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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의 시간 - 결국 현명한 자는 누구였을까
안석호 지음 / CRETA(크레타) / 2021년 4월
평점 :
언젠가는 지나갈 『장벽의 시간』
이 책은?
이 책 『장벽의 시간』 은 20세기에 만들어진 다섯 개의 장벽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결국 현명한 자는 누구였을까>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저자는 안석호, <연세대학교 경법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클라호마대학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듀크대학교에서 1년 동안 방문학자로 연수했다. 세계일보를 거쳐 현재 TV조선 기자로 재직 중이다. 그동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카슈미르, 캅카스 등 주요 국제 분쟁 현장을 찾아다니며 르포를 작성했다.>
이 책의 내용은?
이 책에는 장벽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다음과 같은 다섯 개의 장벽이야기.
베를린 장벽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이의 분리장벽,
미국의 멕시코 국경 장벽,
한반도 비무장지대에 만들어진 철책과 장벽,
그리고 ‘보이지 않는 장벽’인 무역 장벽이다.
맨처음 살펴보는 베르린 장벽은 현재 사라졌지만 나머지 4개의 장벽은 목하 건재하다. 아니 더더욱 더 높게 쌓아지고 있는 중이다.
이들 장벽은 과연 누가 쌓았을까? 누가 쌓았고, 그 장벽 때문에 누가 고통을 받고 있는가, 하는 성찰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각각 장벽이 만들어지게 되는 계기와 그 후의 과정을 간단하게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사건 - 장벽 - 탈출 - 붕괴 -그 후
사건 - 장벽 - 탈출
사건 - 장벽 - 탈출 - 그 후
사건 - 장벽 - 그 후
‘사건’이란 항목에서 저자는 그 장벽이 세워지기까지의 역사를 훑어본다.
장벽이 어느날 갑자기 세워지는 게 아니라, 다 사연이 있는데, 그 사연을, 역사적 사연을 저자는 살펴보고 있다.
지금은 역사가 되어버린 베를린 장벽
예컨대, 베를린 장벽의 경우는, 사연이 길다.
2차 세계 전쟁이 독일의 패배로 막을 내린 다음에, 연합국 -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 이 독일에 진주하면서 일이 벌어지게 된다. 그 다음이 문제다.
4개의 나라가 자기 나라에 할당된 지역을 관리했으면 베를린 장벽은 없었을 것인데, 동독에 위치한 베를린의 관리를 두고 독일에 진주한 소련과 다른 나라의 속셈이 달랐던 게 도화선이 된다.
그렇게 해서 결국 베를린을 둘로 나누고, 그 다음에는 아예 장벽으로 갈라놓는다.
‘사건 - 장벽 - 탈출 - 붕괴 -그 후’
그렇게 장벽이 들어서자, 그 장벽을 넘어 탈출하려는 일이 생긴다. 그 탈출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희생된다. 탈출 과정에서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 다음 세월이 흘러, 베를린 장벽은 무너지고, 지금에 이르렀다.
그런 과정이 세세하게 그려지고 있다.
한반도 비무장지대에 만들어진 철책과 장벽.
지금은 다만 역사로만 남아있는 ‘베를린 봉쇄’니, ‘베를린 장벽’이니 하는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 않은 것은 우리나라에도 지금 장벽이 남아있는 까닭이다.
예전에는 삼팔선, 지금은 휴전선으로 한반도가 갈라져 있는데, 그 가운데를 막는 장벽이 서있는 것이다. 이름하여 DMZ.
그럼 위에 열거한 도식 중에서 우리나라의 장벽을 설명하는 도식은 어떤 것일까?
<사건 - 장벽 - 그 후> 이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장벽을 설명하는 ‘사건’은 1950년 6월 25일부터 시작된다.
그날 비가 갠 서울 하늘은 맑았단다. 일요일 아침 오전 10시 거리에 군용 지프가 다급하게 나타나, 장병들은 복귀하라고 방송을 하고 다녔다. 그로부터 전쟁의 화마가 나라를 휩쓸고, 결국은 허리가 동강나고 그 자리에 장벽을 쌓았다.
‘사건 - 장벽 - 그리고 탈출과 여러 곡절’이 있는 게 현재의 상황이다.
미국의 멕시코 국경 장벽,
미국과 멕시코는 어떤가?
