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류 모두의 적 - 해적 한 명이 바꿔놓은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
스티븐 존슨 지음, 강주헌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6월
평점 :
역사를 보는 눈을 뜨게 해주는 『인류 모두의 적』
이 책은?
이 책 『인류 모두의 적』은 해적 한 명이 바꿔놓은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을 그린 책으로
원제는 <Enemy of All Mankind>이다.
저자는 스티븐 존슨, < 《뉴스위크》가 선정한 ‘인터넷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50인’에 포함된 과학 저술가. 브라운대학교에서 기호학을 전공하고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영문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활발한 저술 활동을 바탕으로 저널리즘스쿨계의 명문 컬럼비아대학교와 뉴욕대학교에서 객원교수로 활동했으며 그의 저서는 모두 온·오프라인 매체에서 다양한 상을 수상했다.>
이 책의 내용은?
인도양 바다위를 무굴제국의 배 한 척이 항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배 곁에 어느새 나타난 또 한 척의 배가 갑자기 포문을 열고 느닷없는 공격을 시작하였다. 보물선을 공격한 배는 팬시호였다. 무굴제국 배는 건스웨이호였다.
이게 이 책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문제적 장면이다.
팬시호는 왜 무굴 제국의 건스웨이호를 공격했으며, 그 공격의 여파는 무엇인가?
저자는 이 공격을 세계사의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간주, 그 과정과 결과를 치밀하게 살펴보고 있다.
이 책의 줄거리를 이해하기 위하여는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영국인 제임스 후블론은 ‘스페인 원정해운’이란 사업을 계획하고 선단을 꾸린다.
기함인 찰스 2세호를 비롯하여, 제임스호 도브호, 세븐스호, 이렇게 4척의 배가 꾸려진다.
이중 기함인 찰스 2세호는 46문의 대포를 장착한 전함이었다. (85쪽)
후불론이 돈을 들여 그런 기함을 건조한 이유는 스페인 해안이나 서인도제도에서 있을지도 모르는 공격으로부터 선단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86쪽)
기함(旗艦) : 함대의 군함 가운데 지휘관이 타고 있는 배. 대개 지휘관의 지위를 상징하는 기가 달려 있다.
1693년 8월 네 척의 배는 닻을 올리고 템스강하구를 떠나 드넓은 바다로 항해를 나선다. (87쪽)
네 척의 배에는 모두 약 200명의 선원이 타고 있었는데
그 중 중요한 배와 인물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도브호 : 선장 존 나이트, 이등 항해사 윌리엄 댐피어
찰스 2세호 : 선장 존 스트롱 (사망후 교제, 찰스 깁슨)
일등 항해사 헨리 에브리, 이등 항해사 조지프 그라베트, 데이비드 크리그,
핸리 애덤스
제임스호 : 선장 험프리스, 일등 항해사 토머스 드루이트,
런던을 출발한 선단은 스페인의 아코루나 항구에 도착했다. (100쪽)
선단은 거기에서 1693년 겨울부터 1694년 5월까지 머물렀는데, 1694년 5월 7일, 사건이 일어난다.
찰스 2세호의 일등 항해사 헨리 에브리가 반란을 일으켜, 배를 장악해버린 것이다. (117쪽)
배를 장악한 헨리 에브리는 항해를 하면서 영국배와 프랑스 배를 공격하여 세를 확장한 다음에 무굴제국의 건스웨이호를 약탈하기 위한 항해를 계속한다.
그래서 이 책은 그 한명의 해적 헨리 에브리를 둘러싼 이야기다.
이제 가해자를 소개했으니, 피해자인 무굴제국 황제의 건스웨이호를 살펴보자.
건스웨이호는 무굴 제국의 배로, 무슬림이 홍해 동쪽의 아시르 산맥 기슭에 위치한 성지들을 순례하는 연례행사, 즉 하즈(haji)를 맞아 황제의 직계 가족과 고위 관리들을 메카까지 실어나르는 것이 목적인 배였다. (171쪽)
그날 문제의 항해에서는, 선상에는 수십 명의 여성이 있었고, 그들중 다수가 아우랑제브 왕실의 가족이었다. (191쪽)
그 배에는 무굴제국의 위용을 자랑하는 온갖 호화로운 재물 또한 싣고 있었다. 이는 바깓 세계를 향한 선언으로 ‘세계 정복자’의 재산 규모를 널리 알리려는 목적도 있었다. (175쪽)
그래서 그 배에는 80문의 대포와 400명의 군인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그런 배가 그만 헨리 에브리의 표적이 되어 공격당한 것이다.
그래서 모든 보물을 약탈당하고 선상의 모든 여인들 또한 모진 욕을 당하고 만다.
