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사를 움직이는 12가지 힘 - 공화정·회복탄력성·공공성·대립과 경쟁·영웅과 황제·후계 구도·선정과 악정·5현재·혼돈·군인황제·유일신교·멸망
모토무라 료지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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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사를 움직이는 12가지 힘

 

로마는 마치 화수분같다또한 수수께끼 같기도 하다.

파고 파고 파도 끝없이 나오는 로마퍼내도 마르지 않는 화수분같이 배울 게이야기 할 게 넘쳐나는 로마다.

또한 풀어도, 풀고 풀어도 끝없는 수수께끼로 넘쳐나기도 한 게 로마다. 

해서 그런 로마를 좀 더 이해하고자 지금껏 로마에 관한 책을 이것저것 읽어왔는데이 책 한권 더한다그런데 이 책은 그저 한 권 숫자를 더한다는 차원이 아니라로마를 이해하는 데 명쾌함을 발견하는 기쁨을 얻은 책이라 정의할 수 있겠다.

 

어떤 명쾌함?

 

첫째로마를 움직였던 힘 12가지를 알게 된다.

로마이 천년이 넘는 로마 역사의 흐름을 어떻게 하면 정리해볼 수 있을까 하는 바람에 아주 적절한, 12가지 키워드로 로마 역사를 꿰어볼 수 있었다.

 

둘째역사가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저자가 로마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그 저변에 있는 역사를 바라보는 방법을 말해주어로마사는 물론 역사 자체에 대하여도보는 안목을 갖게 해준다.

 

세 번째로마 역사에서 그간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들도 많이 만나게 된다.

 

이런 장점이 있는 책이라여기 적어둘 게 많다그중 몇 개 기록해 둔다.

 

먼저 책 제목이 말하는로마사를 움직이는 힘 12 가지가 무엇인지 알아두자.

 

공화정’, ‘회복탄력성’, ‘공공성’,

대립과 경쟁’, ‘영웅과 황제’, ‘후계 구도’,

선정과 악정’, ‘5현제’, ‘혼돈’,

군인황제’, ‘유일신교’, ‘멸망

 

로마의 시작

 

로물로스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세운 나라를 로마라 불렀다,

그리고 기원전 753년 4월 21일에는 성대한 건국 기념 축제를 열었다이 축제가 지금도 로마에서 성대하게 치러지는 로마 건국 기념일’ 행사다. (27)

 

이에 대하여는 추가로 기록할 게 있다.

 

필리푸스가 로마 귀환을 서두른 또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248년은 로마가 건국된 지 막 1,000년이 된 해로 대규모 기념행사가 개최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실제로 필리푸스는 248년 4월 21부터 23일에 걸쳐 로마 건국 천년 축제를 성대하게 거행했다. (304)

 

왜 하고많은 나라 중에 유독 로마만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가?

이에 대한 로마의 역사가 폴리비우스의 설명이 의미가 있다.

그는 이런 의문에 정치 체제 순환론으로 설명한다. (55-56)

 

카밀루스 새롭게 알게 된 인물

 

<로마 제2의 건국자’ 카밀루스는 어쩌다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고도 추방되다시피 했을까?>

라는 항목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인물 카밀루스를 만난다.

 

그는 카우디움 전투에서 삼니움족에게 당한 굴욕을 되갚아주고 대제국의 기틀을 다진 위대한 로마군인이다그는 삼니움 족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삼니움 족이 요구하는 굴욕의식을 치루면서도 살아남아결국을 설욕을 했다.

 

훗날 르네상스 시대에 마키아벨리는 카우디움의 굴욕에 대하여 정략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 사건은 삼니움 족의 뼈아픈 실수였다. 삼니움 족은 로마군 전체를 몰살해야 했다. 로마군은 굴욕이 클수록 복수심을 활활 불태우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67)

 

로마인은 한 번 패배하면 어떻게든 그 굴욕을 씻어내기 위해 집념을 불태우고 두 번째세 번째그 굴욕을 씻어내는 승리를 거머쥘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싸우는 집념의 민족이다. (67)

 

패전 장수에 대해 어떤 대우를 하는가에서 그리스와 로마가 큰 차이를 보인다.

