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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 - '레벤스보른 프로젝트'가 지운 나의 뿌리를 찾아서
잉그리드 폰 울하펜.팀 테이트 지음, 강경이 옮김 / 휴머니스트 / 2021년 4월
평점 :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
이 책은?
이 책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는 히틀러 치하의 <‘레벤스보른 프로젝트’가 지운 나의 뿌리를 찾아서> 치열하게 살아온 ‘아이’의 이야기다.
1941년 생인 그 ‘아이’는 이제 80세가 되었다.
저자는 잉그리트 폰 욀하펜(Ingrid von Oelhafen.)
<독일 오스나브뤼크에 살며 물리치료사로 일했다. 20여 년간 레벤스보른의 실체와 그에 관련된 자신의 숨겨진 과거를 조사해왔다. 다른 레벤스보른 희생자들과 ‘레벤스푸렌(생명의 흔적)’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레벤스보른의 진실을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먼저 저자가 당한 일, 그 일의 주체인 ‘레벤스보른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홀로코스트는 이른바 열등 인종을 절멸한다는 발상입니다. 레벤스보른은 이 동전의 뒷면입니다. 온갖 수단을 동원해 아리아인 인종을 늘이겠다는 발상이지요. (219쪽)
아리아인 인종을 늘이겠다는 발상, 그것을 위하여 나치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나치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순수 아리안 혈통을 지키고 우수 인종을 길러 아리아인 국가를 건설하고자 ‘레벤스보른 프로젝트’를 실행한다.
레벤스보른(Lebensborn)은 ‘생명의 샘’을 뜻하는 것으로 ‘좋은 피’에 대한 나치의 광기에 가까운 집착을 수행하는 기관이었다. 그 기관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특히 이 책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방법’은 점령지 아이들에 대한 광범위한 납치 범죄로 이어졌다.
저자 욀하펜이 바로 이런 나치의 계획에 의해 납치된 ‘레벤스보른의 아이’였다.
또 다른 ‘나’가 있다.
독일인으로 알고 자라난 잉그리트, 어느날부터 부모의 행동에 의심을 품게 된다.
내가 친자식이라면 과연 어머니, 아버지가 저렇게 대할까?
그 의심은 결국 사실로 드러났다.
저자는 58세가 되던 해 1999년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친부모를 찾고 싶으십니까?” (81쪽)
독일 적십자 직원으로부터 온 전화, 그 때부터 뿌리를 찾기 위한 대여정이 시작된다.
그녀는 자기 이름이 잉그리크 폰 욀파펜이 아니라, 에리카 마트고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자기의 국적을 알아보려 백방으로 수소문한 결과, 유고슬라비아라는 것까지 알게 된다.
친부모 이름은 요한과 헬레나. 성은 마트고.
그런데 그 부모에게는 다른 자녀들도 있었다. 타나와 루드비그, 그리고 에리카, 즉 자신이었다.
그렇게 수소문 끝에 연락을 취해보니, 이게 웬일?
거기에는 에리카 마트고라는 인물이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내가 나를 찾아 헤매다가, 드디어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어 그곳을 찾아갔더니, 거기에는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이 나로 살고 있었다.
이 책의 저자 잉그리트 폰 욀파펜의 경우를 단적으로 표현하면 그렇다.
죽음의 현장에서 인생이 바뀌다.
그렇게 된 사연이 기구하다. 나치가 주민들을 모아 놓고 테러분자들을 선별하는 작업을 벌인다.
그날 (저자의 부모인) 요한과 헬레나는 아이 셋(타나와 루드비그, 그리고 에리카)을 데리고 학교 운동장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죽음과 삶의 갈림길이 펼쳐지고 있었다.
학교 교실에서 기다리던 가족중 에리카는 누구의 손에 이끌려 다른 곳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그녀를 제외한 가족은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밖에서 나는 총소리를 들었다. 몇 사람이 끌려가 죽는 소리였다.
다행이 그 가족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셋째 아이가 없어졌다고 호소하는 부모의 품에 다른 여자 아이가 맡겨진다.
에리카라는 인물이 두명이 되는 순간이었다.
원래의 에리카는 나치의 손에 의해 독일로 납치되어, 독일 아이로 자라난다.
그리고 다른 에리카는 에리카의 부모 손에 에리카라는 이름으로 유고슬라비아에서 자라난다.
그러니 만약 저자가 뿌리 찾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냥 그렇게 두명의 에리카는 각각 독일과 유고슬라비아에서 그저 그렇게 살고 있었을 것이다.
