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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명의 유산
장웨이 지음, 조성환 옮김 / 파람북 / 2021년 3월
평점 :
지금도 기려야 할 『도연명의 유산』
이 책은?
이 책 『도연명의 유산』은 저자인 장웨이가 만송포서원에서 도연명의 삶과 작품을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기록한 강연 원고를 다듬어, 책으로 펴낸 것이다.
저자는 장웨이, <한국 독자에게 그다지 알려지지 않는 작가이지만,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하는 중국의 대표적인 문인으로 손꼽히는 작가로, 소설, 시, 평론. 시평 등 다방면의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원래 이 책을 읽을 때에는, ‘도연명 평전’ 정도로 생각하고 시작했다.
그런데 내용은 평전은 아니고, 도연명이 남기고 간 유산을 핵심 키워드를 뽑아서 살펴보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도연명이 거니는 숲에서 그저 자유롭게 그의 시구를 들으며, 그의 배경 설명 또는 시 구절 중 키워드를 통해 그의 생각(때로는 저자의 생각)과 그의 시대를 읽어가는 기분으로 읽으면 될 것이다.
읽어가면서 아쉬운 점이 자꾸만 나타나는데, 그건 저자가 본격적으로 말하기 전에 역자나 편집자가 도연명의 삶과 작품세계를 소개해주면 좋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책날개와 ‘옮긴이의 글’에 소개된 부분만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해서 책을 읽다가 도연명의 생애에 대한 사전지식이 딸려, 글 소화하기에 힘겨운 부분이 많았다는 점, 밝혀둔다.
역자가 밝힌 이책의 독법(讀法)
<이 책은 모두 7강으로 구성되어 있고 저자가 뽑은 키워드는 무려 127개 항목에 달한다. 번득이는 작가의 영감, 상상력과 추리력을 발휘하여 다양하고도 신선한 도연명 독법(讀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각각의 키워드는 하나의 잣대로 꿰어진 것이 아니기에 독자들은 어느 페이지를 펼쳐 읽더라도 무방하다.>(11쪽)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 책은 도연명 평전이 아니기에, 의와 같은 독법이 가능하다.
그러니 키워드를 먼저 충분히 생각한 다음에 저자가 그 키워드를 가지고 도연명의 어떤 부분을 드러내 보이는지를 감안하면서 읽으면, 도연명을 훨씬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역자는 그 많은 키워드 중에서 ‘정글의 법칙’과 ‘버티기’를 가장 인상깊게 읽었다고 한다. (11쪽)
그런데 실상 ‘정글의 법칙’은 도연명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필자- 이 책의 저자 장웨이 - 는 도연명이 살았던 시대를 무시무시한 정글의 법칙이 통용되는 시대로 간주한다. 적자생존의 환경에서 살아남자면 육체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버터내야 한다. 이러한 키워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에도 적용된다. (12쪽)
역자의 말이다. 여기서 ‘육체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라는 말 중 하나를 ‘정신적으로’라고 바꾸는 게 옳을 듯하다. 어쨌든 역자는 이 책에서 키워드 둘을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있는데, 그 키워드 둘은 도연명을 이해하는 가장 기초적인 개념이 될 것이다.
위진의 정글에서
연표를 찾아보니, 도연명(陶淵明, 365년 ~ 427년)은 중국 동진 후기에서 남조 송대 초기까지 살았던 전원시인(田園詩人)으로 나온다.
동진은 어떤 나라인가? 그 시대는?
위진 남북조 시대(魏晉南北朝時代, 220년 ~ 589년)는 중국의 역사에서 위진 시대와 남북조 시대를 통틀어 일컫는 단어이다. 위진 시대(魏晉時代, 220년 ~ 420년)는 삼국 시대의 위나라로부터 서진을 거쳐 동진에 이르기까지의 약 2백년 간의 시기이다. 남북조 시대(南北朝時代, 420년 ~ 589년)는 한족이 세운 남조와 한족을 장강 이남으로 밀어낸 유목민족이 세운 북조가 대립하다가 수나라에 의해 통일될 때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
그러니 도연명은 위진시대에서도 서진이 망한 후에 세워진 동진이란 나라에서 태어나, 위진시대의 마지막을 지켜본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시기에 살았으니, 그가 살던 세상은 당연히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시대였고, 저자는 이를 독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정글의 법칙이 통하던 시대’라 이름한 것이다.
