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학이란 무엇인가 - 삶을 바꾸는 문학의 힘, 명작을 통해 답을 얻다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구와바라 다케오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1년 2월
평점 :
70년 된 새로운 책 - 『문학이란 무엇인가』
이 책은?
이 책 『문학이란 무엇인가』는 <삶을 바꾸는 문학의 힘, 명작을 통해 답을 얻다>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문학의 의미와 가치를 살펴보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구와바라 다케오 (桑原 武夫) (1904년~1988년)
<1928년 교토대학 문학부를 졸업하였으며, 프랑스 문학·문화 연구자이자 논평가이다. 인문과학 공동연구 구축의 선구적 지도자이자 독창적이고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로, 프랑스 문학 연구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깊은 학식과 탁월한 행동력으로 다방면의 연구자들과 교류했으며 사회적 문화 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이 책의 내용은?
이 책은 정말 의미있는 책이다. 문학이란 것에 대하여, 책을 통해서 독자들은 무엇을 얻는가, 또한 책을 쓰는 사람은 무엇을 하려고 쓰는가에 대한 통찰력을 기르게 해준다.
이 책에서 얻는 가장 큰 수확은 톨스토이의 장편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새롭게 보고, 다시 한번 읽게 된 것인데, 그 것을 말하기 전에 우선 책을 쓰는 작가와 책을 읽는 독자가 책을 통해 무엇을 주고 받는지 살펴본다.
흥미와 관심 interest
읽는 사람의 관심사에 따라 해당장면에서 얻는 효과의 강도가 달라진다. (193쪽)
뛰어난 문학 중에서 인생에 대해 강한 흥미나 관심을 느끼게 하지 않았던 작품이 과연 있었던가? (25쪽)
독자가 이처럼 강렬한 흥미나 관심을 느끼게 할 수 있는 까닭은 작가가 해당 제재에 대해 본인 스스로 강한 흥미나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5쪽)
뛰어난 문학작품은 작가가 특정 대상에 대해 자신만의 강렬한 흥미나 관심을 가졌을 때 비로소 세상에 나올 수 있다. (26쪽)
인생은 합리적으로 살아야 마땅하겠지만, 인생을 충만하고 더욱 바람직한 것으로 만들려면 이성과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 인생에는 감동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학이야말로 그런 것들을 양성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41쪽)
경험의 문제
뛰어난 문학과 통속 문학과의 차이
전자가 인생에서의 새로운 경험을 형성하는데 반하여 후자는 그것을 형성하지 않는다. (133쪽)
인간이 어떤 대상을 보거나 읽을 때는 축적된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206쪽)
문학을 만드는 것은 경험이다. (216쪽)
우리가 감동할 수 있으려면 해당 작품이 우리 입장에서 다시금 경험할 수 있는 대상이어야 한다. (문학의 명쾌함)
문학 작품이 우리의 흥미나 관심을 끌어내고 우리를 감동시키려면 작가 자신이 절실한 이해를 가지고 창작을 경험해야 하며(성실함 필요), 그 경험은 모방적이고 타성적인 영위가 아니라 고뇌에 찬 진정한 새로운 경험이어야 한다. (참신함 필요) (86쪽)
『안나 카레니나』를 새롭게 읽었다.
러시아 소설 등장인물 이름
번역 문제는 아니지만 러시아 소설은 아무래도 이름이 몇 가지나 되어서 감당이 안되는데요. (189쪽)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저도 감당이 되지 않더군요. (……) 친절한 출판사라면 앞으로 인명 목록을 달아주셨으면 좋겠는데, 일단 인내해주시길 바랍니다. (190쪽)
해서, 『안나 카레니나』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정리해본다.
안나 아르카디에브나 카레니나.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카레닌 - 안나의 남편
스테판 아르카디치 오블론스키 (스티바) - 안나의 오빠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 (돌리)
셰르바츠키 집안
공작 ? 알렉산드로
공작부인
돌린카 (돌리) : 큰 딸 - 오블론스키의 아내.
