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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런 벽지
샬럿 퍼킨스 길먼 지음 / 내로라 / 2021년 4월
평점 :
영한 대역 『누런 벽지』
이 책은?
이 책 『누런 벽지』는 소설이다. 일기체 자전적 소설이다.
(단, 벽지에 관련된 부분은 소설을 위한 '첨가제'라고 함.)
저자는 샬롯 퍼킨스 길먼, <미국의 페미니스트, 비평가, 사회개혁가, 연설가, 시인.
1860년 7월 3일 미국 코네티컷 주의 하트퍼드에서 태어났다. 그의 생각은 페이비언 사회주의와 이후 페미니즘이라고 불리는 이념으로 발전하였다.>
저자 소개에 의하면, 저자는 이 작품으로 남성 중심적인 미국 사회에서의 억압된 여성의 삶을 드러내면서 여성주의 작가로 잘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의미있는 작품이다.
이 책의 내용은?
이 작품은 저자의 삶과 비추어보면서 읽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에 소개된 저자의 삶, 특히 결혼생활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자의 삶, 특히 결혼과 이혼을 중심으로
1884년 화가 찰스 월터 스텟슨과 결혼.
1년도 되지 않아 딸 캐서린을 낳았다.
가벼운 우울 증상이 출산 이후 심해진다.
이는 1887년에 자신의 일기에 ‘정신병이 있는 것 같다’고 쓸 정도였다.
저명한 의사 미첼 박사를 찾아갔으나, 신체적으로는 아무런 이상도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순종적인 아내 역할로 돌아오라며 휴식을 취하며 모든 지적 활동을 금지하도록 처방.
1888년 남편과 별거, 딸과 함께 친구집으로 감.
떨어져 사는 동안 우울증 증세가 호전되는 것을 확인한 후, 1894년 법적으로 이혼.
저자의 병력과 관련하여
저자는 <누런 벽지를 쓴 이유>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병에 대하여 밝히고 있다.
수년간 저는 우울증과 그 이상에 이르는 심각한 신경쇠약을 앓았습니다
3년 정도 증상이 지속되던 즈음, 저는 굳은 신앙심과 희미한 희망을 붙들고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신경질환 전문가를 찾았습니다.
신체는 건강하였기에 시술에 대한 반응은 곧장 나타났습니다.
이에 그분은 제게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집으로 돌아가 “최대한 가정적인 삶”을 살라고 조언하였고 “두뇌 활동을 하루 최대 두 시간으로 제한”해야 할 것이며 “살아있는 한 절대로 펜이나 붓이나 연필 따위는 잡지도 말 것”을 처방하였습니다.
그게 1887년도의 일입니다. (15쪽)
여기 재미있는 표현이 나온다.
“살아있는 한 절대로 펜이나 붓이나 연필 따위는 잡지도 말 것”
‘펜’과 ‘연필’은 알겠는데, 왜 ‘붓’이 나올까?
우리야 붓은 이해가 되는 도구이지만, 미국인이 왜 붓을?
해서 원문을 찾아보니, 이렇다.
“never to touch pen, brush or pencil again as long as I lived.” (14쪽)
미국에서 붓(brush)는 어떤 용도로 쓰이는 필기구인가?
우리야 ‘붓’하면 당연히 서예 붓글씨가 떠오르지만.
어쨌든, 저자는 붓조차 잡지 말하는 의사의 조언은 무시해버리고, 일을 다시 시작해서 결국은 회복하게 되었고, 그렇게 파멸의 문턱에서 탈출한 것을 기뻐하며 이 작품을 썼다는 것이다. (17쪽)
작품 속으로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이 작품을 읽어보면 저자의 삶과 작품에서 오버랩되는 부분이 발견된다.
먼저 등장인물을 살펴보자. 단촐한 등장인물. 젊은 부부가 주인공이다. 화자인 부인과 남편 존이다.
존은 의사다. <권위있는 의사인...>(27쪽)
존과 그 아내인 젊은 부부는 아내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시골 마을 외딴 대저택에서 여름을 나기로 한다. 부인에게 휴식을 처방으로 삼아, 시골에서 지내기로 한 것이다.
아내의 중상과 처방은?
일시적인 신경쇠약, 경미한 히스테리 증상을 보인다.
권위있는 의사인 남편이 친구들에게 확신하기를, 아내는 그저 일시적인 신경쇠약과
경미한 히스테리 증상을 보일 뿐이라는데, (27쪽)
처방은?
몸보신, 여행, 신선한 공기, 운동, 그리고 완전히 건강해질 때까지 모든 ‘일’을 절대 금지. (27쪽)
이 부분은 저자 소개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실제 상황과 같다.
신경쇠약에 걸린 것, 그리고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처방을 받은 것 등이 같다.
