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고흐가 당신 얘기를 하더라 - 마음이 그림과 만날 때 감상은 대화가 된다
이주헌 지음 / 쌤앤파커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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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고흐가 당신 얘기를 하더라

 

이 책, 마음에 드는 게 여럿이다. 하나씩 적어본다.

 

첫째, 그간 그림 공부를 화가들 중심으로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 읽어보니 아직 멀었다. 이 책에서 그간 듣지 못했던 화가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못 보았던 그림은 물론이다.

 

예컨대, 오페라 <카르멘>을 공부하면서 카르멘을 모델로 하여 그린 그림을 몇 점 본 적이 있는데, 여기에서 다른 스타일의 카르멘 그림을 몇 점 더 보게 된다. 53, 55, 58, 60, 모두 넉 점을 더 보게 된다.

 

<카르멘>, 밸런타인 카메론 프린셉

<카르멘>, 레오폴드 슈무츨러

<카르멘>, 에밀 보터스

<카르멘으로 분장한 에밀리 앙브르의 초상>, 에두아르 마네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주인공 역인 비올레타의 그림도 여기 있다.

<라 트라비아타>, 가브리엘 폰 막스 (66)

 

또한 그 그림과 더불어 오페라 속의 이야기도 같이 곁들이고 있다.

음악과 그림을 같이 듣게 되는 것이다.

 

둘째, 그림과 화가들을 주제별로 잘 분류해 놓아, 그림 보면서 맞아 맞아, 그렇지 하는 감탄의 발언이 저절로 나온다.

 

1장 사랑의 얼굴은 백만 가지

2장 내 마음의 등을 밝히면 온 세상이 밝아진다

3장 침묵할 때 비로소 선명해지는 내면의 소리

4장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

5장 절망의 장막이 드리우면 희망의 별이 뜬다

 

각 장마다 분류해서 전시해 놓은 그림들이 주제별로 딱딱 맞아떨어져서, 각장의 주제와 연관해서 그림을 감상하게 되는데, 그게 또한 여간 철학적이지 않다. 해서 그림 보면서 철학하는 기분이랄까, 그럴 정도다.

 

셋째, 듣지 못했던 이야기들, 사람들, 신화의 이야기도 듣게 된다.

 

예컨대, 톨스토이가 짐꾼 노릇을 하게 된 사연(8)이 소개되는데, 이런 일화는 다른 데에서 듣지 못한 것이라, 반가웠다.

 

또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빠진 이야기 여기서 듣는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거인이 있는데, 그 이름은 폴리페모스다.

그 폴리페모스, 다만 <오디세이아>에만 등장하는 거인인줄 알았는데, 다른 이야기도 여기에서 듣게 된다. 그에게 슬픈 사랑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42)

갈라테이아라는 님프에게 한 눈에 반했는데, 안타깝게도 그 님프는 그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니, 이런 이야기도 있다, 그 이야기를 <오디세이아>의 폴리페모스 이야기에 추가해 놓아야겠다.

 

넷째, 그냥 지나쳤던 그림의 부분을 새롭게 보게 된다.

 

예컨대,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의 이야기를 그린 그림에서 새로운 부분을 보게 되었다.

장 레온 제롬이 그린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를 본 것이 한 두 번이 아닌데, 저자의 이런 말을 듣고 새롭게 보게 된다.

 

조각상은 허리춤까지 사람의 살빛을 띠고 있어요. 상반신이 어느덧 사람으로 변해있는 것입니다. 다만 그녀의 다리는 아직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엉덩이 위의 따뜻한 살색과 구분되는, 여전히 창백한 대리석 빛의 다리는 입맞춤이 생명의 기운을 온몸에 퍼트리는 중임을 시사합니다. (28)



 

이 글 읽고 그림을 다시 보았다. 그렇다. 아직 채 사람이 덜 되었기에 다리 부분의 색깔은 다르다. 그걸 이제야 보다니, 저자 덕분이다.

 

다섯째, 새롭게 알게 되는 것도 있다.

 

초상화와 트로니(Tronie)는 다르다.

 

네델란드 화가 페르메이르의 그 유명한 그림 <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그게 초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난 사람 얼굴을 그리면 그게 설령 가공의 인물일지라도 무조건 초상화라고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다른 이름 트로니로 분류된다는 것인데, 초상화는 모델을 그 사람 자신으로 그리는 반면, 트로니는 그 사람 자신을 그리는 게 아니라 특정한 유형의 표정이나 인상, 인종, 성별, 연령의 특징을 가진 가상의 인물로 새로이 창조하는 것이다. (290)

 

그러므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의 소녀는 가상의 인물이고, 그녀가 누구인지 묻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것, 이제 알게 된다.

 

다시, 이 책은?

 

저자는 이런 말을 <프롤로그>에서 하고 있다.

 

미술에 대해 잘 모른다는 두려움, 반드시 새로운 것을 알아가야 한다는 부담감을 잠시 내려놓고 그저 편하게 그림을 보다가 마음에 떠오른 생각을 간략히 적어보면 어떨까요? (7)

 

그런 저자의 말에 힘입어 여기 책에 담아놓은 그림들을 보면서 어느새 저자처럼 그림에 대해 생각하고, 말도 하는 그런 것 처음 해보게 되었다.

 

그림을 다룬 책을 여러 권 읽었는데, 그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책, 몇 번이고 거듭 읽으면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마음씨까지 헤아려 보기는 처음인데, 그림마다 붙여놓은 말을 들으니 저자의 마음씨가 참 곱다. 참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글을 쓰는 솜씨가 차분하고 여유가 있어보여, 그림을 감상할 때 나도 모르게 마음이 넉넉해지는 기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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