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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
박균호 지음 / 소명출판 / 2021년 1월
평점 :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
이 책은?
이 책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 은 ‘책’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박균호, <교사이자 북 칼럼니스트이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25년째 중·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
이 책의 내용은?
저자 박균호가 그간 책에 대해 정성을 쏟은 이야기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책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정겹다. 또한 책에 대하여 전해주는 이야기들이 너무 재미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변신이야기』가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첫 번째 책인 이유는?
서양을 공부하자면 가장 중요한 것이 기독교와 『변신이야기』다.
이 두 개가 서양의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뿌리를 차지하며 ‘그리스 로마 신화’의 상당부분이 『변신 이야기』에 빚을 지고 있다. (24쪽)
다만, 민음사 판 『변신이야기』는 중역이니, 중역이 거슬리는 독자라면 천병희 선생이 번역한 『변신이야기』를 읽어보면 어떨지?
조용준의 『유럽 도자기 여행』
도자기를 찾아서 세계여행을 하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저자 조용준 선생은 오로지 도자기 여행이라는 주제로 동유럽 편을 시작으로 북유럽, 서유럽 편까지 3권의 책을 냈다, (......)
도자기를 따라서 여행을 하다보면 역사와 예술 그리고 과학에 관한 지식을 자연스레 체득하게 된다. (81쪽)
위에서 말한 책중 『유럽 도자기 여행』 (서유럽편)을 가지고 있고, 읽었다.
위에서 저자가 말한 것, 모두 맞다.
또한 『유럽 도자기 여행』은 단순히 인문학적인 지식을 전달하고자 하는 책이 아니다. 도자기를 따라서 유럽을 여행할 수 있도록 실용적인 정보와 사진 자료가 가득하다. (73쪽)
띠지에 관하여
책을 받으면, 읽을 때 골치를 아프게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띠지다.
버리기도 아깝고 그냥 두기에는 불편하고....
나는 띠지를 일단 걷어 접어서 책갈피를 쓴다. 그리고는 책 가운데 끼워 놓는다.
해서 어떤 책은 띠지가 사라져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서둘러 띠지가 있는지 책을 꺼내 확인해 본 것이 있다.
책을 사자마자 띠지를 버리는 독자라도 이 책만은 그러면 안 되는 책이 있다. (164쪽)
바로 나쓰메 소세끼의 책이다. 우리말 번역으로 현암사에서 펴낸 책이다.
왜냐하면 그 띠지에 인쇄된 문구는 표지에 적힌 한시를 번역한 것이기 때문이다.
해서 이 글을 읽고 얼른 찾아보았다.
내 서재에 모셔둔 소세끼의 현암사 판, 『태풍』과 『풀베개』, 띠지가 모두 무사했다.
책 안에 얌전히 자리 잡고 있었다.
책 앞표지에 씌여진 시 (일본어)를 번역한 것이 띠지에 적혀 있을 줄이야!
부질없이, 부는 태풍
부질없이, 사는가 속세에
흰 나비도, 검은 머리카락도
흩어져 있네, 흩어져 있네
소세끼의 장편 소설 『마음』에 얽힌 사연도 기억할 만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은 이은정 역에 더디 출판사 판이다.
거기 해설에 이런 대목이 있다.
『마음』은 나쓰메 소세끼의 대표적인 장편소설로 (<도쿄 아사히 신문>에 연재되었고) 1914년 이와나미 서점에서 단행본으로 출간하였는데, 자비 출판이어서 장정부터 표제의 글까지 저자의 고안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마음』, 이은정 역, 더디, 314쪽)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의아했었다. 그 유명한 작가의 책을 그 유명한 출판사에서 출판하면서 자비 출판이라니?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 상황이 이해되었다.
