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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 이은정 - 요즘 문학인의 생활 기록
이은정 지음 / 포르체 / 2021년 7월
평점 :
제대로 『쓰는 사람, 이은정』
왜 이 책을 읽고 싶었나?
이 책을 읽으면서 다음 두 가지 사항 눈여겨 보고 싶었다.
첫째는, 글을 어떻게 제대로 쓸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문장부터, 글의 구조 등등, 저자가 글을 제대로 쓰시는 분이니, 그런 점을 배우고 싶었다.
그런 나의 바람은, 이 책의 첫 문장 읽는 순간, 다른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
제대로 살고 있는지 매일 의심하지만 제대로 사는 게 뭔지 잘 모르겠다. (5쪽)
'제대로' 라는 말을 제대로 배운 기분(?).
글쓰기를 제대로 배우기 이전에 삶을 제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겠다는 강력한 예감이 들었다. 책의 초입부터 기분 좋은 출발이다.
둘째는, 글을 쓰는 분이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는지, 그게 궁금했다.
글은 제대로 쓴다 할지라도 글을 아무렇게나, 아무 것이나 허투루 쓰면 그 글은 안 쓰니만 못한 것이니 잘 쓰는 글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다시 말하면 사건과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글로 옮겨내는가, 하는 점을 배우고 싶었다.
그런 내 심정을, 이 책에서 저자 집으로 전기를 수리하러 온 기사가 대신 물어봐준다.
“무슨 글을 쓰세요?”
“소설도 쓰고 수필도 써요. 둘 다 등단을 해서.”
나는 필요 없는 말까지 곁들이며 자랑처럼 말했다.
“그런 거 말고요. 어떤 글을 쓰냐고요.‘ (42쪽)
”어떤 글을 쓰냐고요?“
그게 내가 품었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해주는 말이다. .
이 책은?
그런 걸 배우고 싶었던 이 책 『쓰는 사람, 이은정』은 <요즘 문학인의 생활 기록>이란 부제가 붙어있는, 수필집이다.
저자는 이은정, 단편소설 〈개들이 짖는 동안〉으로 2018년 삶의향기 동서문학상 대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20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일간지에 짧은 에세이를, 계간지 『시마詩魔』에 ‘이은정의 오후의 문장’ 코너를 연재 중이다. 저서로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2020), 『눈물이 마르는 시간』(2019),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2020, 공저)가 있다.
읽고 쓰는 것이 삶인 저자는
확실히 그 말이 맞다. 글은 인생이라는 것, 그 말이 맞다.
저자는 읽고 쓰는 사람이다. 그게 살아가는 전부다.
그래서 이 책에는 저자의 인생이 모두다 드러나고 있다.
중년이 되어도 빈궁한 형편을 벗어나지 못하는 딸을 위해....(39쪽)
나이는 중년이요, 성별로는 여성이다. 가정형편도 드러난다.
햇빛이 좋아서 마당에 앉아있었다. 반려견 장군이의 털을 벗겨주며 나른한 오후를 보내는 중이었다. (31쪽)
마당 있는 집에, 반려견과 같이 산다.
나 역시 1인가구다. 밥은 햇반으로 대신하고 반찬은 엄마한테 얻어먹거나 반찬가게에서 사다 먹는다. (227쪽)
1인가구를 운영중이다.
이 정도면 대충 저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또한 책 여기저기에 글쓰는 저자의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해서 책 제목이 『쓰는 사람, 이은정』인 것이다.
그래서 외로움에 대해 배운다.
자유롭게 살고 싶지만, 지독한 외로움은 피하고 싶은 양가감정을 떠올린다. (170쪽)
외로워 보이지 않기 위해 고독과 친구 하는 법도 익힌다. (184쪽)
혼자 사는 삶은 지극히 자유롭지만 예상치 못한 일을 예상하며 살아야 하는 수고도 있다. (184쪽)
절망을 함께 겪을 사람이 있다는 건 버티고 이겨낼 힘이 되지 않을까 싶어 옆구리가 시렸다. (276쪽)
저자가 외로움을 어떻게 친구 삼아 살아가는지, 알 수 있는 구절들이다.
고독과 친구 하지만 지독한 외로움은 피하고 싶어하는, 그 마음.
외로움을 피하는 좋은 방법은?
저자가 보여주는 외로움을 피하는 괜찮은 방법은 이게 아닐까 싶다.
