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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박영서 지음 / 들녘 / 2021년 4월
평점 :
역사 드라마보다 재밌는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이 책은?
이 책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은 조선 역사를 선비들의 일기를 통해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박영서, <1990년생이며 충주의 작은 사찰에서 살고 있다. 금강대학교에서 불교학을 배우면서, 한편으로는 철학 플랫폼 ‘철학이야기’를 도반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글을 쓴다는 핑계로 골방에서 뒹굴뒹굴하며 보내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에 대하여 흥미가 생겨, 자세히 그 이력을 살펴보았다.
<무언가에 완연히 몰입하는 시간만큼 행복해지는 시간이 없다. 역사는 저를 행복하게 하는 소중한 우물 중 하나이다. 물 흐르듯 유려하거나 논리적으로 탄탄한 글을 쓰지는 못한다.>는 소개글이 보인다.
몰입, 저자가 역사에 몰입해준 덕분에, 이런 재미나는 역사책을 읽을 수 있었다. 이게 다 저자의 몰입 덕분이다.
특히나 역사의 시시콜콜한 부분에까지 신경을 쓰는 것까지, 덕분이다.
우리말 ‘시시콜콜하다’는 뜻이 두 가지인데, 다음과 같다.
1. 형용사 마음씨나 하는 짓이 좀스럽고 인색하다.
2. 형용사 자질구레한 것까지 낱낱이 따지거나 다루는 데가 있다.
그런 의미를 지닌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라는 제목을 붙인 이 책, 당연히 시시콜콜한 사연들이 들어있다. 그런 일기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 시시콜콜하다고만 할 수 없다. 아니 그들에게는 시시콜콜할지 모르겠지만 후세에 읽어보는 우리로서는 결코 그게 아니다.
시시콜콜해서 오히려 가치가 있다. 건성 건성으로 적어 놓은게 아니라서, 자료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을 까발려 놓은 시시콜콜함, 그래서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다.
이런 글을 과연 시시콜콜하다고만 할 수 있을까?
경상도 관찰사 민성징은 그야말로 잔혹한 인간이다. 그가 가는 곳마다 형장이 펼쳐져 피가 낭자했고, 사람들이 명령을 수행하기 어렵거나 말거나 전혀 신경쓰지 않고 밀어붙이기만 했다.영천의 지방 공무원들은 모두 곤장을 맞고, 혹자는 정강이가 부러졌다. (88쪽)
조선 관료, 김령이 민성징(1582-1647)을 탐관오리로 기록해 놓은 일기의 한 토막이다. (88쪽)
정말 시시콜콜해서, 바로 우리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인간이 모질면, 사람을 때려서 정강이가 부러지기 까지 때린단 말인가?
김령의 일기가 없었더라면, 이런 일은 그냥 묻힐 뻔했던 것이다.
일기는 사연을 담고, 역사를 보여준다.
그런 일기들, 참으로 다양한 사연들이 담겨있다.
저자는 그런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저자가 요약한 일기의 내용, 그 타이틀로 음미해보자.
- 나는 네가 과거 시험장에서 한 일을 알고 있다
- 신입 사원들의 관직 생활 분투기
- 이 천하에 둘도 없는 탐관오리 놈아!
- 아니, 이게 무슨 소리요. 내가 암행어사라니!
- 나의 억울함을 일기로 남기리라
- 식구인지 웬수인지 알 수가 없다
- 예쁜 딸 단아야, 아빠를 두고 어디 가니
- 그 땅에 말뚝을 박아 찜해놓거라
- 이씨 양반은 가오리고, 류씨 양반은 문어라니까
각 장의 타이틀인데, 이것만 읽어도 무슨 사연들이 담겨있는지, 감이 오지 않는가?
역사는 궁중에서 임금과 신화의 대화로만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일기로도 기록되는 것이다.
일기와 역사를 관련시키다보니 떠오르는데, 바로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도 바로 그런 기록이 아니겠는가?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또한 일기엔 당연히 당대의 생활상이 보인다.
11월 23일, 아침에 온이가 글을 전혀 해석하지 못한 것에 울화통이 터져서 긴 막대기로 후려팼더니, 막대기가 부러졌다. (193쪽)
이문건이 아들을 팬 이야기다. 위에 인용한 김령의 일기에서는 곤장을 때려서 사람 정강이를 부러뜨린 수령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 아버지는 아들을 때리다가 막대기가 부러진다.
막대기가 부실한 건지 아들이 부실한 건지, 하여튼 막대기 부러뜨린 이야기까지 하는 것을 보니 정말 시시콜콜한 건 확실하다.
5일 아내가 밤에 여행길 숙소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물었다.
나는 남편답게, 한 점 숨김없이 서실대로 기생이 옆에 있었다, 라고 대답했는데, 갑자기 아내는 미친 듯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아침이 되기 무섭게 나의 베개와 이불을 모두 칼로 잘라 불에 태워버렸다. (200쪽)
이런 것까지 다 기록하는 저 투철한 붓쟁이 정신이여!
아내에게도 시시콜콜하게 다 자백을 하더니, 또 일기에도 세세하게 고해성사라도 하는 듯 기록을 하고 있으니 정말 못 말리는 선비님이시다.
베개와 이불을 불태웠으니, 그날 밤은 어떻게 주무셨을까, 그것이 알고 싶다!
그 뒤, 정말 태연하게 이렇게 기록을 잇고 있다.
두 끼나 밥을 먹지 않으면서 온종일 내 욕만 해서 너무 미웠다. (200쪽)
이 정도면 정말 욕먹어도 싸지 않은가? 온종일, 아니 1박 2일 정도로.
그 뒤, 이렇게 이어진다.
6일, 오늘은 아내의 화가 조금 풀린 것 같다. (200쪽)
29일, 아내의 화가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 (201쪽)
그걸로 종결이 됐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 다음에도 또 또 벌어진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궁금한 분은 이 책 202쪽 이하를 참조하시라.
하여튼 저자가 시시콜콜하게 시시콜콜한 일기들을 소개해준 덕분에 조선 시대의 역사와 생활상을 잘 알 수 있었다. 여기 다 소개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재미난 이야기들이 숱하다.
새롭게 알게 된 것들
권마성 (勸馬聲)
사극을 보면 “물렀거라! 사또님 행차시다~” 라며 소리치는 아전이 등장한다. (80쪽)
사전을 찾아보니, 이렇게 설명한다.
이렇게 말이나 가마가 지나갈 때 위세를 더하기 위하여 그 앞에서 하졸들이 목청을 길게 빼어 부르는 소리. 임금이 나들이할 때에는 사복(司僕) 하인이, 그 밖의 경우에는 역졸이 불렀다.
다시, 이 책은?
여기 소개된 것들은 역사 드라마보다 재밌다.
시시콜콜한 그들의 이야기가 일기로 남아, 그게 쌓여서 우리가 읽는 역사가 되었다.
그런 일기들은 『조선왕조실록』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진짜 이야기들이다.
이 책은 그래서 역사책 몇 권의 값어치가 있는, 진짜 역사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