그런 정글의 법칙이 통하던 시대, 도연명을 어떤 삶을 살았을까?
역자가 거론한 또 하나의 키워드, ‘버티기’가 여기에 해당이 된다.
도연명은 바로 온갖 고통과 가난의 궁지와 위험 지대 속에서 ‘버티는’ 사람이었다.
이 때 릴케의 명언이 등장한다. 저자가 발견하여 제시한 릴케의 잠언이다.
사실 말할 수 있는 승리란 없으며, 버팀이 모든 것을 의미한다. (97쪽)
도연명은 굶어 죽을 수 있었고 곤궁하여 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사상과 신념, 정신은 도리어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시종 ‘버티는’ 영혼이었다. (98쪽)
심지어 굶어죽을 수도 있었다는 그의 삶을 그는 버텨냈다.
굶어죽을 수도 있었다고? 설마?
그래서 우리는 도연명의 삶, 생활을 조금 더 깊숙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조상이 높은 관리로 나간 적이 있고, 그 자신도 여러번 관계로 진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불우한 고난을 온통 겪고 괴롭힘을 극도로 인내하며 살아나갔다. (38쪽)
그는 몇 번 관직에 들어갔다가 매번 사직했으며, 최후에는 상부에서 몇 번 불렀으나 대답하지 않고 곧장 전원에 머물렀다. (45쪽)
사료에 기록된 도연명은 대부분 고독하고 곤궁한 시간을 보냈다. 부인은 일찍 죽었고 몇 명의 아이를 양육했다. 부유한 친구들은 많지 않았고 때로는 갈 곳조차 없었다. 집이 불탄 뒤 온 가족이 배 위에서 살지 않을 수 없었던 때도 있었다. 언제나 제철에 맞는 옷도 입지 못했고 밥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61쪽)
이런 상황을 시로 읊은 것도 있다.
내가 사람으로 태어나면서부터
가난한 운명을 만나
밥 소쿠리와 표주박은 자주 비고
거친 베옷을 겨울에도 입었다. (나의 제문, 自祭文) (61쪽)
이러한 상황을 버텨서 살아남은 사람이 도연명이다.
그래서 도연명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정글의 법칙’과 ‘버티기’를 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몸부림 속에서 빛나는 시
일부 사람은 떠나고 도피하는 가운데 더욱이 내면 세계의 몸부림과 반항이 심해졌다. 그 과정에서 얻은 정신적 성과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보는 그러한 사상과 예술이다. (33쪽)
그런데, 도연명의 실제는?
또한 그의 진정한 모습을 보려면, 그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겹의 덮개를 걷어내야 한다.
원래 그는 단순한 반항자가 아니었고, 고궁수절(固窮守節)하지도 않았다. 그는 결코 사회에서 도덕적인 우세를 차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재주가 세상에서 으뜸가는 시인도 아니었다. (439쪽)
그래서 흔히 도연명을 ‘은사(隱士)’라 부르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도연명은 ‘은거’하기 전에 지위도 없고 명성도 없었으며, ‘은거’한 뒤에도 상당히 곤궁했다. 따라서 통상적인 의미의 ‘은사’라고 볼 수는 없다. 그를 은사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후대 사람들이 그의 시명(詩名)에 의거하여 붙인 것이다.(62쪽)
후세에 그를 은사라 부를 정도로 그의 시는 점차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그의 시가 재평가 받기 시작하여 그의 명성이 올라가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이 책은?
책을 다 읽으니, 이 말이 다시 떠오른다.
필자- 이 책의 저자 장웨이 - 는 도연명이 살았던 시대를 무시무시한 정글의 법칙이 통용되는 시대로 간주한다. 적자생존의 환경에서 살아남자면 육체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버터내야 한다. 이러한 키워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에도 적용된다. (12쪽)
그를 분석하는 키워드는 지금도 적용된다.
저자가 도연명을 알기 위하여 뽑아낸 키워드, 각각의 개념들은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하다. 아니, 이 시대에도 필요하다.
세상은 지금도 ‘정글의 법칙’이 횡행하는 시대가 아닌가, 그래서 그런 시대를 ‘버텨낸’ 시인 도연명은 지금도 훌륭한 역사적 스승이 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