당시 나쓰메 소세끼는 유명한 작가의 반열에 올라서 있었지만, 이와나미 서점은 그렇지 못했다. 겨우 1년 전에 문을 연 헌책방에 불과했었다. 그런데 그런 서점의 주인이 감히 유명한 작가의 신문 연재물을 출간하겠다고 나선다. 그런 용기에 감동을 한 소세끼는 흔쾌히 출간을 허락해 주었는데, 이번에는 그 서점 주인이 가지고 있는 돈이 없으니 출간에 필요한 돈을 투자해 달라고 한 것이다. 그것마저도 일본의 대문호는 허락을 한다. 이런 곡절 끝에 책이 출간되었고, 이런 역사적인 출간을 계기로 이와나미 서점은 서점에서 출판사로 도약을 한다. (159쪽)
그렇게 헤서 내 손에까지 들어오게 된 책, 『마음』이다.
피천덕 선생이 번역한 『셰익스피어 소네트 시집』
피천득 선생은 시를 번역함에 있어 다음과 같은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원작자가 심어둔 원래의 의미를 손상하지 않으면서
둘째, 번역시지만 마치 우리나라 시를 읽는 것처럼 친근한 느낌을 주고
셋째, 누구나 읽기 쉽고 재미있는 번역을 하자.
피천득 선생의 『내가 사랑하는 시』와 『셰익스피어 소네트 시집』은 이와 같은 원칙대로 번역되었기 때문에 오랜 세월이 지나도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셰익스피어 소네트 시집』은 영문학자 피천득 선생의 가장 빛나는 업적 중 하나이며 가장 공을 많이 들인 저작물이다. 우리나라 시를 읽는 듯한 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있도록 직역보다는 의역에 충실했다.
선생은 자신이 정한 원칙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역량을 총 발휘해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마치 우리나라 시로 재창작하려고 시도했다. (315-316쪽)
그렇게 애써서 번역한 『셰익스피어 소네트 시집』이 내 손에 있다.
이 글을 읽고 그 책을 다시 읽으니 전에 읽을 때에는 몰랐던 감흥이, 새록새록 생겨난다.
책 제목에 얽힌 사연들
존 스타인벡의 소설 『음향과 분노』 :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나오는 문구를 따서 지은 대표적인 사례다. 『맥베스』 제5막에 나오는 ‘인생이란 바보가 지껄이는 이야기, 음향과 분노로 꽉 차있지만 아무 의미가 없다’에서 따왔다.
이외에도 많은 명작이 이런 사례에 속하는데,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템페스트』에서,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소네트>에서
서머싯 몸의 『과자와 맥주』는 『십이야』에 나오는 문구를 제목으로 삼았다. (148쪽)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 :
출간이 된 직후에는 조지 오웰이 너무 무명이다 보니 서점 직원이 『동물 농장』이라는 제목만 보고, 농업책 서고에 진열했다. (186쪽)
최인훈의 『광장』은 독일에서 출간되지 못했다는데....
최인훈의 『광장』이 독일어로 출간을 앞두고 있었는데, 뜻밖에 암초가 있었다.
다름 아니라, 독일에서는 같은 제목을 가진 책이 두 권 이상 존재할 수 없는데 이미 독일에서 광장이라는 책이 있었던 것이다. 『Der Platz.』
다른 이름으로 출간하자는 의견에 최인훈 선생은 반대했고, 결국 출간은 무산이 되었다. 그 후 시간이 흘러, 독일의 출판사에게 어렵게 허락을 구하고, 같은 제목으로 출간할 수 있었다는 것. (204쪽)
다시, 이 책은?
저자가 전해주는 책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 서재에 있는 책들을 새삼 둘러보게 된다.
그간 무심하게 대했던 책들 속에 ‘이런 사연이 있었다니’, ‘이런 재미나는 일화가 있었다니’, 하며 무릎을 치며, 읽었다.
그래서 내 서재의 책들을 가지고 있는 가치가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 책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가 넓어지고 깊어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 책을 괄목상대하게 된다.
참, 이 책 읽고 나서, 여기 소개된 책에서 하나라도 사지 않은 사람은,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거나, 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도 몇 권 질렀다.