패전 장수에 대한 태도 그리스와 로마

 

로마는 패전 장수를 내치지 않고 조국의 품으로 받아들인다.

그리스에서 패전 장수는 모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돌아가면 패전의 책임을 지고 운이 좋으면 추방최악의 경우에는 처형대로 향해야 했다. (77)

 

그렇다면 로마에서 패전 장수에게 관용을 베푼 이유는 무엇일까?

로마인이라는 긍지를 지닌 그들에게 패배를 맛본 순간의 굴욕이 이미 충분한 사회적 재판이 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로마는 패전 장수를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기회가 생기면 자시 장수로 기용해 설욕할 기회를 주었다. 로마인은 실패할 경우 그 실패에서 배울 수 있다고 믿었다. (77)

 

카르타고

 

2차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는 카르타고에 은 1만 탤런트의 배상금을 50년 분할로 납부할 것을 강화조건으로 내건다그런데 카르타고는 뜻밖에 그 배상금을 얼마 지나지 않아 일시불로 지급하겠다고 나선다.

 

카르타고는 어떻게 그렇게 빨리 경제 부흥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로마에 의해 재무장을 금지당하며 국방비에 돈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역설적으로 카르타고는 국방비에 돈을 쓰지 않아 경제 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고결국 기적적인 속도로 경제 부흥을 실현했다. (88)

 

로마의 성벽

 

이런 기록을 읽은 적이 있다.

 

로마제국은 새로 정복하는 곳에 도로를 먼저 만들었다.

이게 그 유명한 로마의 가도(街道).

로마인들은 전쟁이란 병참으로 이기는 것이라고 자신했을 만큼 수송과 보급을 중시했다.

그렇기에 도로 건설은 정복지의 안정적인 방어를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로마인들이 만든 도로는 고대부터 유명했고 아주 견고하게 만들어져

그중 일부는 오늘날에도 멀쩡히 사용되고 있다반면 성을 쌓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로마의 카이사르는 로마는 침략받을 일이 없으니 성벽이 필요없다며 허물어 버렸을 정도다.

지금의 로마 성벽은 2세기 말 로마가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로마의 방비를 위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만든 것이다.

 

성을 쌓았다는 로마의 황제에 관한 기록이 여기 보인다.

그런데 내가 본 기록에 오류가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아니라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우렐리아누스 황제다.

 

아우렐리아누스가 즉위하고 2년이 되는 해에게르만 계 마르코만니 족이 이탈리아로 진격해 들어오자성벽을 쌓기 시작한다 

그 성벽은 벽돌과 로마식 콘크리트를 사용해 높이 6.4 미터두께 4미터총 길이 20 킬로미터에 달하는 웅장한 규모인데아우렐리아누스 황제 때 완공하지 못하고 프로부스 시대에 완성했다. (318-319)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로마 이전의 모든 역사는 로마로 흘러 들어갔고,

로마 이후의 역사는 로마로부터 흘러 나왔다.” 독일 역사가 폰 랑케.

 

현자는 역사에서 배운다독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 (21)

 

다시이 책은?

 

저자는 <글을 시작하며>에서 이런 말을 남긴다.

 

일련의 주제를 탐구하다 보면 역사의 이면에 숨은 뜻밖의 사실을 깨닫고 짜릿한 지적 흥분을 느끼게 된다. (7)

 

맞다그 말이 백번 천번 맞는 말이다이 책에서 바로 그런 지적 흥분을 찌릿하게 느꼈다 

더하여 로마사 읽는 법을 배웠다지금껏 읽었던 로마사는 그저 책을 마구잡이로 읽었던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시역사에 대해 정리하자면이 책을 읽고 역사가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저자가 로마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그 저변에 있는 역사를 바라보는 방법을 말해주어로마사는 물론 역사 자체에 대하여도 보는 안목을 갖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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