이런 사건이 벌어지자, 무굴제국과 영국이 발칵 뒤집힌다.
이 사건이 세계역사에 끼친 영향
결과를 미리 말하자면, 해적 일당은 해적선 선장 헨리 에브리를 제외한 주동자들이 체포되어 교수형을 당한다.
그것 이외에 이 사건이 세계 역사에 미친 영향을 몇 가지로 살펴볼 수 있는데
그 첫째는 동인도회사가 해적과 한 패라는 의심을 받게 되어, 해적을 어떻게든 조치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당시 인도에 진출해서 사업을 진행중이던 동인도회사가 해적을 묵인 또는 한 패라는 오해를 받게 되어, 영국 정부는 해적에 대해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238쪽)
그렇게 곤경에 처하게 된 동인도 회사는 이것을 기화로 오히려 영국 선박이 무슬림 보물선들이 메카로 떠날 때 그들을 보호하고, 바다를 해적으로부터 구해내는 역할을 위임받게 된다. (279쪽)
그런 과정을 거쳐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법을 집행하는 권한까지 부여받은 셈이 되어, 결국은 인도를 영국령으로 하는 데 있어 수훈 갑의 기관이 된다.
이제 해적은 인류 모두의 적으로 간주되게 되었다. (292쪽)
그전까지는 예컨대 영국의 사략선 같은 경우, 나라에서 다른 나라 배에 대한 약탈을 허용하는 식으로 해적질을 했었는데 이제 그런 관행은 허용되지 않게 되었다.
이 책의 또다른 특징
이 책은 독자들의 흥미를 끌게끔 그 서술에 있어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찰스 2세호, 즉 해적선이 되어 팬시호가 된 배는 영국의 배였다. 그리고 그 배와 상대방 무굴 제국의 건스웨이호를 사건의 현장에서 서로 만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마치 다큐멘터리 식으로 하나씩 하나씩 서술해나간다.
한 배는 영국에서 선단이 꾸려지는 것부터, 당시의 상황, 해적선이 당시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등등, 관련 사항을 차근차근 보여준다. 그리고 사건의 장본인인 헨리 에브리를 주인공으로 소개한다.
또 다른 편에서는 무굴제국의 역사로부터, 영국이 무역 통로를 열기 위하여 접근하는 과정을 무굴 제국의 왕실 상황과 맞물려 서술해 나간다. 이곳의 주인공은 황제인 아우랑제브.
1650년대 말을 두 화면으로 본다고 상상해보자. 한 아이는 잉글랜드 웨스트컨트리의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고, 8,000킬로미터가 떨어진 곳에서는 한 왕조의 새로운 계승자가 무굴제국의 황제가 된다. 지리와 문화, 계급, 종교와 언어가 완전히 달라서, 이들보다 공통점이 적은 두 사람을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다. 그러나 당시에는 전혀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일련의 사건들로 말미암아 아우랑제브와 헨리 에브리는 폭력적 충돌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61쪽)
그렇게 차근차근 한 쪽, 또 다른 한 쪽을 교차해가면서 서술해 가다가, 드디어 두 배는 만나게 되어 사건이 터지게 되는데, 이 장면에 저자는 초점을 맞춰, 역사의 흐름을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다시, 이 책은?
영국의 동인도 회사가 어떻게 인도에 진출하고, 야금야금 그 세력을 넓혀가 결국은 인도를 식민지화하기까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 이면의 역사를 해적인 헨리 에브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있음 직하지 않은 충돌은 개인의 삶을 훌쩍 뛰어넘는 엄청난 결과로 이어졌다. 1650년대 말에 두 화면으로 에브리의 탄생과 아우랑제브의 즉위를 모두 지켜본 사람이 있었더라도, 둘의 충돌 이후로 인도에서 이슬람 시대가 붕괴하고, 대영제국군이 들어서서 두 세기 이상 인도 아대륙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국의 인도 점령은 근대를 규정하는 사실이기 때문에 다른 연대표를 상상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헨리 에브리의 삶이 다른 식으로 전개되었더라면, 영국의 인도 점령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61쪽)
그래서 별 관심 없었던 인도의 역사,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무굴 제국의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서, 영국의 제국주의 침략의 한 면을 살펴보게 되었다.
역사라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해적질을 하던 한 명이 결국은 인도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도화선을 건드린 격이다.
영국은 해적 한 명을 잡았고, 그걸 기화로 하여 인도를 수중에 넣었다.
영국과 인도의 관련되는 역사를 거시적으로 읽어본, 흥미진진한 책이다.
그래서 역사를 보는 눈도, 길러준다. 뜨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