를 다룬 소설로도 읽혀집니다.

 

결론하여, 이 소설은 단순한 판타지 소설이 아니라, 여러 가지 색깔로 읽을 수 있는, 한편의 아름다운 프리즘 같은 소설입니다. 또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통을 돌릴 때마다 화려하게 무늬가 펼쳐지는 만화경 같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책을 펼치기 전에 이런 판타지 소설, 공연히 시간낭비 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던 나의 편견을 보기 좋게 깨뜨려준 저자에게 감사드립니다.

 

결론하여, 이 소설은 단순한 판타지 소설이 아니라, 여러 가지 색깔로 읽을 수 있는, 한편의 아름다운 프리즘 같은 소설입니다. 또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통을 돌릴 때마다 화려하게 무늬가 펼쳐지는 만화경 같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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