나탈리 : 둘째 딸 - 르보프라는 외교관에게 시집을 감 (1권, 72쪽)
키티 : 막내 딸
오빠(레빈과 친구 사이)는 익사 (1권, 72쪽 - 해군에 입대했던 젊은 셰르바츠키는 발트 해에서 익사)
콘스탄틴 드미트리치 레빈
니콜라이 : 레빈의 형
(니콜라이는 콘스탄틴 레빈의 친형이고,
코즈니셰프에게는 어머니는 같고 아버지는 다른 동생이다.)(1권, 79쪽)
알렉세이 키릴로비치 브론스키
브론스카야 공작부인 : 브론스키의 어머니
※ 위에 언급한 책의 쪽수는 『안나 카레니나』(전3권)은 윤새라 번역으로 펭귄클래식코리아에서 출판된 책을 기준으로 함.
번역의 문제
이 책을 읽으면서 번역의 문제를 새삼 생각하게 된 이유는 이런 문장 때문이었다.
아이들 가정교사와 불륜을 저질러 가정을 위기로 몰아넣은 오블론스키가 아내 돌리에게 용서를 구하며 하는 말이다. 우리말 번역을 먼저 읽어보자.
“돌리, 내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단 한 마디만 들어줘. 용서해줘. 용서해 줘......생각해봐. 구 년 세월이 그 순간을 보상할 수 없다는 말이오? 그 순간을?” (1권, 53쪽)
“구 년 세월이 그 순간을 보상할 수 없다는 말이오? 그 순간을?”
이 말을 읽으면서 ‘구 년 세월과 그 순간’이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 말을 이 책에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프랑스인 가정교사를 유혹한 오블론스키가 분노하는 아내에게 용서를 구했던 말은 “오로지 용서를 빌 뿐.... 여태껏 살아온 9년간(의 충실함)이 몇 분간(의 부정)을 보상할 수는 없을까?”였다. 소년 시절에는 이 문장에 나오는 “몇분간”이라는 표현에 담긴 한심할 정도로 노골적인 의미나, 그것을 들었을 때 치솟았을 아내 돌리의 분노에 대해 감히 그 의미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8쪽)
저자는 ‘소년 시절에’라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이문장을 알 것 다 알고 난 후에 읽었어도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이 책, 이 부분을 읽고나서야 다시 한번 그 대목을 새롭게 새겨보게 된 것이다. 그러니 번역 문제 얼마나 중요한가를, 그리고 글의 뜻을 새겨가면서 읽는다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게 되는 것이다.
또 이런 번역 비교해보자.
안나와 브론스키가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브론스키의 눈으로 읽어보는 안나의 모습이다.
그는 목레를 하고 객차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그녀를 다시 한번 더 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 이유는 그녀의 미모가 대단해서도, 몸에서 세련되고 소박한 우아함이 풍겨서도 아니었다.
우리말 번역은?
다정다감한 그녀의 얼굴에 유난히 상냥하면서도 부드러운 표정이 감돌았기 때문이다. (1권, 140쪽)
이 책에서는? (물론 일본어로 번역된 책에서 인용한 것이니...)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갔을 때 그녀가 언뜻 보였던 반듯한 이목구비의 어딘가에, 그 표정 어딘가에 달콤하게 성큼 다가오는 요염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195쪽)
분명 같은 원본을 토대로 번역했을 것인데, 그 내용과 그 뉴앙스는 천지 차이다
대립하는 두 가지 ? 영혼과 육체 외
이 소설은 근대인의 영혼과 육체의 결정적 대립이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톨스토이에게는 전환점이 된 작품이다. (190쪽)
아울러 이 소설에는 서로 대립하는 두 가지가 항상 존재한다. (191쪽)
대립이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작자가 궁극적으로 어느 한 편을 부정하고 나머지를 긍정했다고 파악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두 가지는 항상 교차하고 있습니다. (219쪽)
다시, 이 책은?
이 책은 1950년에 출판된 책이니 무려 70 년 전의 일이다.
해서 맨 처음 이 책을 펼칠 때의 생각은, 이 책 구닥다리 아닐까, 했었다.
그런데, 맨 처음부터 그게 아니었다. 번역의 문제 첫 번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안나 카레니나』를 새롭게 읽게 해주었다. 그리고 책에 대하여, 책읽기에 대하여, 뭔가를 다르게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니, 이 책 70년 된 책이지만, 새롭고 새로운 기운이 넘치는 책이다.
몇 번이나 읽고 또 읽고, 새롭게 정리를 하면서,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