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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여행자
김수우 지음 / 호밀밭 / 2021년 4월
평점 :
어리석은 여행자
이 책은?
이 책 『어리석은 여행자』는 산문집이다.
저자는 김수우,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1995년 『시와시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늦깎이로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고,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서아프리카 사하라와 스페인 카나리아섬에서 십여 년 머무르기도 했으며, 틈틈이 여행길에 오르는 떠돌이별로 사진을 좋아한다. 이십여 년 만에 귀향, 부산 원도심에 글쓰기 공동체 <백년어서원>을 열고 너그러운 사람들과 퐁당퐁당, 공존을 공부 중이다.>
이 책의 내용은?
수필집인줄 알았는데, 산문집이다.‘
수필은 대개 산문이지만, 산문집이라고 밝힌다는 것은 글이 에세이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글이 목적이 있다. 주장도 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에세이와는 다르다. 결이 다르다.
해서 읽을 때, 정색을 하고 읽어야 한다. 저자의 글에 경청하는 자세를 지녀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어리석음을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우선 어리석음을 몇 가지 방향에서 파고 들어간다.
1부 어리석음의 이유: 영혼과 영원을 위하여
2부 어리석음의 방법론: 거닐며 공부하기
3부 어리석음의 숨은 능력: 상상력과 감수성
그러므로 저자에게 어리석음은 도달해야 할 목적지이다.
가야할 길이기도 하다. 그 어리석음이란 곳에 도달하면 상상력과 감수성이 있다. 생긴다. 발견한다.
어리석음에 도달하는 방법은, 거닐며 공부하는 것이다.
그렇게 어리석어야 할 이유는 무얼까? 우리 영혼과 영원을 위하여, 이다.
그렇게 도달해야 할 어리석음, 그곳에 가보자.
저자가 말하는 어리석음이란 어디에 가는 것일까?
가장 먼저 생각해볼 것은 인문학이다.
인문학이란 결국 바보 정신을 배우는 학문이 아닐까. 바보들은 결과를 따지지 않는다. 손해를 보고도 손해라고 생각지 않는다. (15쪽)
이렇게 정의할 수 있는 게 인문학인데, 그게 바로 어리석음의 첫 번째 모습이다.
내가 공부해봐서 아는데, 인문학, 그거 돈 되는 것 아니다. 바보들이나 공부하는 것이다. 맞다. 바보들이 모여서 바보 정신을 배우는 게 인문학이다.
남들은 모여 부동산이니, 주식이니 돈벌이 할 궁리하고 앉아있는데, 그런 것 생각하지 않고 1층에선 철학 특강, 2층에선 상고사 강의를 그리고 3층에선 문학 토론을 하는 게 어찌 바보들이 하는 짓 같지 않은가? (84쪽)
저자가 그렇단다. 저자가 운영하는 ‘백년어서원’에서 동시에 환히 불 밝힐 때가 있단다.
그 3층 건물에서, 인문학을 공부한답시고 모여 불밝히는 그 시간, 그건 바보들의 합창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저자가 얼마나 떳떳한지 보라, 그걸 자랑스레 말하고 있지 않은가?
더해서 이런 말도 한다.
인문은 마이너스 정신이고, 이 마이너스는 곧 어리석음이라는 새로운 문이다. (84쪽)
그래서 나 또한 저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어리석음이란 문에 들어서게 된다.
저자는 요구한다.
인문은 촘촘히 공부하는 것(86쪽)이라고,
또한 인문은 응시의 능력이라 한다. (87쪽)
저자가 말한 인문은 촘촘히 공부하는 것, 이란 말에 밑줄 굵게 그었다.
촘촘하다. 그 말이 나를 가르친다. 지금껏 해온 공부를 반성하라 한다.
촘촘하게 공부해!
어설프게, 듬성듬성 책 읽고 어설프게 생각해 온 것들을 버리고, 촘촘하게 공부하라 한다.
그래서 응시, 또한 필요하다.
이런 문장들, 억수로 만난다. 나를 인문학의 자리로 인도하는 글, 굉장하다.
저자가 응시의 모범을 보여주는데, 한번 들어보자.
달팽이, 가끔 만나기는 하지만, 자세히 살펴본 적 없으니 당연히 응시해본 적이 없는 생물이다. 그런데 저자는 응시한다.
물결 모양으로 기어다니는 것도 그렇다. 그 튼튼한 근육 발은 지나간 자리마다 하얀 길을 만든다. (89쪽)
달팽이는 날카로운 면도날 위로 걸어갈 수 있다. 그 느림의 힘 때문이다. (91쪽)
면도날, 그 위로 뭐든 걸어간 것, 본적이 없는 나에겐 그야말로 신기한 일이고, 놀라운 응시다.
그런 저자의 응시에 포착된다는 것은 행운이다.
그 대상은 우리에게 인문학의 모습으로 다가오게 되고, 우리의 지평을 넓혀주니, 우리에게 행운이라는 말이다.
이런 글 읽으면서, 가슴에 손 얹고 반성하게 된다, 그러니 행운이다.
책을 만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
유용한 것들은 우리를 억압한다. 영어가 대화를 위한 것이면 자연스러운 생명감이 되지만, 입시나 취업의 도구가 되면 삶을 억압한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 지식과 정보로 만난다는 것은 불행이다. 책이 도구가 되면 오히려 억압이 된다.
어떤 필요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존재론적인 즐거움이 사라진다. 우리는 결코 도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137쪽)
다시, 이 책은?
그렇게 해서 어리석음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발견하면, 기뻐하자.
우리는 이제 어리석음의 능력을 받게 되는 ‘능력자’가 될 수 있으니.
그렇다고 능력자가 된다고, 세상에 이름 날리거나 출세하는 것과는 상관없으니, 이 또한 확실히 해두자. 저자는 미리 말했다. 인문학이란 결국 바보 정신을 배우는 학문이라고, (15쪽)
그래서 이 책 읽고나면, 마음에 한 줄기 즐거움이 휘몰아온다.
이게 책 읽는 기쁨이구나, 이제 어리석음에 도달한 것이구나.
다시 앞으로 돌아가보자
그래서 어리석음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틈을 찾아 스며든다. 틈새에 핀 꽃처럼 말이다. 우기엔 아가미로, 수년 수개월의 건기엔 폐로 숨을 쉬던 고생대 물고기 폐어처럼 철저히 자신의 밑바닥에 들어간다. 묵묵함과 겸허함. 세계와 자신의 존재 이유를 향한 끊임없는 성찰은 어리석음에서 나온다. (39쪽)
세계와 자신의 존재이유를 알게 된다면?
그러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어리석어져야 한다.
어리석어 지기를 배워야 한다.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
그래서 이 책 제목이 『어리석은 여행자』이다. 물론 목적지는 어리석음이라는 것,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어리석음이 주장되고 있다는 것, 선포되고 있다는 것, 그것만 아는 것도 복이다.
이 책을 읽은 자는, 그래서 복이 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