시작부터 솔직하면 거짓이 끼어들지 않는다. 진실은 더 깊은 진실을 이야기하게 하고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양산한다. (219쪽)
그런 '솔직'이 저자를 외롭지 않게 한다. 다음은 그런 사례들이다.
집을 옮기기 위해, 인터넷으로 집을 알아보고 어촌의 작은 마을에 있는 ‘내 맘에 쏙 드는 아담한 주택’을 보러갔다. 욕심이 나는 집이기에 집주인에게 은행에 가서 대출을 알아보겠다고 은행에 갔는데, 대출불가 판정 소식을 듣고, 그만 돌아오려다가 다시 그 집으로 향했다.
돌아온 저자를 본 주인아주머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색을 한다.
“나는 솔직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서 솔직하게 말했다. 집은 마음에 드는데 매매로 들어올 형편은 안 된다고. 괜한 욕심을 내어 은행까지 갔다고....”
그말을 들은 아주머니, 대단히 감동적인 표졍으로 말한다.
“가진 게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세도 좋고 월세도 좋으니 여기 와 살라” (17쪽)
그렇게 솔직함은 외로움을 구축(驅逐)한다.
또 있다. 이건 재미있기도 하다.
군고구마 먹고 싶어, 장수에게 묻는다. “고구마 얼마예요?”
한 봉지에 만원이라는 말에 다시 묻는다. “몇 개에 만원인데요?”
비싼 가격에 놀란 내가 물었다. 할아버지는 여섯 개, 라고 대답하며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여섯 개는 너무 많았고 만원은 너무 비싸게 느껴진 나는 돌아설 타이밍을 찾고 있었다.
그때 할아버지가 말했다.
“몇 개 먹고 싶은데?” (29쪽)
군고구마 장수 할아버지와 저자의의 대화가 이어지는 장면, 상상해 본다.
군고구마 냄새가 솔솔 풍기는 그 곳에, 군고구마 먹고 싶어하는 처자가 돈 때문에 머뭇거린다. 망설이는 그 표정 읽은 할아버지, 몇 개 먹고 싶냐고 묻는 것, 아마 듣도보도 못한 장면일 것이다. 저자의 솔직함이 돋보이는 구절 아닌가? 누가 이런 이야기를 글로 솔직하게 풀어낼까.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우리는 사람이 한 계절을 무사히 보내기 위해서는 일상에 얼마나 많은 수고가 필요한지 잘 모르고 산다. (119쪽)
모든 인생은 날마다 처음이다. (134쪽)
사람은 겪은만큼 보인다. (146쪽)
사람들은 몰라요, 말을 해줘도 몰라요. 그 시절 우리의 절망은 우리만 알아요. 우리만 알면 되죠. (275쪽)
새롭게 알게 되는 우리말
가을을 많이 타는 나는 허우룩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44쪽)
[마음이 텅 빈 것같이 허전하고 서운하다.]
꼬꼬지 흙집(65쪽)
[아주 오랜 옛날.]
나는 덧거리 응석을 곁들이고 말았다. (89쪽)
[사실에 보태어 없는 일을 덧붙여서 말함. 또는 그렇게 덧붙이는 말.]
늘 맨발인 나는 구새 먹은 나무처럼 가볍기만 하다. (101쪽)
[속이 썩어서 구멍이 생긴 통나무.]
다시, 이 책은?
제대로 사는 방법은?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제대로 살고 있는지 매일 의심하지만 제대로 사는 게 뭔지 잘 모르겠다.
이 리뷰 초입에 인용한 말인데, 그 뒤로도 글은 이어진다.
‘제대로’까지 생각하기엔 너무 숨막히니까. 제대로 살고 있지 않아도, 명랑하지 못하더라도 괜찮은 것 같다. 다들 때로는 그렇게 살아간다는 걸 눈치채고서야 내 삶에 조금 관대해질 수 있었다. 늦었어도 괜찮아. 계속 느려도 괜찮아. (5쪽)
‘제대로’를 물었던 나에게, 어때? 하고 묻는 듯하다.
정말, 수필은 이렇게 써야 한다.
글은 이렇게 써야 한다. 글은 이런 것 쓰라고 있는 것이다.
해서,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노렸던 두 가지 모두 얻었다.
책다운 책을 읽어서, 기분이 뿌듯하다. 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