전에 트럼프가 대통령이었던 시절에 뉴스에 자주 나오던 이야기가 있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모두 다 쌓아버리겠다는 호언장담....아니 협박?
그러나 이 책을 보니, 그게 그리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과 멕시코 경제는 서로에게 끌릴 수밖에 없는 여러 조건을 가지고 있다.
미국은 뛰어난 기술과 자본이 풍족하고 산업 기간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다양한 일자리와 노동 기회가 많은데다 구매력도 높은 매력적인 시장이다.
멕시코는 이런 미국과 지리적으로 가깝다. 천연자원이 많이 매장돼 있고 노동력이 풍부해, 임금은 미국의 10분의 1에서 20 분의 1 수준이다.
두 나라가 각이 장단점을 잘 보완해 협력한다면 모두가 득을 보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 기대했다
브리세로, 마킬라도라, 나프타로 이어지는 경제 협력은 이런 배경에서 이뤄졌다. (195쪽)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런 장밋빛 전망은 금세 사라지고, 멕시코는 모든 면에서 대미 종속화가 이루어지고, 이는 곧 멕시코에서 미국으로의 이주 행렬로 이어진다.
여기에서 불법이 개입되고, 많은 사람이 희생되는 일이 벌어진다.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는 사막도 있고 평지도 있고 또 강도 있다.
이런 곳을 어떻게 통과하느냐, 그게 불법 이주자들의 고민거리다. 이런 일도 있다.
짐승 열차가 지나는 곳은 밀입국자를 뜯어먹으려는 범죄자가 들끓는다. (……) 짐승 열차가 범죄조직과 카르텔이 장악한 구간을 통과할 때면 뇌물과 보호비를 내야 한다. 조직원들은 열차에 올라타 통행료를 받고 밀입국자들의 돈과 귀중품을 갈취하기도 한다. 돈이 없다고 버티면 여지없이 주먹이 날아들고, 부녀자는 성폭행당하기 일쑤다. 반항하거나 힘으로 맞서는 밀입국자는 그대로 열차 밖으로 떠밀어 버린다. 달리는 열차에서 떨어지면 바퀴에 팔다리가 끼어 중상을 입거나 그 자리에서 숨지기도 한다. 목숨이 붙어 있다 하더라도 반경 수십 킬로미터 내에 인적도 없는 사막지역에 떨어져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다. ((211쪽)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이의 분리장벽,
이 참참한 아이러니라니!
2004년 12월, 동예루살렘 장벽 건설현장에서 저자와 현지인 사이의 대화 한토막이다.
“저 인부들이 어디서 왔는지 아세요?”
생각지 않은 질문이었다. 이스라엘 분리장벽이니 당연히 이스라엘 노동자이겠지….
“이스라엘 사람이겠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에요. 지금 우리를 가두는 장벽을 쌓는 일을 우리 손으로 하는 거예요. 욕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쩌겠어요. 먹고 살아야 하는데…. 저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 사람들이에요.” (134쪽)
이런 사실도 있었다니!
미국 정부는 한국 대통령 이승만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 이승만이 북한 인민군의 공세에 밀려 임시 피란 수도인 부산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우선 그를 서울이나 다른 도시로 유인해낸 뒤 참모와 정부 요인들을 모두 체포하려는 것이었다. 서울과 의정부, 춘천, 원주 등에 미군을 포함한 병력도 배치할 작정이었다. 이승만을 감금한 뒤 군정을 실시한다는 아이젠하워 대통령 정부의 에버래디 계획(Plan Everready)이었다. (251쪽)
미국은 왜 이승만을 제거하려 했던 것일까.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 책 251~ 257쪽을 참조하시라.
다시, 이 책은?
저자가 이 책의 제목을 『장벽의 시간』으로 잡은 데는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니, 언젠가는 장벽이 무너지고, 지금의 베를린 장벽처럼, 다만 시멘트 조각이 기념품으로 팔리는 것처럼, 그런 시간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제목을 지었을 것이다.
지금은 비록 장벽의 시간이지만, 훗날에 그런 시간은 다만 추억거리로 남고, 우리의 장벽도 서울 어딘가 리어카에서 ‘ 이게 한때 우리나라를 갈라놓았던 장벽의 한 조각입니다’ 라며 팔리는 시간이 오기를 소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