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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그 화려한 역설 - 69개의 표지비밀과 상금 5000만원의 비밀풀기 프로젝트, 개정판
최인 지음 / 글여울 / 2023년 5월
평점 :
문명 그 화려한 역설
소설이다. 문명비평을 주제로 하는 소설.
저자의 지적 자부심이 충만한 소설이다.
폴리스인 주인공 모제의 ‘오디세이아’라고 할까. 장대한 지적 모험을 나서는 그의 뒤를 따라가면서, 정말 ‘세계는 넓고 배울 것은 많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 책은 폴리스(등장인물들은 경찰, 형사라는 말 대신 폴리스라는 말을 선호한다)인 주인공 모제가 수많은 여인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써내려간 ‘강의록’이다.
일단 이 소설의 구조는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된다.
여인과 관계를 설명하고, 그 여인과 만나는 장소라든가 등과 관련되어 나오게 되는 지식들을 하나 가득 풀어놓는다. 예컨대 어머니를 만나서는 서양화가들을 다음과 같이 적어놓는다. (165 - 166쪽)
어머니는 서양화를 전공했다. 그런 어머니의 발언, 들어보자.
그림이 품위 있어 보이지?
서양화가 동양화보다 더 그림같다. 동양화는 서양화에 비해서 국제 경쟁력이 떨어지거든, 동양화는 사 놔봐야 가격도 별로 뛰지않고.
어머니 집에 있는 그림은?
마티스가 그린 오달리스크.
르동, 마리 보트킨의 아스트라칸 코트.
어머니와 이복 동생(제니)을 제외한 다른 여인들과의 만남에서는 지식 강의록에 이어서 한바탕의 섹스가 펼쳐진다. 그러니 [여인과 만남 - 강의록 - 섹스]로 이어지는 패턴이 성립된다.
그가 만난 여인들을 살펴보자,
유리 : 사라진 애인
마리 : 유리의 동생, 자살한다. (423)
파라 : (27세) 편하게 만나는 사이 (14), 미국으로 간다
피여나 : 꽃집 여자
다미 : (16세) 가출한 소녀
마담 지바 : 요정 폰타네, 37세, 섹스 파트너, 미국으로 간다
디나 : 22세 (119), 자살 (333)
나래 : 20세, 화교 3세, (12, 168)
미사 선배 : 35세, 트랜스레이터 (226), 아마존으로 떠난다.
그런데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한결같이 서양식이다. 우리말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그가 출입하는 가게들 이름도 한결같다. 상호가 고급지다.
유토피아 나이트 클럽(125)
스피드 쿠킹점 (12)
하이틴 식당 다프니 (22)
레스토랑 로마네스크 (42)
코린토스 : 아이스크림 가게 (124)
카페 프로방스 (138)
락카페 엔타시스 (173)
비잔틴 : 술집 (206)
드림 컨츄리 : 카페 (459)
세상은 넓고 배울 것은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다음과 같은 항목들이다.
꽃이름 19쪽
클래식 음악
오페라 춘희 (259,261쪽)
타르타니의 소나타 2악장 (269쪽)
팝송
로드 스튜어트 세일링 (182)
캐스케이더스, 리듬 오브 더 레인 (237쪽)
그리스 신화 : 41,
포스트 모던 작가 : 148쪽
그림들
해바라기, 고갱의 장미와 소상, (154쪽)
번역가인 사미 선배가 번역하고 있는 <화보집>에는 화가들(229쪽)이 등장한다.
앙리 루소, 들라크루아 등
시드니 민츠 (233쪽)
괴테 (257쪽)
플로베르 (257쪽)
그밖에 국제 정세와 역사를 논하고 있는 강의록도 등장한다.
미국 패권주의, 구형 구조와 신형 구도 (208쪽)
러시아 여인으로부터 시작한 러시아 역사와 정세 강의록 (400쪽 이하)
러시아 음악가들 :
차이코프스키, 무소르크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프로코피에프,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 (400쪽)
미국의 문화에 대하여 (407쪽 이하)
그러는 가운데, 유토피아 나이트 클럽에서 집주를 만나게 되는데 그로부터 결국은 문명의 역설에 대하여 듣게 되고, 점점 그에게 빠지게 된다.
그게 이 소설의 주제가 된다.
집주는 지배인을 대신하는 말인데, 유토피아 클럽의 집주는 마치 천국의 관리자 같은 모습니다. 그가 유토피아의 건물을 관리하는데, 그 안에는 마치 <신곡>에 등장하는 연옥, 지옥 같은 형태로 인류의 현재와 미래를 암시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그럼 이 소설의 주인공 모제는 집주에게 어떠한 사람인가?
모제는 소위 말하는 ‘택한 자’이다.
집주가 한 말을 새겨보자.
현실에 적응해서 약삭빠르게 살아가는 인간보다, 선생처럼 단순하게 사는 사람이 필요하지요.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고,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타인을 껴안고 사랑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이지요. (469쪽)
그러면서 모제에게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자고 한다. 흰부르의 겨울이 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흰부르의 겨울, 그건 신들과 그들의 세계가 멸망하는 때를 말한다.
그렇게 시작된 집주와의 만남은 결국 모제의 인생을 바꾸어놓는데......
다시, 이 책은?
일단 이 소설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솔직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을 만하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한국 사회를 비롯하여 세계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도 훌륭하다. 위에 언급한 강의록이라는 부분은 소설과는 별도로 새겨보면서 읽어야 할 것들이다.
문명, 우리가 그 속에서 살아가기에 그 전체를, 본 모습을 볼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느라, 소비하느라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그 문명의 화려함 속에 들어있는 본질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 또한 칭찬받을만하다.
그래서 이 소설을 통해 현재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시대를 날카롭게 통찰한 저자의 안목이 부럽다.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는 필치 또한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