이게 모두가 나치의 ‘레벤스보른 프로젝트’로 인해 벌어진 사건이다.
저자의 뿌리찾기 과정에서
저자의 뿌리 찾기 과정을 기록한 이 책에서 몇가지 기록할만한 게 있다.
토마스 만에 대한 기록
뮌헨에 자리한 레벤스보른 본부는 추방된 반나치 활동가이자 작가였던 토마스 만의 소유였다, (143쪽)
나치는 레벤스보른 활동을 위하여 여러 곳에 시설을 마련했는데, 히틀러의 정적이나 부유한 유대인 가문으로부터 빼앗은 건물이나 저택을 이용했다. 그중에 토마스 만의 저택도 들어있었다는 것이다.
토마스 만의 연보를 찾아보니, 1914년에는 뮌헨 포싱어 가 1번지의 저택에 입주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후 나치가 정권을 잡자, 토마스 만은 국외로 망명을 떠났는데, 1933년 여행지였던 스위스에 계속 체류하고 나중에 취리히 근교의 퀴스나하트에 정착함으로써 독일 외 거주를 통한 사실상의 망명에 들어갔다고 되어있다. 1936년에는 히틀러 정권에 의해 독일 국적을 박탈당하고, 본 대학 명예 박사 학위도 박탈당했다. (『토니오 크뢰거 외』, 민음사, 546쪽)
그러니 1914년에 토마스 만이 거주를 시작했던 그 저택을 그의 망명후 나치가 압수한 것으로 보인다.
뿌리내림과 시몬 베유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는 1943년 <뿌리내림>이란 책을 썼는데, 저자가 활동한 단체 - 레벤스푸렌 - 은 다음과 같은 시몬 베유의 말을 정관 머리글에 인용하고 있다.
단연코 뿌리뽑힘은 인간 사회가 경험하는 가장 위험한 병폐다. 뿌리뽑힌 사람은 누구든 다른 사람의 뿌리를 뽑는다. 뿌리내린 사람은 다른 사람의 뿌리를 뽑지 않는다. 어쩌면 뿌리내림은 가장 중요하면서 간과되는 인간 영혼의 욕구이다. (207쪽)
저자는 그 책의 내용처럼, 뿌리를 찾고 뿌리와 이어지기를 소망하고 있었다. (226쪽)
드디어 찾아낸 ‘나’
나는 한때 내가 에리카 마트고라 불린 유고슬라비아 아이였다는 것을, 나치가 가족에게서 나를 훔쳤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262쪽)
나는 이제 내가 누구였는지, 그리고 누구인지 안다.
에리카 마트고는 유고슬라비아에서 훔쳐온 레벤스보른 아이였고, 레벤스보른의 광기 속으로 사라졌다. 잉그리트 폰 욀하펜은 독일 여자이고 여러 어린이를 돕고 위로한 물리치료사다.
나는 한때 유고슬라비아 출신 에리카 마트고 였고, 독일인 잉그리트 폰 욀하펜이었다. 둘 다 나였다. 그리고 이제 나는 잉그리크 마트고 폰 욀하펜이다. 그게 항상 나였다. (264쪽)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나는 과거를 이해할 뿐 아니라 용서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262쪽)
너 자신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을 위해 너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 마하트마 간디. (263쪽)
다시, 이 책은? - 정체성을 찾아서
저자는 정체성에 관하여 묻는다. 정체성에 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자기 찾기, 뿌리찾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정체성이 사람을 형성하는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추상적인 철학적 질문같지만 그렇지 않다. 나를 찾는 여정이 끝났을 때 내가 마주해야 했던 질문들이다. (257쪽)
그런 성찰 중 하나, 셰익스피어가 활용된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오필리아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지금의 우리는 알지만 우리가 무엇이 될지는 모른다.”(258쪽)
나는 내가 무엇이 될 수 있었을지 곱씹어보았다.
오필리아의 발언 살펴보았다. 『햄릿』의 4막 5장에 등장한다.
주님, 우린 지금의 우리는 알지만 어떻게 될진 몰라요. (민음사, 152쪽)
Lord, we know what we are, but know not what we may be.
이 말이 저자에게 적확하게 들어맞는 말이다.
저자가 독일인으로 살아가던 ‘지금’과 자기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된 ‘지금’은 다르다. 저자는 그걸 전혀 모르고 있다가, ‘지금’ 알게 된 것이다.
이 책, 자기를 찾아 긴여정을 끝낸 ‘아이’의 삶을 통해, ‘인류 역사’와 ‘한 인생’이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고 연결되어 있음을, 그래서 역사의 엄중함과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