그런 진단과 처방을 받은 아내, 심정은 어떠하며 반응은 어떨까?
내 생각에, 그 처방은 틀렸어.
내 생각에, 약간의 흥분감과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적당한 정도의 일은 오히려 내게 좋을 것 같아. (27쪽)
그러나 아내는 상황을 바꿀 방법이 없다.
그저 소극적으로 남편 몰래 글을 쓰면서, 나름 저항을 한다.
그런데 여기 문제가 있다. 방안의 벽지다.
대체 벽지가 무슨 문제일까?
벽지, 노란색 벽지다. 아니, 누런 색이다.
yellow를 그냥 노란색이라 하지 않고 누런색으로 번역했다.
누런색으로 번역한 우리말 번역이 더 절실하다.
화자인 부인이 벽지를 처음 본 순간을 복기해보자.
집 꼭대기에 있는 육아실을 부부 침실로 사용한다. (33쪽)
방은 한 층 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크다.
사방에 창문이 있어서 통풍이 잘 되고, 언제나 따스한 햇볕과 신선한 공기로 가득하다.
창문은 쇠사슬로 막혀있고, 벽에는 쇠사슬 고리 같은 것이 달려있다.
벽지는 침대 머리맡에서부터 손이 닿는 아래 부분의 벽지까지 뜯어져 있고, 맞은 편 아래쪽에도 크게 뜯어져 있다. 흉하다.
제멋대로 뻗어나가는 현란한 무늬다. (35쪽)
색깔은?
혐오스럽고 역겹기까지 하다. 아주 오랫동안 햇볕을 받아 변색된 것 같은, 들끓는 불결한 누런색이다.
전반적으로는 칙칙한 색인데, 군데군데 폭력적일 만큼 선명한 오렌지색이 섞여 있고, 나머지 부분은 메케한 유황을 떠오르게 한다. (37쪽)
여기, 메케한 유황을 떠올리게 한다는 말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 나중에 냄새도 맡게 된다. (87쪽)
대체 그 벽지가 무슨 문제라는 것인가?
“벽지 무늬에는 반복되는 부분이 마치 눈동자 같아. 징그럽게 뒤집힌 둥글넓적한 눈이 모가지가 부러진 것처럼 축 늘어진 채로 나를 노려봐.
끊임없이 계속되는 그 무례한 눈빛에 나는 몹시 화가 나. 맹랑하게 부릅뜬 눈은 온 천지에 있어. 위로, 아래로, 사방으로, 배를 바닥에 바짝 붙이고 기어 다녀.
그 선을 따라 위로 아래로 움직이는 것야,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보다 약간 높이 있는 상태로 말이야”(47쪽)
그야말로 창살 없는 감옥이다.
그 안에서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아니 그 어떤 것도 해서는 안 되는 상황에서 절망으로 가라앉는 여인의 모습이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벽지의 무늬는 주인공의 마음속에서 마구 마구 돌아다니면서 제멋대로 형체를 바꿔 나타나, 괴롭히는 것이다. 바로 그게 신경 쓸 데 없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신경성 질환이 된다.
그런데도 남편인 존은 자기 생각대로만 아내을 움직이려 한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그가 있을 때라도 스스로를 자제하려고 노력하는데, 그게 너무 피곤한 거야. (31쪽)
하루 종일, 매 시간 내가 할 일을 처방해주지. 이토록 세심하게 돌봐주는데 은혜를 아는 사람이라면 응당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할 거야.
이곳에 온 것은 온전히 나를 위해서라고 했어, 그러니 신선한 공기를 충분히 마시고 완벽하게 휴식해야 한다고 그가 말했어. (33쪽)
내가 얼마나 힘든지 존은 절대 모를거야. 내가 힘들어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확신하고, 그 사실에 흡족해하는 사람이니까 .(39쪽)
여기서 누런 벽지를 첨가한 것은, 신경쇠약에 걸린 사람에게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할 때 어떤 일이 생기는가를 말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장치다.
그렇게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하면, 오히려 그게 독이 되어서, 그런 황당한 일을 겪게 된다.
그러니, 결국 .......
다시, 이 책은?
그녀는 탈출한다.
“드디어 탈출했어, 당신과 제니는 막으려고 했지! 내가 벽지를 거의 다 뜯어냈으니 다시 나를 가둘 수 없을 것이야.” (115쪽)
탈출하고, 그녀는 “전문가의 조언을 바람에 실려 날려 보낸 후 일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일, 그것은 기쁨이고 성장이며 봉사였습니다..... 결국, 저는 일을 통해서 힘을 어느 정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라고 외친다.
이 소설은 그래서 누런 벽지처럼 기괴한 모습으로 저자를 속박한 굴레를 벗어난 탈출기이다.
탈출 선언이고, 살아가는 기쁨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족 , 영한대역이라 영어도 같이 공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